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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리 Oct 30. 2022

내 취향의 비밀

나만의 기준점을 갈고 닦는 것

그렇게 다져진 내 취향? 별 거 없다. 오랫동안 뚜렷한 것도 있지만 사실 계속 바뀐다. 환경이 바뀌고, 경험이 더해지면 취향은 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접근했다. 내가 특히 끌리거나, 취하고 싶은 방향은 뭐지? 공통적으로 어떤 경향을 갖고 있는 걸까? 생각보다 빠르게 답이 나왔다.


내 취향의 비밀은 간단하다. 뻔한 듯 뻔하지 않은 걸 좋아한다. 뭐, 누구나 그렇겠지. 그래도 특징이 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이 브랜드에서 이런 제품도 나온다고?’ 하는 것들에 혹한다. 뚜렷하게 주력아이템이 있는 브랜드 안에서, 의외의 제품을 찾아내면서 희열을 느낀다. 의류브랜드에서 출시한 돗자리라거나, 향수가 주력인 브랜드라 검색하면 향수 후기만 주르륵 나오는데 사실은 바디워시도 팔고 있다는 걸 찾아냈다거나, 그런 것들이다. 아니 이 브랜드에서 뜬금없이 돗자리? 근데 돗자리가 이렇게 예쁠 수 있다고? 하면서 흥미가 생긴다.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몇 년 전, 아더에러에서 갤럭시 S8 케이스를 발견해 구매했을 때도 희열을 느꼈다. 그 때는 패션브랜드가 휴대폰케이스를 만들면 아이폰 중심으로 출시하는게 보통이었고 갤럭시는 수지타산이 안 맞아 못 만들었으니, 귀했으니까.


때로는 아예 이런 상상도 한다. 향수가 주력인 브랜드에서 만드는 치약은 어떨까? 색조브랜드에서 내는 핸드워시의 향은 어떨까? 최근에는 비슷한 상상이 현실이 됐다. 색조브랜드 힌스에서 향수와 핸드크림을 출시했다. ‘무드 내러티브’ 컨셉이라 그 특유의 무드를 향으로 표현하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는데, 제품이 되어 나타나니 신기하더라고.


뻔하지 않은 걸 좋아하다보니 당연히 한정판 콜라보제품이나 이색 굿즈류, 또는 비매품에 정신 못 차리는 편이다. 예를 들면 스킨케어 브랜드에서 갑자기 기간한정으로 구매고객 대상 비매품 텀블러를 줄 때 혹한다거나. 아니면 이제는 기간이 지나 받을 수 없는, 사은품에 꽂혀서 당근마켓을 뒤진다거나 하는 일이 빈번하다.


그치만 지금은 콜라보레이션의 홍수다. 아무리 이색 협업을 진행해도 전혀 놀랍다거나 새롭다는 느낌이 안 든다. 솔직히 이젠 정말 취향을 저격한다거나, 말도 안 되게 신박하지 않으면 그렇게 끌리지도 않는다. 잠깐 반짝 우와 하다가, 물거품처럼 금방 사그라들어버린다. 이미 여러 번 혹하면서 얇아져버린 지갑이라 자비는 없다. 얘기하고 보니 이제 저 표현도 낡아버렸다. 요새 누가 현금쓴다고 지갑 두께로 부를 표현하나. 다 카드 쓰는데. 쏟아지는 콜라보 제품들이 내 취향의 사소한 포인트를 다 건드리게 되면, 구입할 제품이 한도 끝도 없을 거다. 내 카드는 이미 열일 중이라 저거까지 더하면 과부하가 걸려 파업을 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보니 앞서 내가 정의한 '취향', 즉 남들과 무관하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중요해진다. 유행과 겹치든 말든, 저런 환경과 무관한 내 뾰족한 취향이 중요해진다. 취향을 말 그대로 '소비'하는 데는 나만의 뾰족한 이유가 필요하다.


충동구매가 말도 못하는 나지만, 그럼에도 내가 ‘취향’ 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은 보통 소비해야 할 이유가 명확했다. 앞서 말한 듯 ‘뻔한 듯 뻔하지 않은’ 부분을 충족해야 한다. 거기에 신박하면서도 사실 굉장히 유용하다면 흥미는 배가 된다. 가장 최근의 예시를 들자면, 아티스트 송민호 님이 디렉팅한 브랜드 '센소라마'가 좋은 예시다. 이런저런 개념을 담아 뻔하지 않게 믹스해 탄생한 아이템들, 보여주는 방식 또한 뻔하지 않았던 팝업스토어까지 오랜만에 내게 큰 자극을 줬다. 특히 고체향수 목걸이는 향수 없이 못 사는 내가 향수를 가장 편하게 지니고 다닐 수 있으면서도 목걸이라는 액세서리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할 수 있고, 이전에 없던 아이템이었다보니 유용함과 신박함 모두를 충족했다. ‘불을 켠다’는 개념을 중의적으로 담은 캔들도 좋았다. 이게 2022년 가을의 지금 내가 끌리는 방향이고, 취향이다.


하지만 영원히 변치 않는 취향은 없다. 사소하게는 좋아하는 색깔이 있겠다. 17년간 주황색에 꽂혀있었지만 작년에 보라색으로 최애가 바뀌었다. 당시 다니던 회사의 메인컬러가 주황색이었고, 매일같이 주황색으로 디자인 작업을 하다보니 어느새 주황색에 지쳐버렸다. 회사에서 지겹게 보던 주황색을 집에서도 보려니 일하는 기분이 들어 힘들었다. 취향의 워라밸이 무너진 거다. 보라색을 좋아하게 되고, 올해 초 회사를 퇴사하면서 여유를 갖다보니 이젠 주황색을 봐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 그치만, 예전만큼 좋아할 순 없어졌다. 이렇게 사람이 바뀐다.


취향을 찾고 당장의 기준점을 세워도, 세상은 변하고 환경은 변한다. 언제까지나 미성년자일수 없듯이, 언제까지나 아날로그 세상은 아니었듯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세워 둔 기준점을 끊임없이 디벨롭해야하고, 그 도구로써 유행을 이용해보자. 변하는 세상에 대한 증거를 뚜렷하게 보여주는게 유행이니까. 나만의 기준점을 찾고, 갈고 닦으며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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