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아이를 임신하고 가장 먼저 마음먹었던 교육관은 '미디어 절제'였다. 언어치료 현장에 오랜 시간 있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우연하게 본 육아서마다 미디어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스마트폰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일반화된 지, 겨우 7-8년이 되었을 무렵 아이를 임신했는데도 세상은 미디어 천국이었다. 당시에 프랑스 육아법이 살짝 유행하기도 했는데 식당에서 아이와 함께 앉아있는 가족의 테이블 가운데에는 늘 아이패드가 놓여있었다.
돌이켜보면 미디어 절제가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이가 가정 어린이집에 다닐 때는 그나마 무리가 없었는데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유행하는 만화 캐릭터를 알게 되었고, 주말에는 잠시 미디어를 보여주고 낮잠을 30분 정도 잤던 적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아이에게 참 미안하다. 그래도 지키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있다면 한글교육만큼은 미디어보다 엄마표로 진행하고 싶다는 결심이었다.
물론, 한글 공부를 미디어로 하는 것을 비난할 의도는 전혀 없다. 누구나 갖고 있는 육아관에는 각자의 차이가 있고 그 차이 중 하나가 미디어일 뿐이니까. 다만 그렇게 결단했던 이유 중 하나는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났을 때 종이책을 보는 것을 점점 힘들어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기 때문이었다. 책 표지만 보아도 한숨부터 내쉬는 아이들을 대하는데 나 또한 마음이 지쳐가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미디어는 어른들에게도 절제하기 어려운 수단이다. 요즘은 유튜브 또한 몇 배속을 돌려서 보거나 스킵해서 보는 게 일반적이고 정속도로 보는데 지루함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자극에 민감하고 이를 더욱더 쉽게 흡수한다. 당연히 책은 지루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한글공부 또한 연필로 직접 잡고 쓰고 종이 냄새를 맡으며 배우는 경험이 가장 아래에 깔려야 미디어가 그 위에 쌓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36개월 무렵까지 미디어를 거의 보여주지 않고 그 위에 다양한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아이가 지금껏 식당에서 패드를 단 한 번도 보지 않았던 것처럼. 한글만큼은 보다 더 사람냄새나는 방법으로 가르치고 싶었다.
미디어 없이 한글공부를 시작하는 것은 생각보다도 더 어렵지 않다.
1) 아이에게 맞는 교재 찾기
시중에 나와있는 수많은 교재 중, 아이에게 맞는 교재를 찾아보는 것. 온이는 <<한글이 야호>> 시리즈가 꽤 잘 맞았는데 이 또한 아이들마다 차이가 있다. 다만, 6-7세까지는 한글을 음절로 익히는 것이 더 쉽기 때문에, 낱자부터 시작하면서 음절로, 받침 없는 글자로 이어가는 것이 아이들이 흡수하기에 더 편할 수 있다.
2. 마트나 거리에 있는 받침 없는 글자 활용하기
횡단보도, 공원, 간판을 보면 다양한 글자가 숨어있다. 특히 받침 없는 글자를 활용하면 더 재미있게 배운 글자를 찾아볼 수 있다. 마트 안에서 글자를 더 많이 찾을 수 있는데, '마트, 우유, 고기, 주스, 바나나, 오이..' 벌써 5개가 넘는 한글을 아이 스스로 읽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공원 바닥에 있는 '의자, -하지 마시오, 화장실, 도보, 자전거..' 등의 글자는 아이가 받침을 배우지 않았더라도 천천히 읽어주면 된다.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된 차 번호판도 받침 없는 글자를 읽기에 좋다. 다만, 안전을 생각해야 하기에 엄마의 마음이 조마조마할 수도 있다.
3. 아이와 함께 말놀이 하기
아이와 차를 타고 갈 때, 산책을 할 때, 자기 전에 말놀이를 해보자. '가가가자로 시작하는 말~' 엄마가 먼저 '가방, 가지, 가..' 운을 띄우면 아이가 단어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다만, '가가가자로 끝나는 말'은 조금 어려워할 수 있으니 시작하는 말부터 많은 단어를 들려주는 것을 권한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말'놀이'이지 '공부'가 아니라는 것. 놀이로 재미있게 느낄 수 있도록 분위기를 이끌어야 한다.
4. 우리 가족 이름 읽어보기/써보기
우리 가족 이름, 친구 이름, 선생님 이름을 함께 써보는 것도 한글과 친해지는 방법이 된다. 친한 친구의 이름은 아이들이 신발장에서 익혀서 보기만 해도 눈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이때 '이ㅇㅇ' 친구의 이름이라면 "엄마 이름에도 /이/가 들어가지? 또 /이/가 들어가는 게 뭐가 있을까?" 이렇게 운을 띄워주는 것도 말놀이로 이어지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아이가 이름을 정확하게 쓰지 않아도 엄마가 옆에서 도와주고 격려해 주는 것이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곽, 최, 환..'과 같은 글자를 어려워한다면 글자를 최대한 크게 엄마가 써주고 아이가 그 위에 덮어써보자. 다만 쓰기가 첫 번째 목표가 아니라 익숙한 글자를 찾아보는 게 첫 번째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
5. 취학 직후에도 엄마의 목소리로 책 읽어주기
7세-8세가 되면 아이에게 책 읽어주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이게 읽을 수 있는 글자가 많아지고 있는데 제가 읽어주면 나중에 안 읽으려고 할 것 같아서요. 스스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질문을 주시는 경우도 많다.
언어는 듣기에서 시작된다. 취학 이후에도 아이는 다양한 읽기 규칙을 배우고, '걸었다'가 /거럳따/로 소리가 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될 것이다. 많이 들은 아이가 정확히 읽고 글자도 쉽게 익힐 수 있다. 취학 이후에도 아이에게 책 읽어주는 시간을 꼭 갖는 것을 권해드리고 싶다.
조금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방법들일 수도 있지만, 패드 없이 한글 공부를 하기에 나에게는 꽤 성공적인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