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통해 아이에게 세상을 알려주다.
아이를 출산하고 어느 정도 생활 패턴이 잡히고 신체발달이 잘 이루어졌다고 생각이 될 때에 엄마가 눈을 뜨게 되는 것은 아이의 인지적인 부분이다. 조리원에서 퇴소한 이후, 그리고 정말 놀라운 주간인 원더 윅스를 지나 아이가 스스로 앉을 수 있고 벽을 잡고 서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엄마 또한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것들이 더 늘어난다. '이 시기에 어떤 책을 보여주면 좋을까? 이 시기에 어떤 문화센터 교육을 들으면 좋을까?'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문화센터에 잘 가지 못하지만 나 또한 온이가 8개월이 되면서 문화센터도 다니고 맘 카페 안에서 여러 가지 교육적인 정보들을 검색해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맘카 페나 인터넷 검색 루트를 통해 찾은 교육 콘텐츠들 중에 마음에 확 와 닿는 게 많지 않았다. 눈에 들어온 전집 세트와 교구들은 우선 비용적인 부담이 컸다.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돈이든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야 좋은 부모인가 죄책감도 들었지만, 내가 선택한 건 '그림책'이었다.
온이 또한 책에 대한 편식이 있었고 새로운 책을 보는데 적응하는 시간이 다소 걸리는 편이었다. 여러 권의 책을 베이비룸 앞에 진열해두고 한 권 한 권 읽어주고 아이와 눈을 마주치는 상상을 해보았지만, 결제 버튼을 누르려고 하는 순간에 다시 뒤로 버튼을 누르게 된 전집 세트, 책장, 교구 세트들. 온이가 어린이집에 가고 난 뒤에도 마음 한편에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은 계속 남아있었다.
다행히, 온이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고 있다. 돌 전부터 보았던 책들은 지금까지도 표지가 너덜너덜해진 채로 꺼내 읽을 때도 있고, 아이가 보기에 불편할 정도로 종이(내지)가 닳아서 중고 서점에서 같은 책을 새로 구입한 책도 있다. 특히, 하야시 아키코의 달님 안녕 시리즈 책, 그리고 앤서니 브라운의 '우리 아빠가 최고야', '내가 좋아하는 것' 그림책이 그랬다.
온이에게 어떠한 그림책을 보여줄지 중고서점에 가서 그림책을 고르고, 혹은 그림책방에서 그림책을 고르는 순간은 마치 남자 친구에게 줄 생일 선물을 고르는 것처럼 설레는 마음이었다. 이 책을 보는 온이의 반응이 어떨지, 이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현장 아이들에게는 어떨지 내 아이의 북큐레이터가 되는 기분이었다. 엄마만큼 아이의 선호도를 잘 알고 있는 북큐레이터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온이는 언제부터인가 그림책 안에 나오는 문장, 주인공이 말하는 이야기들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커어~다란 방 안에, 전화기 하나, 장갑 하나, 양말 하나..."(잘자요 달님),
"아치야~노올자~, 이제 깜깜해져서 안돼, 밤에는 자야 돼!(개구쟁이 아치),
"종달새가 지지지 노래해요~ 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
"아야! 미안해~괜찮아~"(행복한 ㄱㄴㄷ).
아주 정확하게 기억하고 따라 하는 문장도 있고 온이의 취향대로 살짝 단어나 조사를 바꾸어서 책의 내용을 전달해주는 문장들도 있다. 유모차를 타고 산책을 할 때도,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에도. 책에서 보았던 비슷한 상황의 이야기들을 온이가 직접 꺼내 준다.
생각해보면, 그림책을 아이에게 보여주기 시작했을 때의 나의 바람들이 하나둘씩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직 말도 못 하는 아이에게 내가 이 책을 읽어주면 아이가 그림을 제대로 보기나 할지,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줄지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림책으로 육아를 시작하기 잘했다는 생각을 요즘 더욱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가장 들으면서 자란다. 어린이집 종일반에 있거나 시터 이모님께서 아이를 봐주시는 경우도 있지만,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기억하고 따라 한다. 내(부모)가 언제 어떠한 말을 했는지조차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아이가 내(부모)가 했던 말을 다시 꺼내 주는 경험이 점점 많아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이에게 좋은 말들을 담아 줄 수 있을까?
