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로서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 달에 한두권 정도 동네책방에서 책을 주문한다. 주로 주문하는 책은 동네책방 스페셜 에디션이나 대형서점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독립 출판사의 책일 때가 많다. 언제부터인가 대형서점 택배에서 차가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 때는 편리하게 이용했었는데 동네책방, 독립서점, 그림책방 택배를 받아본 뒤로는 박스 안에 책만 들어있는 택배가 허전하게 느껴진다. 손편지가 없어서 그런 걸까.
동네책방(독립서점, 그림책방 이름도 있지만 편하게 동네책방이라고 하겠다) 택배는 대부분 책방 주인 분들의 손편지가 함께 담겨있다. 그리고 받는 사람은 누구의 엄마, 누구 선생님이 아닌 나의 이름이 그대로 적혀있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내 이름을 불러주는 문구가 너무 낯설었다.
직업 특성상 '선생님' 호칭을 듣고 지내왔고 아이를 낳은 뒤로는 누구의 엄마 호칭이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요즘은 직장 내에서도 'OO님'이라고 부르는 게 하나의 문화로 형성되어가고 있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내 이름을 넣은 'OO+님' 호칭이 여전히 익숙하지는 않다.
임신을 알고 난 이후 가장 낯설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호칭이었다. '산모님'. 불과 1년 전만 해도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보러 다니고 소위 말하는 공주 대접을 받으며 '신부님' 호칭을 들었건만. '산모님' 호칭은 '너는 이제 앞으로 배가 많이 부르게 될 것이고 펑퍼짐한 아줌마로 살아가게 될 거야.'라는 암묵적인 예언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차라리 'OO+엄마' 호칭을 들었더라면 괴리감이 많이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산모님' 호칭은 여전히 지금도 어색하다. 길을 가다가도, 조리원에서도, 산부인과에서도 '산모'가 시그니처는 늘 꾸미지 않은 얼굴에 아이를 보며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기 때문일까. 신부님 호칭을 듣다가 산모님 호칭으로 바뀌는 순간은 마치 호화로운 세계에 있다가 갑자기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인데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의 느낌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아이를 낳고 1년 정도까지는 '선생님' 호칭도 나름 나에 대한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만 같았는데, 내 이름 그대로 불리는 것이 나 그대로를 인정받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선생님' 호칭은 내가 어떠한 직업을 가지고 있어야만 불릴 수 있는 호칭이다. 관련 직업을 갖고 있지 않았더라면 아이 엄마인 나에게 '선생님' 호칭을 그 누구도 불러주지 않았을 것이다. 내 이름 그대로 불려진다는 것은 내가 어떠한 직업을 갖고 있는지와도 무관하게 내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내가 무엇을 하든지, 어떤 가족 구성원과 살아가든지, 어떤 직업을 갖든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고, 존재 자체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아직 자아가 완성되지 않은 것 같은, 세상에 나온 지 이제 겨우 31개월 된 딸아이도, 서른이 훌쩍 넘어간 나도, 점점 나이가 연로해지시는 부모님도.
물질적인 것들이 순간의 만족감을 채워줄 수는 있겠지만 때로는 소소한 손편지와 그 안에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말 한마디, 그리고 작은 선물은 어떨까? 평생 기억에 남을, 또 한 주를, 하루를 살아가는 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