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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벤더핑크 Oct 06. 2021

한의학이 체질이라

대구행의 정체 3 - 의료 보양 관광

[대구여행기 1편] 미스터리 한 대구행의 정체

[대구여행기 2편] 먹는 것에 신중한 편


  나의 저질체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는 대구 방문 전 미리 아플 것을 예상해 진료예약을 잡았다. 나의 몸은 역시나 예상에서 한치의 빗나감 없이,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폭풍 운전과 오래간만에 집중한 업무 덕에  여행 시작도 전에 벌써부터 상태가 무척 메롱 하시다.


   진료예약시간이 가까워지자 혹시 몰라 여유롭게 출발해 차는 우선 병원에 주차해 두고, 그래도 시간이 한 시간 정도 남아 내친김에 진료 후 돌아볼 예정이었던 청라언덕으로 향한다. 사실 근대 건물은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계산 성당과 청라언덕의 선교사 집들의 사진을 '여행 아닌 여행'이란 글에 넣고 싶어 찍으러 가야겠다고 미리 인터넷에서 눈도장 찍어둔 곳인데, 마침 병원 바로 옆이었다.

 


   청라의 언덕은 도심 중간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즈넉하다. 대구는 근대 건물이 제법 잘 보존되어 있어 시내 중간중간 불쑥 튀어나온 고딕 양식의 건물들이 현대 건물과 어울리지 않을 듯한 예상을 깨고 뜻밖의 조화를 이루며 특히 눈길을 끌었다.

건물 모퉁이를 돌자 크게 핀 무궁화 한 그루의 꽃 틈 사이로 분주하게 날아다니는 커다란 검은색 나비가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큰 나비를 가까이서 보는 게 신기해 사진에 담아와 보았다. 살랑 거리는 가볍고도 예쁜 날갯짓의 바람결에 왠지 기분 좋은 일이 날아올 것만 같다.



30분 정도면 돌 수 있는 짧고도 평화로운 산책 코스. 

잠깐의 산책을 마치고 진료예약 시간이 다되어 한의원으로 들어섰다.


시원하고 꽤나 효과가 좋았던 한방동의고 파스

   예약한 원장님은 부산에서 꽤 오랫동안 진료를 받았는데, 갑자기 대구로 가시게 되어 내심 아쉬웠던 차였다. 그런데 이렇게 낯선 도시에서 아는 얼굴을 다시 뵈니 더 반가웠다. 부산에서는 항상 쫓기듯 바빠 보이셨는데, 대구에서는 뭔가 여유로운 느낌이셨다. 잠깐의 담소와 최근 상태 업데이트 후, 오래간만에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치료를 받고 챙겨 주신 한방 파스를 챙겨 들고 한의원 문을 나선다.

 