일상의 고단함을 안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부모에게는 어쩌면 저녁 식사 이후, 퇴근 이후에 아이와 온전히 놀아줄 수 있는 에너지가 방전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아이에게 오늘 하루 잘 보냈는지 물어보고, 우리 온이 오늘 하루 정말 수고했다고, 아빠가 회사에 있을 때 온이가 많이 보고 싶었다고, 엄마가 낮에 온이에게 화를 냈지만 온이를 많이 사랑한다고 전해주고 싶은데. 수북이 쌓여있는 집안일을 보면, 어느덧 나 또한 "온이야, 설거지부터 좀 하고 놀아줄게." 이 말을 먼저 하고 있다.
언어치료 현장에서나 주변 육아 동지들, 그리고 후배들(나도 어느덧 육아 후배가 생겼다. 학부형 선배님들께서 이 글을 보신다면 얼마나 웃음이 나오실까!)에게 하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10분~20분 정도라도 아이와 눈을 마주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읽어주는 시간을 마련해 주세요.
하루에 긴 시간이 아니어도 괜찮다. 2시간, 1시간 정도의 목표를 잡게 되면 일상에서 그 목표를 지키지 못했을 때에 느끼게 되는 좌절감이 더 클 수도 있다.
간혹, "우리 아이는 너무 한 가지 책만 봐서 그게 좀 겁이 나요. 자동차 책만 봐요" , "그림책을 계속 주면 나중에 커서도 계속 읽어달라고 하는 것 아닐까요?" 질문을 받을 때도 있다. 나는 이렇게 답을 드렸다.
아이들이 특정 그림책 주제에 대해 갖는 관심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할 가능성이 높아요. 한 가지 책에 몰입되어 있다면, 그 책 안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로 확장시켜 주세요.
한글을 습득하고 스스로 읽을 수 있는 단어나 문장이 늘어나게 되면 스스로 책을 읽으려고 시도할 거예요.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도 아이가 원한다면 그림책을 읽어주시는 시간을 마련해주세요. 아이는 그 시간으로 인해 엄마의 사랑을 확인할 수도 있고, 그 안에서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을 거예요.
그림책 안에는 상대방을 위로해주는 말이 담겨있다. 그리고 응원해주는 말, 칭찬해주는 말, 사랑을 표현하는 말들이 담겨있다. 때로는 내가 화가 나는 감정을 전달하는 방법이 담겨있다. 한창, 감정이 분화되고 모든 순간이 여전히 낯설고 새로운 아이들에게 '감정'이라는 세상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세상에서 함께 어우러져 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아이들에게 차근차근 알려주는 친구가 되어간다.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 또한 그림책을 통해 배운다.
아이의 '말'은 정말 신기한 존재다. 아이가 말이 늦게 트이면 부모는 속상함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이의 말로 인해 부모의 하루 기분이 결정되기도 한다. 어쩌면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은 아이들을 현장에서 오래 만났지만 아이 앞에서는 내 감정선을 잘 지켜내지 못하고 감정 표현이 서툴어지는 내가 잡은 끈인지도 모르겠다. 이유가 어떠하든, 온이에게 책을 '많이' 읽어주기보다는 한 권의 책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는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
그리고,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과정을 겪게 되서야 부모님들께 쉽게 "아이와 함께 가정에서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했던 말이 얼마나 부담감을 주는 말인지, 어려운 숙제를 던지는 말인지 느끼게 되었다. 작지만 내가 아이에게 실천해줄 수 있는 약속, 하루 10분, 15분의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다 보면 아이에게는 언어, 인지, 정서, 전반적인 발달에 있어서 최고로 좋은 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은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 30개월이 되어가는 온이가 좋아하는 예쁜 말이 담긴 그림책들>
나도나도, 최숙희, 웅진주니어
행복한ㄱㄴㄷ, 최숙희, 웅진주니어
괜찮아, 최숙희, 웅진주니어
개구쟁이 아치 시리즈, 기요노 사치코, 비룡소
우산 씌워 줄게요, 하세가와 세스코 글, 한림출판사
잘 자요 달님,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시공주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