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니 Jun 25. 2020

014. 카리스, 피스카스

14. Karis, Fiskars

14. 시내 구경

안나가 일이 있어서 시내로 갈 일이 있을 때 가끔 자원봉사자들에게 같이 가겠냐는 제안을 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언제나 그 제안을 좋아했다. 숲 속에 갇혀있다가 해방된 기분이기 때문이다. 솔박카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는 카리스였다. 카리스는 스웨덴어고 핀란드어로는 "카르야"다. 핀란드에서는 스웨덴어와 핀란드어 둘 다 국어이다. 핀란드의 서남지역에서는 스웨덴어를 많이 사용하고, 동북지역에서는 핀란드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솔박카에서 카리스 까지는 자동차로 약 20분 정도 걸렸다. 

카리스에 도착하자 안나는 루크, 라몬, 카리와 나를 내려주고 도서관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도서관에 가기 전에 우리들은 잠시 편의 점에 들렀다. 나는 휴대전화기에 들어가는 심카드를 샀다. 심카드의 값은 5유로였는데 6유로어치의 통화+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돈을 다 쓰면 다시 충전할 수도 있었다. 당시 내가 한국에서 심카드를 사려고 하면 만원이었고 통화료는 따로 내야 했다. 그 당시 미국이나 한국의 무선전화 통화료는 무선전화가 디지털로 바뀐 이후 사상 최고로 비쌀 때였다. 미국의 V사의 경우 특별한 프로모션을 적용하지 않으면 무선전화 기본 통화료가 90달러였다. 나는 6유로로 얼마나 사용할지 몰랐지만 일단은 싸 보여서 맘에 들었다. 

도서관에서 우리들은 서로의 얼굴을 그려주면서 놀았다. 나를 제외한 다른 자원봉사자들은 그림을 매우 잘 그렸다. 만화에 나오는 것처럼 익살스럽게 그리고 또 그 그림을 보고 실컷 웃었다. 서로의 얼굴 그림 그려주기는 정말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다. 그사이 안나는 볼일을 마치고 우리를 데리러 왔다. 

우리들은 다 같이 마트에 쇼핑을 갔다. 안나는 마트에 가면 주로 설탕과 커피를 산다. 설탕, 소금, 우유, 크림, 식용유, 달걀 등은 덤스터 다이빙 때 절대 찾을 수 없는 물건이다. 유통기한에 비해 회전율이 높기 때문이다. 루크는 거의 항상 잎담배를 산다. 루크에 의하면 잎담배는 핀란드가 영국보다 훨씬 싸다고 한다. 단 담배 필터가 많이 비싸다고 했다. 마트에 가면 누구나 빠지지 않고 꼭 사는 것이 있는데 바로 아이스크림이다. 솔박카의 부엌에는 냉동실이 없기 때문에 도시로 나와야만 즐길 수 있는 호사다. 날씨가 어떻든 언제나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가끔은 큰 아이스크림을 사서 도시에 오지 않은 사람들과 나누어 먹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언제나 부엌에서 종을 쳐서 사람들을 모은다. 아이스크림이 녹기 전에 다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차에 올라 타자 안나가 검은색 젤리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다들 그것을 입에 넣고는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알듯 하면서도 애매한 맛이었다.

"이건 짭짤한 감초야. 핀란드에서 무척 인기가 많은 사탕이지. 나도 어렸을 때부터 이걸 먹어왔어."

안나가 설명을 했다.

"음..."

자원봉사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맛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사탕을 나누어 준 안나를 배려했기 때문에 맛없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어렸을 때 부터 먹어온 사람에게는 추억의 맛이겠지만 쉽게 좋아 할 만한 맛은 아니었다.

"게임을 해서 이긴 사람에게 하나 더 줄게."

"게임에 이기고 싶지 않겠는데요."

솔직한 대답에 차 안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나는 피스카스에 갈 일이 있는데, 거기에 작은 박물관이 있어 거기 가 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야."

안나의 제안에 모두 동의했고 우리들은 피스카스로 갔다. 

'피스카스라면 그 유명한 명품 가위 만드는 회사 아닌가?' 

피스카스 박물관은 무척 조그맸다. 그곳에는 피스카스의 역사를 설명해 놓았다. 17세기 중반 한 독일인이 그곳에 철 제조 산업을 시작하면서 도시가 생겨났다. 근처에 석탄이 많았기 때문에 철을 녹이기에 적합한 환경을 가지고 있었고 그로 인해 도시는 무척 빨리 성장했다. 하지만 기계화가 발달하면서 이 도시도 점점 쇠퇴했다. 

박물관의 마지막은 피스카스 제품을 파는 소매점이었다. 가게의 중앙에는 그 유명한 주황색 손잡이의 가위가 전시되어 있었고 왜 주황색 손잡이가 탄생했는지에 대한 일화가 설명되어 있었다. 

당시 가위의 손잡이를 주황색으로 만드는 회사는 아무도 없었다. 피스카스도 원래 의도적으로 주황색 가위를 만든 것은 아니었다. 원래 만드려던 것은 노란색 손잡이였다. 하지만 플라스틱 주물을 제대로 씻지 않아서 빨간색이 남아있었는데, 그것이 노란색과 섞이면서 주황색 손잡이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의외로 사람들의 맘에 들었고, 여러 가지 색의 시작품 중에서 투표에 의해 주황색이 결정되었다.

<윤광준의 생활 명품>이라는 신문 칼럼을 통해 알게 된 피스카스는 나에게 큰 관심을 주었다. 다른 자원봉사자들은 이미 박물관을 다 나갔지만 나는 각 제품들을 흥미롭게 구경했다. 가게에서는 각종 농기구들을 판매했는데, 삽, 호미, 톱 등도 있었다. 몸통은 모두 검은색에 주황색 손잡이를 가지고 있었다. 그 물건을 보자마자 딱 드는 생각은 '이런 제품은 평생 쓸 수 있겠다'였다. 모든 제품이 아주 견고하고 내구성이 뛰어나 보였다. 절대 고장이 안 날 것 같았고 한번 사면 다시는 살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좀비가 창궐하는 날에는 무기로 써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명품은 괜히 명품이 아니다. 명품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품질을 가지고 있어야 명품이다. 물론 그 신화를 만들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들도 난무한다. 

미니멀리스트인 나는 내가 가진 소유물의 숫자를 늘이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또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도 노력을 하는데,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면 구매를 줄여야 한다. 여기서 명품이 빛을 발한다. 내구성이 좋은 제품일수록 고장 나서 버리는 경우가 적기 때문이다. 고장도 적을뿐더러 사용하는 내내 기분도 좋다. 그래서 이왕 사는 물건은 어느 정도 질이 좋은 제품을 구매한다. 내가 여행 중 가지고 다니던 물건들은 다 어느 정도 값이 나가는 것들이었다. 

피스카스에 온 김에 가위를 살까 하고 심각하게 고민을 했지만 결국 안 사기로 했다. '물건은 사용하고 사람은 사랑하라'는 말이 있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그 가치를 못 하는 것이다. 내가 여행 중에 별 사용할 일이 없는 가위는 결국 나에게 짐만 될 뿐이다. 아쉽지만 후회 없이 박물관을 나왔다. 





이전 03화 013. 모닥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