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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 Jul 15. 2020

015. 라스보그

15. Rasborg

15. 라스보그


한 번은 라스보그에 놀러 갔다. 그곳에서 안나의 친구가 카우치서핑을 하는데 집주인이 여행을 가는 사이 집을 사용해도 된다고 했다. 그 집에 샤워 시설이 있던 것이 우리가 가게 된 큰 이유였다. 집으로 가기 전 근처의 중고 물건 가게에 들렀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었는데 나는 여름옷 밖에 없었기 때문에 스웨터를 5 유로를 주고 샀다. 덩치가 작은 나에게 너무 헐거웠지만 없는 것보단 나았다. 

도시의 입구에는 유럽 전통식의 집들이 양 옆으로 늘어서 있었다. 

"예전에 이 도시는 영주가 살던 곳이었어.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공장이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위축됐어."

안나의 설명을 들으면서 우리는 집으로 갔다. 

집주인의 동생이 문을 열어주었다. 집안에 들어간 자원봉사자들은 경악을 했다. 집안의 바닥이 무언가로 가득했다. 말 그대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내 친구 Y 군도 정리를 안 하기로 유명하다. 그의 방에 있는 카펫 바닥 색을 잊어버릴 정도라고 종종 말했다. 하지만 이 집의 난장판은 아예 차원이 달랐다. 이것이 과연 사람이 사는 집인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바닥에는 레고, 공룡 장난감, 장난감 자동차, 카드, 구슬, 그림책, 빨래, 깃털, 먹다 남은 음식, 콘돔까지 널브러져 있었다. 부엌에는 설거지거리가 넘쳐나고 있었고 음식물 찌꺼기가 프라이팬이 남아있는 채였다. 식탁 위에는 먹다 남은 빵조각에 곰팡이가 자라고 있었다. 주인이 여행을 간 건지 집안에 폭탄이 떨어진 건지 구분이 안 갔다. 주인의 동생은 우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둘씩 물건을 줍기 시작했지만 전혀 정리가 될 조짐이 안 보였다. 자원봉사자들은 한 명씩 샤워를 했다. 

자원봉사자들이 주인 동생을 도와서 집을 치우기 시작했고 주인 동생은 빨래를 집어서 잘 개켜놓았다. 5명이 같이 협력을 하자 거실과 방은 정리가 쉽게 끝났다. 그래도 한 시간은 족히 걸린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이런 상태의 집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원래 우리 오빠는 어렸을 때부터 정리를 잘 못했어. 그런데 결혼한 그의 아내도 똑같이 정리를 못해. 그래서 집안이 이런 모습이라 미안해."

집주인의 동생이 부끄러워하면 말했다.

"괜찮아요. 샤워를 할 수 있게 해 주신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원래 이 집은 에어비앤비와 카우치서핑을 겸하는 집이야. 에어비앤비는 돈을 받기 때문에 신경을 더 많이 써야 하지. 하지나 카우치서핑은 친구 대하듯 하기 때문에 별로 신경을 안 써도 돼. 한 번은 에어비앤비 손님을 받는 도중에 카우치서핑 게스트가 온 거야. 그래서 한 명은 돈을 내고 다른 한 명은 돈을 안내는 애매한 상황이 생긴 적도 있어."

주인 동생은 일단 집 정리를 마치고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자원봉사자들도 동네를 둘러보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집 근처에 바닷가가 있었다. 루크는 팬티만 입고 들어갔고, 카리도 팬티만 입고 상의는 탈의한 채 바다로 뛰어들어갔다. 솔박카에서 수영을 할 때에도 카리는 옷을 벗지 않았다. 카리가 맨가슴을 내놓은 모습을 우리들은 처음 보았고 조금 놀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옆에 공장이 있어서 바닷물이 많이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은 수영을 안 한다고 했다. 수영을 마치고 우리는 바로 옆에 있는 놀이터로 갔다. 놀이터는 마치 1970년대에 늦어도 1980년대에 만들어진 것 같이 오래되어 보였다. 하지만 유지 보수는 계속 해왔는지 모든 것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놀이터 주변의 집들도 그 당시에 지어졌는지 다 문이 좁고 창문도 옛날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놀이터와 마찬가지로 유지 보수는 잘 되어있는 것 같았다. 북유럽 사람들은 물건이 고장 나면 버리는 대신 고쳐서 다시 사용하는 문화가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놀이터에는 신기한 놀이기구들이 많이 있었다. 네 명이 같이 타는 시소, 360도로 회전하는 그네, 악기처럼 소리 나는 통 등등. 우리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놀았다. 우리들이 노는 모습을 보더니 동네의 작은 아이들도 하나둘씩 놀이터로 와서 놀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놀이터를 비워주고 동네 바로 갔다. 

바로 가는 길에 루크가 한 식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식물 알아?"

그것은 마치 꽈리와 같이 생겼지만 꽈리는 아니었다.

"그 식물에는 독이 있어. 무척 맛있어 보이지만 먹으면 안 돼."

루크는 열매를 하나 따면서 설명했다. 

루크가 그 열매의 겉에 싸여있는 얇은 겉껍질을 벗기자 속에는 먹음직스러운 주황색 열매가 나왔다. 루크는 열매를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나서 수풀 속으로 던져 버렸다.

계속 길을 걷다 보니 풀밭이 나왔는데, 사과나무가 있었다. 초록색 사과가 주렁주렁 열려있었고, 바닥에도 많은 사과가 떨어져 있었다.

"이 사과 먹어도 될까?"

라몬이 물었다.

"먹어도 되는데 아마 맛없을 걸."

루크는 아는 것도 많다. 

다들 사과를 하나씩 주워서 한입 베어 물었지만 시기만 한 맛에 인상을 찌푸리고 멀리 던져 버렸다.


바에서 집주인의 동생과 만나기로 했지만 올지 안 올지 확실하지는 않다고 했다. 루크, 라몬, 카리는 바에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맥주를 주문했고, 나는 레모네이드를 시켰다. 바의 한쪽 구석에는 다트, 농구, 당구 등의 게임기가 있었다. 우리들은 이런저런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우리 바로 옆에서 밴드가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비좁은 장소에 비해 음악 소리는 너무 컸고, 도저히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음악을 두어 곡 들은 후 우리들은 바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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