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이가 요즘 가장 많이 하는 말에는 "놀이"가 늘 들어가 있다.
엄마랑 같이 놀 거야.
엄마 여기 바닥에 쿵 앉아서 놀아.
안 자고 놀 거야.
집에 가서 -하고 놀 거야.
생각해보면 색 이름, 숫자, 요일, 계절과 같은 것들은 스쳐 지나가듯 가르쳐준 기억이 있는데 놀이에 대해서는 특정 단어를 사용한 기억이 없다.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놀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달은 것 같다. 어린이집에서 배웠을 수도 있지만.
놀이는 아이에게 어떠한 특별한 정의를 내릴 것도 없이 삶의 일부인 것 같다. 나에게 비유하자면 그냥 자연스럽게 밥을 먹고 잠시 유튜브 채널을 보며 나 자신을 충전하듯이, 몇 년째 마카롱 덕후로 마카롱을 먹듯이. 그냥 삶의 일부이다.
직업이 언어치료사가 아니었더라면 나 또한 교구를 잔뜩 들여다 놓고 교육을 먼저 시켰겠지만 교육보다는 놀이의 힘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기에 절제를 한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정말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교육을 먼저 시켰더라면 아이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어린 시절 나는 수학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스티커만 붙이던 가정 학습지가 어느덧 두툼한 문제집으로 변해있었고 한 문제, 한 문제 푸는데 엄마와 씨름을 하고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시골학교로 전학을 왔는데 당시 새로 부임한 교감 선생님의 모토는 매 달 이 학교에서 수학 경시대회를 치르는 것이었다. 상장을 받는 학생도 매달 똑같았고, 워낙 전교생 수가 없기도 했지만 각 학년에서 누가 가장 수학을 잘하는지 얼굴을 보지 않아도 외워질 정도였다.
그러한 엉뚱한 제도만 만들어두지 않았더라도 호기심을 갖고 수학을 접하려고 교과서 한 장이라도 들여다보지 않았을까. 여전히 핑계를 만들어 본다. 나에게 수학은 그저 내가 얼마나 공부 머리가 없는지, 시골 학교에서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대가가 얼마나 가혹한지 느끼게 해주는 과목이었다.
나는 놀이의 힘을 믿는다. 몸이 지치고 축 늘어지는 요즘이지만 온이를 보며 나의 어린 시절로 다시 거슬러가게 된다. 엄마는 가혹하게 학습지를 시키기도 했지만 내가 하는 역할놀이, ebs '만들어볼까요'를 따라 하며 어설프게 만든 작품들을 인정해주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쌓아둔 창의력 아닌 창의력이 대학교 때 실습을 할 때에도 지금의 나의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에도 밑거름이 된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 수학 경시대회를 하는 것보다 학생들이 일상에서 수학을 발견할 수 있는 과제를 매달 던져주셨더라면. 시골 학교의 장점을 살려서 자연에서 무언가를 발명해낼 수 있는 사업을 진행했더라면. 학생들 중에 자신의 꿈을 남모르게 키우는 누군가를 키워낼 수도 있었을 텐데.
놀이를 돈 주고 배우는 세상이지만 가장 즐거운 놀이는 아이가 하고 싶은 그 마음을 따라가 주는 것이다. 어제의 놀이가 아이에게는 또 새로운 놀이가 될 수도 있다는 육아상담 전문가 선생님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