   사실 외과 쪽으로 어딘가 부러지거나 찢어지는 등 외상이나 암, 신장 투석 등 각종 의료기계와 맹장 수술 같은 가벼운 수술을 비롯하여 고난도의 수술까지, 혹은 중증의 질병의 경우 양학이 더 바람직하겠지만, 일반적인 경우 눈에 보이지 않는 내부를 다스리는 것은 한의학이 나와 더 적합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예를 들면, 몸에 열이 나는 것은 바이러스가 침투 시 바이러스가 견디기 힘든 고온의 환경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면역 작용인데 원인을 찾아 다스리기보다 표면에 보이는 열이 나는 증상만 없애는 해열제를 먹고 마는 (너무 고열이나 열경련이 없다면, 체온을 억지로 약으로 내리게 되면 회복이 오히려 지연될 수 있음) 양학적 접근보다 속을 다스려 근본을 잡으려 노력하는 한의학이 항상 골골거리는 나에게 더 부합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약은 빠른 증상 회복을 요구하는 한국인들의 급한 성미로 항생제 등 약물이 남용되는 경향이 있다. 외국의 경우, 감기로 병원을 가면 약을 주는 것이 아니라, 비타민 C와 물을 많이 섭취하라는 처방을 내린다. 센 약의 빠른 결과물이 증상은 빠르게 완화시킬지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몸의 수명도 빠르게 닳아버리게 만들거나 한쪽은 낫더라도 다른 한쪽에 문제를 낳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감기와 같은 가벼운 질병에서 나는 그다지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평소 이런 나의 생각에 더해져 특히 침을 맹신하게 된 계기는 미국 뉴욕에 있을 때였다. 뉴욕 맨해튼 시내에 내가 정말 애정 했던 공원은 Bryant Park이었다. 뉴욕에서 제일 핫한 5th Ave와 42번가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오며 가며 지나가면서 자주 들렀던 이곳에서는 겨울이면 Ice skating을 즐길 수 있다. 나는 스케이트 신발을 들고 와서 신나게 스케이트를 탔는데, 그날 스케이트를 타다 넘어진 것도 아니었는데 추운 날씨에 무리였던 건지, 집에 가는 길에 걸어가다 한번 왼쪽 발목이 찌릿하더니 그 이후로 발목이 계속 아파 잘 걷지 못했다. 그러다 낫겠지 싶어 병원에 가지 않고 나뒀는데, 갈수록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발목도 계속 부어왔다. 정부 인턴쉽으로 파견 나갔던 터라 병원비가 한국보다 훨씬 비싸다고 한들 보험으로도 충분히 비용이 처리될 수 있었지만, 왠지 미국 병원의 프로세스도 익숙하지도 않고, 한국과 다르게 예약만 몇 주를 기다려야 하기에 예약을 기다리는 동안 자연 치유가 먼저 될 것 같았다. 그러던 차에 한인타운이 발달한 뉴욕답게 당시 내가 거주하던 뉴저지 지역에 한의원이 있다는 것을 듣고 찾아가 침 한방 맞았는데, 거짓말처럼 붓기도 바로 가라앉고 일주일 새 나아져 다시 걸어 다닐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원래 예전부터 한의원을 즐겨 찾아 한약 약재 냄새도 좋아하고, 쑥뜸이나 침 맞는 것도 좋아했다. 목과 허리, 다리를 다른 날 찾아와 각각 따로 치료해야 되는 정형외과보다 한 번에 다 같이 치료해주는 점도 한의원을 더 자주 찾게 되는 하나의 이유다.

 

   내친김에 다음 날 경산에서 동의 한방촌으로 족욕을 하러 간다. 날씨가 일기예보에서 비로 예정되어 있어 실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다 보니 족욕과 체형 검사가 눈에 띄었다. 예약을 위해 전화를 걸어보니 아쉽게도 체형 검사는 수, 토요일만 가능해서 족욕만 체험해 보기로 한다. 경산시 소유이지만 운영은 한의대에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곳은 생각보다 꽤나 컸다. 한의원도 같이 있고, 점심에는 한방 뷔페도 이용할 수 있는 듯하다. 네일아트, 얼굴 마사지 등의 체험도 저렴하게 이용해 볼 수 있는데, 요일이 정해진 예약제라 오늘은 하지 않아서 아쉬웠다.


   쑥을 푼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자, 온몸이 녹아내릴 것 같다. 사람이 없었던 탓에 족욕도 원하는 시간만큼 하도록 해주셨다. 온몸에 따뜻한 기운이 돌면서 나중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끝날 쯔음에는 내어주신 핑크 쏠트로 발바닥을 문질러 각질을 한차례 제거한 후 물로 씻어내고, 족욕한 물에 담겨 있던 쑥팩을 짜서 발에 남은 물기를 한차례 닦아낸다. 세심하게 풋스킨과 풋로션을 뿌려주시고 알려주신 지압 부위를 따라 한차례 발마사지를 스스로 하고 나면 족욕 코스는 비로소 끝이 난다.

 

땀을 흘린 갈증은 내어주신 한차 한잔으로 몸속 깊숙이 채운다. 

모든 신체기관과 연결되어 인체 경혈의 축소판이라는 발을 다스리고 나니, 개운함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감싸는 느낌이다.

발바닥 혈자리


    속까지 건강함을 채워 넣기 위해 첫날은 키토 제닉 식단으로, 둘째 날은 흑염소탕으로 보양을 하면서, 여행 후 기진맥진이 되어 뻗어 버릴 줄만 알았던 나의 예상과 달리 적절히 의료와 보양 관광을 가미한 덕분에 대구, 경산 여행을 다녀온 후 오히려 머리는 맑아지고 컨디션이 더 좋아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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