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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 Jul 15. 2020

013. 모닥불

13. Bonfire

13. 모닥불


솔박카에서는 종종 모닥불을 지피고 오손도손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날은 서로 각자가 겪은 특이한 일을 이야기했다. 마빈은 자신이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 갔던 이야기를 했다. 마빈은 원래부터 학교라는 획일화된 공교육 시스템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수학여행 중 밤이 되자 마빈을 몰래 호텔을 빠져나와서 길거리를 걸어갔다. 어쩌다 보니 호텔에서 맨발로 나와서 걷고 있는데, 길에서 어떤 노숙자 같은 사람이 나타났다.

'이봐. 친구. 신발은 어쩐 거야? 괜찮다면 내 신발을 신게.'

'괜찮아. 나는 내 신발이 있어. 단지 지금 당장 안 신었을 뿐이야.'

'내가 보기엔 안 괜찮아 보여. 내 신발을 신도록 해.'

'아니, 괜찮다니까.'

'그럼 잠시 나를 따라와 봐.'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겁을 먹고 노숙자를 따라가지 않을 분위기였다. 하지만 마빈은 호기심이 넘쳐나서 너무 궁금한 나머지 그를 따라갔다. 알고 보니 그는 노숙자가 아니라 그 동네 마약상인들의 보스였다. 막상 다른 사람들 사이에 있으니 위엄이 느껴졌다고 한다. 마빈에게 마약을 권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마빈은 그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다. 그리고는 기억이 끊겨버렸다.

다음날 아침 마빈은 옆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을 깼는데, 자신은 어느 자동차 위에서 자고 있었고 경찰이 둘러싸고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학교에서 아주 큰 문제가 되었다. 마빈은 학교에서 경고를 받았지만 퇴학까지는 당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마빈은 그 사건을 계기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완전히 포기했다. 

마빈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에 가는 대신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여행을 했다. 한 번은 프랑스에서 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경찰들이 다가왔다고 한다. 물론 불어를 못하는 그로서는 경찰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고요.'

'이 다리는 걸어서 건널 수 없어.'

'왜요?'

'자동차만 다닐 수 있기 때문이지.'

'그럼 어쩌라고요?'

'일단 우리가 에스코트를 해줄게.'

경찰차 3대는 마빈의 앞, 뒤, 그리고 옆에서 천천히 마빈을 따라갔다. 그렇게 마빈은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아서 다리를 건넜다.  

그 말을 듣던 우리들은 궁금해서 질문을 했다.

"아니 경찰은 차라리 너를 차에 태우고 다리를 건넌 후에 내려주면 되지, 굳이 차도에서 걸어가는 사람을 에스코트할 필요가 있나?"

"그건 경찰이 할 일이 없어서 너무 지루했기 때문에 시간을 때울 핑계가 필요했던 거야."

"그게 틀림없어. 경찰차 3대가 걸어가는 사람을 에스코트한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다고. 대통령 조차 그렇게 까지는 안 할걸."

우리들은 그 말에 동의하면서 깔깔 웃었다. 

"내 이야기만 너무 한 것 같네. 다른 사람 이야기도 들려줘."

"아니. 너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다른 이야기는 너무 시시할 것 같아서 이 자리에서 꺼내지도 못하겠어."

"그럼 내가 겪었던 Help-X 이야기를 해볼게."

마빈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가 이탈리아에서 Help-X를 할 때였어. 호스트는 천연동굴을 살짝 개조해서 자신의 집을 짓고 있었어. 돈이 엄청 많은 사람 같아 보였어. 고용된 일꾼들도 있었지만 Help-X를 통해 온 사람들도 몇 명 있었어. 그런데 그 사람은 Help-X 자원봉사자들을 마치 자신의 노예처럼 대하는 거야. 식사는 꿀꿀이 죽 같은 것만 나오고, 잠자리도 개떡 같았어. 굳이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없어도 집을 지을 돈은 충분히 많아 보이는 사람인데, 우리들을 그렇게 대하니 너무 화가 났어. 다른 자원봉사자들도 불만이 많았지. 나는 다른 자원봉사자들에게 여기서 도망치자고 했지만 아무도 동참하지 않았어."

