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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벤더핑크 Oct 08. 2021

카페 세끼

경산 힐링 여행 2

   반곡지가 데크가 있는 마냥 평탄한 산책코스인줄 알았더니 사유지 부분에 다다르자 막상 등산에 버금가는 험난한 코스가 등장한다. 한바퀴 크게 돌고나니 다리가 살짝 아플듯 해서 근처에 멀리서부터 눈에 들어오던 카페로 자연스럽게 발길이 향한다. 카페 주인이 직접 키웠다는 천도복숭아 쥬스의 적당한 당도에 기분 좋은 당분 한잔으로 수분은 물론 당 충전 완료! 그런데 창밖으로 빗방울 떨어지는게 보여 후다닥 카페를 나선다. 대구에선 타이밍이 안맞아 밖에 나오면 비가 내리고, 실내로 들어가면 비가 그쳐, 결국 비만 골라 맞으며 돌아다녔는데 경산에선 타이밍이 그리 나쁘진 않은듯 하다. 비가 그치자마자 도착해 사람들도 없었고 그래도 반곡지를 다돌고 비가 내려서 그나마 한적하면서 뽀송한 산책길을 즐길 수 있었다.



  내리는 비에 실내 활동 코스인 한의촌으로 곧장 향했다. 차에서 내리니 마침 다시 비가 그쳐 풍경을 한번 둘러보고 족욕을 위해 안으로 향했다. 체형 교정 프로그램이 하고 싶었는데 수,토요일 밖에 안되어 족욕만 하기로 했다. 오천원이란 부담 없는 가격에 끝나면 한도 내주신다. 건강을 머금은 듯한 쑥  항기 맡으며 하는 족욕. 따뜻해지는 발에 노곤해져오며,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한다. 오늘밤은 푹 잘 수 있을 것같다.

  

   족욕을 하고나니 기운이 돋아 내친 김에 눈독만 들이던 카페로 향한다. 카페를 찾다 미처 못보고 지나쳐 다시 유턴하려는 찰나 눈에 들어오는 탁 트인뷰. 망설일 것도 없이 이미 나란히 새워진 차들 뒤로 차를 댄다.

  연꽃잎이 풍성한 못. 가만 있어도 예쁠 법한 연두색 개구리밥 도화지에 오리들이 엉덩이를 붓삼아 사방으로 나아가며 한 폭의 난을 치 듯 그림을 그려대기 시작한다. 사방이 초록초록한 뷰를 보며 걷고 있자니, 불현듯 '행복하다'란 생각이 든다. 족욕으로 풀린 몸의 가벼움과 개운함, 하루종일 마스크로 답답했을 코가 마스크를 벗어 던지자 숨이 탁 트이는 듯 코 속으로 쏟아진  맑은 공기, 더불어 어디선가 바람결에 실려오는 꽃향기와, 평일 흐린 날씨라 사람이 거의 없는 여유와 고요함, 그린색으로 편안해진 시야와 여유로운 발걸음 그리고 무언가에 쫓기지 않아도 될 마음까지 넉넉해지는 시간까지...모든 것이 완벽했다. 된장에 밥 비벼 먹다말고 행복하다란 생각을 한 적이 있지만, 식전의 공복에도 불구하고 문득 이런 생각을 들게 해주다니.

행복하다...

이 길을 걸을 수 있음에..

이런 여유가 있을 수 있음에...

그리고 머리를 어지럽히는 아무런 생각 없이, 온전히 나의 여유에 집중할 수 있음에...



  한바퀴 돌고 나니 살포시 어두워지는 듯해, 다시 카페를 찾아 나선다. 카페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유턴을 한번 더 해야 했는데, 지나면서 어떤 곳인지 궁금해 차를 멈춘 곳이다.

 멀리 사람들이 모여있어 재미난 구경이 있나 싶어 다가가 본다. 해설사가 한장군 묘에 대한 설명이 한창이다. 왜구가 주민을 괴롭히자 누이와 함께 여자로 변장해 왜구를 무찔렀다는 한장군의 묘이다. 귀동냥이나 해볼까 싶어 옆에서 사진을 찍으며 알짱거리고 있자니, 들리는 말로 짐작컨대 노인 분들 대상으로 해설사 교육을 하는 중인 것 같다. 그치만 다시 비가 한 두 방울 내리기 시작하여 나의 귀동냥은 그냥 미수로 끝내고 다시 차로 뛰어간다.


