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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속삭임 02화

청소시간

by 문성희



국민학교 시절 어느 추운 날

어렴풋한 기억 속 서늘한 공기로 가득한 교실

겨울을 맞이한 참새들처럼 동글동글 부푼 우리

온풍기 앞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아이들

책상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몸과 얼굴을 맞대고 소곤소곤 대는 아이들

털 옷 벗어 던지고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남학생들

각자의 방식으로 몸을 녹이며 교실 안은 서서히 덥혀지고

교실 문이 드르륵 열리니 담임 선생님의 얼굴

아이들은 각자 자리에 또박또박 앉아 구슬같은 눈으로 바라본다


오늘은 청소 날, 다같이 깨끗하게 열심히 해보자 한 마디에

책상을 옮기고 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걸레로 사물함과 창틀 칠판을 닦고

그리고 점점 다가오는 청소 중 가장 즐거워하는 시간

거친 나무바닥 윤 내는 시간

일렬로 벽 앞에 쪼그리고 앉은 우리

고사리 같은 손으로 천에 왁스를 찍어 나무 한 칸 한 칸 꼼꼼히 닦아 나간다

친구들과 재잘재잘을 뒤로 하고 오로지 집중 또 집중 왜였을까 그저 좋았으리라

뿌연 나무가 기름을 먹고 반짝이는 것도, 느끼한 왁스 냄새도

그 시절 청소의 날들의 기억은 왁스 냄새


어느 날 공기를 주머니에 몰래 챙겨 온 반장 친구

열심히 왁스칠 하는 친구들의 얼굴 앞에 공기를 갖다 대며 날카로운 미소를 짓는다

공기를 잘하는 반장 친구 미소에 모두들 엉덩이를 들썩들썩

처음엔 나로 시작해 한 친구 또 한 친구 정복해 나가니

어느덧 아이들은 왁스와 천 던져 버리고 동그랗게 앉아 너도 나도 선수 응원가

모두를 정복하고 승리의 깃발을 든 반장의 어깨는 봉긋 낄낄

나머지 친구들도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이젠 모두 다같이 힘을 합쳐 빠르게 나무바닥을 정복해야 할 시간

작은 속삭임과 바닥이 윤이 나는 소리와 함께 어느덧 마무리가 되고

번쩍번쩍 광나는 나무바닥을 보며 우리의 볼도 반짝반짝

깨끗해진 교실은 몽글몽글 새로운 먼지로 피어나고

창 밖에선 조용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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