"그래서 어떻게 했어?"

"밤에 쪽지 '나 그만둘게'라는 쪽지 한 장만 남기고 나와버렸어."

"하하하. 잘했어. 그런데 호스트가 그런 식으로 하면 리뷰에 나쁜 반응이 달리지 않아?"

"맞아. 그런데 호스트가 계정을 삭제하고 다른 이름으로 다시 자원봉사자들을 모을 수도 있지. 그래서 Help-X 공포 이야기라는 웹사이트가 있어. 그거 읽다 보면 나 보다 더 심한 경험을 한 사람도 있더라고."

모닥불은 거의 꺼져서 희미한 붉은색만 남았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지만 마빈에겐 말을 아주 재미있게 하는 재주가 있어서 사람들은 그의 말에 집중을 하고 들었다.

"예를 들면 어떤 거?"

"이건 어떤 중국 여자가 영국에서 겪었던 이야기야. 그 중국 여자는 아이를 보는 일을 하게 되어있었지. 유모 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이의 부모가 직장에 간 사이 아이를 돌보는 일을 했어. 처음에는 별 탈 없었어. 그런데 하루는 급하게 살 것이 생겨서 아이를 집에 혼자 놔두고 집 앞의 편의점에 다녀왔는데, 때마침 호스트가 집에 돌아와 있던 거야. 아이가 혼자 있는 것을 보더니 엄청 화를 냈데.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난 게 아니라 그게 시작이었어. 호스트는 2층의 아이방에 그녀를 두고 밖에서 문을 잠가버렸어."

"뭐 밖에서 문을 잠갔다고? 그건 감금한 거잖아."

"맞아. 마치 감옥 같이 말이야."

"그건 너무 심한데."

"그래서 그녀는 탈출을 결심했데. 문제는 그녀가 2층이라 창문을 뛰어내리기도 애매하고 신발도 없었다는 거야."

"그래서 어떻게 했어?"

우리는 그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무척 궁금했다. 모두가 잘 보이지 않는 마빈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만화를 보면 침대 시트를 묶어서 밧줄처럼 사용하잖아. 그녀도 그런 식으로 방에 있는 천과 끈을 모조리 모아서 연결했데. 그리고는 창문을 통해 그 끈을 타고 내려와서 경찰에 신고를 했다고 해. 물론 맨발로 말이야."

"이건 영화에나 나오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뉴스에도 나올 법 한데. 거기에 비하면 여기는 천국이네."

"물론 Help-X에서 이런 사건이 있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은 아니야. 나도 여러 번 자원봉사를 해봤지만 대부분의 호스트는 다 친절했어. 하지만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WWOOF 보다는 Help-X에서 이런 일이 더 자주 일어나는 것 같긴 해."

마빈은 이어서 또 다른 Help-X 관련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앞의 이야기들이 너무 충격적이라 비교적 임팩트가 적었고 잘 기억나지 않는다. 

주변에 전등이 없는 곳에서 별은 더 밝게 빛났다. 

마빈은 새벽 일찍 솔박카를 떠났는데, 우리들에게 쪽지를 하나씩 남겨 주었다. 알게 되어 반가웠다는 짧은 작별 인사였지만 그래도 인사도 없이 그냥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나는 무척 감동했다. 


나중에 내가 태국에 있을 때 마빈의 동생도 태국에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는 서쪽 끝에 있었고, 그는 동쪽 끝에 있는 데다 연락이 원활히 되지 않아서 다시 만날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솔박카에 두 번째 갔을 때 마빈은 소꿉친구와 잠시 솔박카에 놀러 왔기 때문에 짧게나마 다시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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