   그러고 마침내 도착한 카페 안포레. 이 카페를 가기 위해 삼정못과 한장군묘 관광지를 두 군데나 더 들리는 먼 여정을 거쳤다. 아니 이 카페 덕에 경산에서 두 군데를 더 관광할 수 있었다. 카페를 오지 않았더라면 삼정못에서 행복도 느끼지 못하고 돌아갔겠지...이번 여행에 핵심 역할을 한 고마운 카페다.

잘꾸며진 정원에 에펠탑이 있고 파운드 케잌이 맛있는 경산 카페 안포레


  정원을 꾸민다면 이런 스타일로 만드리라~ 이미 복숭아 쥬스에 족욕 후 한차까지 한 잔해 더 들어갈 배도 없던 나는 정원에서 찍튀만 할까 살짝 고민하다 멀리 창문 넘어로 왠지 모를 주인장의 눈총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알바생이 그냥 쳐다본 거 였을지도), 여행의 길잡이가 되어준 감사함에 대한 답례 겸, 그리고 실내 인테리어도 궁금해져 안으로 들어가본다. 곧 저녁도 먹으러 가야 되기에 자리에 앉아 먹지는 못하고 돌아가 집에서 먹으려 레몬 파운드 케익테잌아웃한다.



  코로나 여파인지 시골 평일이라 쉬는 날이라 그런건지 콩 두부 샤브샤브, 한효주가 다녀갔다는 국시집, 검정콩국수 등 검색했던 맛집은 모두 문이 닫거나 막상 주소지에 도착하니 없어 또 다시 허탕을 치게 된다.

   시골 마을이라 음식점 자체가 많이 없는 듯 한데, 어디로 가야하나 고민하던 찰나, 그때 마침, 맞은 편 식당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는 흑염소 순대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웰빙 음식 콩샤브샤브로 힐링 여행의 정점을 찍으려던 나는 아쉬운 대로 철분, 칼슘이 높아 여성들에게 좋다는 흑염소로 갈아타기로 했다. 확실히 사람들이 많은 곳은 이유가 있다. 현지 맛집 포스다. 소박한 외모와 투박한 플레이팅과 달리 찬이 전부 내 스타일이었다. 겉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음식이 아닌 속으로 알차게 꾸민 듯한 맛. 특히 인생 부추무침도 만났다. 흑염소탕은 순대국맛인데, 비리지도 않고 먹을 수록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건강한 음식은 몸이 제일 먼저 안다. 기름진 음식을 잔뜩 먹은 배부름과는 다르게 배가 안정적으로 꽉찬 기분 좋은 배부름에 그저 행복하다.

 

그래. 오늘은 좀 일이 풀리는 구만.

경산 카페 호미호시

   내친 김에 어제 야시장에서 세끼 하지 못한 한을 여기서 풀기로 한다. 카페 세끼. 호미호시도 꽤나 유명한 카페인데, 근처 유명 카페들이 전부 차로 10분 거리 내외에 있어 카페투어를 해도 부담없을 정도다. 입가심을 하기위해 들어서니 유명세 만큼이나 인테리어가 감각적이다. 초코바나나 쥬스를 먹으러 갔으나, 메뉴에서 얼마전 빠졌다는 아쉬운 점원의 말을 뒤로 하고 루이보스 바닐라를 시켜본다. 시원한 차를 먹고 싶었으나 따뜻한 티일거라는 생각에 좀 아쉬웠는데 아이스로 드릴까요하는 질문에 냉큼 아이스로 주문한다. 아.루(아이스 루이보스 바닐라)는 처음인데, 시원하면서 맛있었다.



오늘은 모처럼 삼시 세끼, 삼시 세잔의 미션을 완수해, 배의 목소리는 어제와 다른 한껏 고조된 톤으로 연일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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