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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벤더핑크 Oct 07. 2021

비로소 여행 시작

경산 힐링 여행 1

    누가 북어 미역국을 산후조리와 해장에만 좋다 했던가?


    아침 조식으로 나온 오리훈제는 뒷전이고, 북어 미역국을 한 사발 시원하게 그릇째 드링킹 후 한번 리필했던 미역국 한 그릇을 재차 비워내니 어제의 피로가 식도를 타고 쑥 내려간 느낌이다. 매일 늦잠과 게으름으로 아침을 걸렀는데 남이 차려준 밥상은 언제나 맛있다는 10년 차 주부들을 마음을 이해하는 어엿한 10년 차 자취생에게 호텔 조식이란 그 자체로 여간 호사가 아니다.

   배가 든든하니 힘이 난다. 어제와 다르게 실기시험을 위한 오늘의 출근지는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다. 비가 걷히니 맑아진 시야와 든든한 밥심이 불러온 맑은 정신으로 길을 둘러보니 어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홀연히 눈에 들어온다. 버젓이 출근길에 어제 가고 싶어 찾아가려다 불발된 소바 집도 보인다. 

어젠 초행길에 길을 잘못 들어 조금 늦게 도착한 게 내심 걸려 오늘은 만회해보려 일찌감치 자리 잡았다. 어차피 시험시간 한 시간 전으로 잡힌 회의시간은 넉넉하게 염두에 둔 것이라 일찍 와봤자 이미 진행되는 과정도 다 알고 있어 별 할 일 없이 마냥 기다려야 하기에 30분까지는 여유가 있음을 여러 번 해본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이미 알고 있지만, 오늘은 내가 경험이 부족한 부분을 왠지 부지런함으로라도 채워야 될 듯싶었다. 사이좋게 오늘은 내가, 어제는 다른 분이 먼저 도착해 기다린다.


   마치는 시간은 한시는 될 거라 예상했는데 어제와 같이 수준 높은 대구 학생들의 조기 시험 완료와 같이 일한 감독관님의 빠른 일처리 덕에 오늘도 조기퇴근이다. 똑 부러지고 아는 게 많아 보이심이 보기에도 남달라 보였는데 역시나 마칠 때 주신 명함을 받고 보니 이번에는 대학 산업경영 연구소에서 일하는 연구원인 박사님이시다. 아는 게 많을수록 여유가 있고 겸손하시다. 회사에서 간간히 만나질 법한 하는 것 없이 빈수레만 요란한 사람들과 다르게 진짜 고수는 굳이 드러내려 애쓰지 않는다. 허리까지 숙여 인사하며 다음에 또 보자고 하시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폴더 인사하며 헤어진다.


잠시 맡은 부담 없다 생각 한 일도 일은 일이었나 보다. 긴장의 끈이 풀어지고 이제 모든 것이 다 끝났다는 생각에 이제야 비로소 홀가분하게 여행 온 기분이 난다.




어제부터 벼르던 납작 만두 맛집이 근처라 걸어가 보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백신 맞으러 어제, 오늘 휴무라 붙어져 있다. 윽. 하필 내가 대구에 온 이틀 다 휴무라니. 블루리본이 덕지덕지 붙어진 문을 보고 나니 한층 더 아쉬웠다.

서둘러 찾은 남문시장 납작 만두 맛집. 먹어보니 맛있어서 두 개를 추가로 포장해 왔다.


일기예보가 비로 예보되어 있어 원래 예정지인 경산을 갈지 아니면 곧장 집으로 갈지 여행 내내 고민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가보자는 생각에 반곡지를 내비게이션에 찍는다. 가는 길에 제법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자 어제 비가 온 대구에서의 고생이 생각나 다시 한차례 망설인다. 이제라도 집으로 차를 돌려야 하는 것인가? 반곡지가 30분 이내로 남아있어 그래도 가보자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망설이던 마음과 달리, 경산 주변으로 들어서자 초록빛이 감돌며 공기마저도 맑아진 게 마치 눈으로 보이는 듯 느껴졌다. 내가 좋아할 만한 큼직한 카페 터들도 제법 보인다. 이곳도 조금 지나면 카페 명소가 될지도. 경산은 일단 내 스타일인 것 같다. 난 역시 도심지보단 갑갑했던 마스크를 벗어던질 숨 쉴 만한 곳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반곡지에 도착하자마자 감탄이 튀어나온다. 왜 출사지로 이곳이 유명한지 알 것 같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인지 경계를 나눠주는 것은 보기에도 어림잡아  백 년쯤 더 되어 보이는 멋 부리지 않아도 멋이 저절로 배어오는 나무들이다. 우중충한 날씨의 그레이 빛깔에도 이리 영롱하고 황송한데, 맑은 하늘빛의 날씨에는 혹은 봄꽃과 새싹이 피어나는 계절에는 더욱 예쁨을 뽐낼 듯하다.

오늘은 넉넉하게 반곡지와 한의촌 족욕 외에 다른 스케줄은 넣지 않았더니 여유로운 마음에서부터 깊숙이 우러나온 느린 발걸음에 뒤에서 추격해온 사람들을 모두 앞질러 보내며 나만의 속도로 느리게 걷기 시작했다.

여행의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제대로 힐링 여행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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