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그림책 꺼낼 때가 제일 예뻐.

언젠가는 그리워질 시간에 최선을 다해 읽어주기.

by 말선생님

엊그제 31개월에 접어든 온이는 18개월이 되기 전부터 원하는 그림책을 꺼내서 읽곤 했다. 감사한 일이었다. 친구들이 집에 다 있다고 하는 몇십 권 전집 세트도 집에 없었는데 스스로 책을 꺼내 읽는 것만으로도 나는 엄청난 만족감을 느꼈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의 '읽기 독립'을 꿈꿀 것이다. 아이가 돌이 되기 전에는 초점 책부터 시작해서 사물 그림책까지 다양한 그림책을 보여준다. 이 기간은 엄마의 육아휴직과 맞물려서 더 교육적인 관심이 시작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각 가정마다의 모습으로 전집을 구입하거나 세이펜이나 DVD로 그림책이 읽히기도 한다. 각자의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아이가 언젠가 스스로 책을 읽고 공부까지 잘하면 좋은. 그런 목표가 숨겨져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통계적으로 보면, 전체적인 책 판매량은 영유아를 타깃으로 할 때 가장 높다고 한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 집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육아휴직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가 6개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출근을 하기 시작했고, 엄마들이 왜 퇴근 이후에 아이와 함께 놀아줄 에너지가 없다고들 하는지 격하게 공감할 수 있었다. '육아 출근'이라는 말 또한 일주일에 하루, 이틀, 세 번, 출근을 하면서야 깊이 이해가 갔다. 어떤 날은 '차라리 출근하는 날이 낫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림책 관련 육아서나 육아 관련 방송을 보면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하며 책을 가지고 오는 모습은 너무나 드라마틱한 일이다. 뱃속에 아이를 품을 때 육아서를 읽으며 모든 엄마들이 꿈꾸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나의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하며 가지고 온다면 나는 최선을 다 해서 읽어줄 것이다.'


그런데 꼭 워킹맘이 아니더라도 아이의 책 읽어달라는 요구, 같이 놀아달라는 요구에 언제부터인가 피로감을 느낀다. 신랑의 야근이 함께 맞물린다면 어떤 날은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고 밀려있는 집안일을 보고 있노라면 몸이 근질거린다. 신기하게도 이 경험은 아이가 자랄수록 더 일상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아이의 말이 트일수록 요구사항 또한 더욱더 구체적이 어진다. "엄마, 여기, 바닥에 앉아서, 아치 책 읽어 줘."



어떤 전문가들은 "잠시만~"이라는 말을 결코 해서는 안된다고 하는데 일상에서는 그 원칙을 지켜 나가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아이가 유치원에 가고, 사교육을 받기 시작하면서 책을 읽어주는 그림과도 같은 아름다운 장면은 점점 추억으로 남게 된다. 요즘은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엄마나 아빠가 책을 읽어주는 가정이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그런 일상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서로가 자신의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또한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읽기 시작하는 것은 즉, 한글 읽기를 어느 정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었다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아이 스스로 책을 읽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보면 어느 정도 글을 읽을 수 있는지 점검 아닌 점검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네 살에 일찍 깨우쳤든
일곱 살이 되어서 깨우쳤든,
혼자서 읽기 시작했다는 이유로
갑자기 책 읽어주는 일을 중단하지는 마세요.



얼마 전에 읽은 책, <난생처음 북클럽>의 저자가 권하는 말이다. 임신했을 때 고영성 작가님의 <부모공부>라는 책을 읽었을 때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서도 부모가 책을 읽어주는 것을 추천하는 전문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언어치료 현장에서는 아이에게 초등학교 고학년 시기까지 책을 읽어주는 부모님들이 그래도 많은 편인 것 같다. (아무래도 언어 발달에 대해 지속적으로 follow-up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셔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면 그 나름의 과업을 해쳐나가야 하기 때문에 그림책은 점점 엄마와 아이의 손에서 멀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점점 책장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가 누군가에게 물려주어야 할 존재가 되어버린다.



이제 겨우 31개월에 접어든 아이가 스스로 책을 꺼내 읽는, ( 읽는 게 아니라 문장을 외워서 말하는 것이겠지만.) 그 모습에 흡족해하는, 조금은 편해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나도 어쩔 수 없는 속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쌓아온 책 육아에 대한 가치관과 결단들을 금세 잊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림책 육아에 열정을 쏟는 이 시간들이 결국 추억으로만 남겨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서도 그림책을 읽어주리라, 혹은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읽어주리라 결단했던 그 시간을 잊지 말아야겠다. 어쩌면 그때가 되었을 때는 아이가 책을 들고 걸어오는 이 시간이 뼈에 사묻히도록 그리워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엄마가 책 읽어주는 시간보다 친구들, 스마트폰, 유튜브를 훨씬 더 좋아할 수도 있으니까.


무엇이든 지나고 나면 그 소중함을 안다고 하는데 그림책 육아 또한 그러한 것 같다. 아이와 함께 책 읽는 이 시간들을 마음속에 그리고 사진으로도 많이 기록해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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