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다시 만난, 구덩이.

그림책 <구덩이>, 다니카와 슌타로, 북뱅크.

by 말선생님


2019년 여름, 아이를 위해 빠져들기 시작했던 그림책은 점점 나를 위한 그림책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나보다 훨씬 이전부터 그림책에 빠져든 분들의 이야기가 깊이 와닿았고 그림책 모임이라는게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신세계였다. 어쩌면, 마스크 없이 참여하는 그림책 모임의 마지막을 운이 좋게 참석하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정기적으로 모임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그 안에서 나오는 삶의 기쁨과 아픔, 응원과 지지가 좋았다. 동네책방의 냄새 또한 나에게는 신선한 공기같았다.





그림책을 소개하는 책들을 읽어가다가 안개향(황유진) 선생님의 <어른의 그림책> 발간 소식을 들었다. 망설임없이 책을 주문했고, 출근 전에 30분 정도 일찍 나와서 펼친 책 안에는 워킹맘으로서, 전업맘으로서의 고민들이 묻어나오는 것 같았다.


'육아를 하는 이상, 엄마의 삶은 결코 이전과는 같을 수 없구나.' 모든 엄마들이 겪는 고민들이지만, 미리 글로 예행연습을 해보지만 정작 나는 당시 18개월이었던 온이의 육아에서 자신감 있는 영역이 하나도 없었다.



책을 읽자마자, 블로그에 서평을 남겼고, 감사하게도 작가님의 이벤트에 당첨이 되어서, 그림책을 한 권 선물받았다. 그림체가 너무 예쁜 <구덩이>라는 그림책이었다. 아무래도 직업병이 있다보니, 아이들에게 현장에서 이 책은어떻게 보여주는게 좋을지가 우선 고민이 되었다.


주인공 히로는 구덩이를 판다. 파고 또 판다. 그리고 그 공간에 잠시 머무르다가 나와서 다시 땅을 만든다. 사실, 그 때는 작가님께서, 왜 구덩이에서의 '휴식'을 엽서에 적어주셨는지 이해가 깊이 가지 않았다. 당시 육아도 쉬운 일은 결코 아니었는데. 그림이 예쁜데 뭔가 깊은 의미가 담겨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책을 소중하게 책장에 꽂아두었다.




1년이 지난 오늘 아침, 갑자기 이 책이 생각났다. 업무도 보고 소중한 분을 만나러 대구에 내려가는 길에 이 책을 가지고 가고 싶어서 노트북 가방에 넣고 함께 기차에 올라탔다. 나에게 구덩이는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온이가 18개월이었던 작년보다, 30개월인 올 해는 나에게 구덩이가 더 절실해진 것 같다. '내 구덩이'는 어느덧 아이가 잠들고 난 이후, 등원하고 난 이후에 글을 쓰는 시간이 되어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은 내 시간. 히로가 다시 땅을 만들어 놓았듯, 나는 온이가 깨면, 온이가 하원을 하면 노트북을 닫고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온이를 맞이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구덩이'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구덩이는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공간이지 않을까. 1년만에, 어느덧 내 삶에 구덩이가 생겨서 참 다행이다.내년에 다시 이 그림책을 꺼내서 보게 된다면, 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또 아이와 나는 어떻게 성장해있을까?




그림책방 안에서 마스크 없이 종이 냄새를 맡으며 옹기종기 모이던 작년 하반기가 너무나 그립다. 그 시간들이 마지막 열차가 아니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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