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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벤더핑크 Oct 05. 2021

먹는 것에 신중한 편

대구행의 정체 2 - 맛집 탐방 (어쩌다, 키토 제닉)

[대구여행기 1편] 미스터리 한 대구행의 정체


예상보다 훨씬 이른 퇴근에 냉큼 대구에서 제일 먼저 가보고 싶었던 앞산 카페로 달려갔다.

 

여행은 날씨가 반인데 비가 보슬보슬 내리다 말다 하고 있다.


아침으로 가벼운 바나나 쥬스 한 잔

  8시까지 폴리텍 대학에 도착해야 되는 일정이라 5시 반에 일어나서 두 시간을 헤매며 운전 후, 잔뜩 긴장하면서 채점까지 마쳤더니 컨디션이 맛이 가버리면서 입맛도 덩달아 데리고 달아나 버렸나 보다. 대구 카페의 성지라는 곳에서 바나나 주스를 아침 삼아 마시며, 예상치 못한 이른 퇴근과 컨디션 난조로 인해 다소 차질이 생긴, 오늘의 두 번째로 중요한 업무인 점심에 대해 고뇌해본다. (모든 직장인들이 늘 그러하듯, 첫 번째는 물론 저녁이다.)



  여행 전 계획할 때 가고 싶은 맛집의 1순위는 사실 동의보감, 본추학 등의 문헌을 참고해 개발한 전채요리, 메인 요리, 식후 차에 모두 한약재가 들어가는 예약재로만 운영되는 한옥 카페에서의 식사였으나 예약을 위해 전화해 보니 아쉽게도 1인은 예약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차선으로 선택한 계획은 동선에 맞춰 진료 예약한 병원 근처 분위기 좋은 한옥 레스토랑에서의 된장 봉골레 스파게티. 그러나, 이른 퇴근으로 동선이 앞산으로 바뀌었고, 아침잠을 못 잤더니 식욕도 없고, 저녁 야시장 과식을 위해 위를 좀 비워두어야 했기에 내 몸을 위해 부담 없을 청송사과 샐러드 지단 키토 김밥으로 나의 선택지를 바꿨다. 키토 김밥에서 키토는 키토 제닉 식단을 의미하는 말이다.



  요즘 한창 핫한 '키토 제닉 식단'이란 케톤(Ketone)+제닉(Genig/Genisis)의 합성어로 케톤을 생성하는 감량 방법의 식이요법을 뜻한다. 탄수화물은 적게, 대신 건강한 지방을 많이 먹는 저탄 고지의 식단이다. 몸에서 탄수화물이 부족하면 지방을 사용하게 되는 원리를 이용한 식단으로, 몸 안에 저장된 체지방들을 빠르게 뺄 수 있는 다이어트 요법이다. 탄수화물의 양은 20~100g 정도로 유지해야 하는 까다로운 점이 있지만 까다로운 만큼, 효과도 다양하다. 체중을 빠르게 감량하면서도 건강한 감량법이 되며, 혈당과 인슐린이 안정성을 가져와 성인병 예방에 도움이 되고, 호르몬 급락이 줄어들어 감정 기복이 안정적으로 되며, 체내 염증도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탄수화물이 많은 밥 대신 계란으로 채워진 사과 샐러드가 들어간 키토 김밥. 사과가 들어가 있어 내심 상큼한 맛을 기대했는데, 꽤나 큰 크기에 입이 째질 듯 벌려 구겨 넣은 키토 김밥의 맛은 사실 기대에  못 미쳤다. 그냥 한 끼 건강해진 것에 만족하는 걸로...

점심으로 청송사과샐러드 지단김밥


    침 치료를 받고 약간 회복된 몸으로 나의 속도에 맞는 앞산 산책도 마친 뒤, 노을을 보기 위해 앞산 해넘이 전망대를 가려했다. 그러나 해넘이 전망대에선 막상 주차할 곳이 만만치 않고, 비까지 점점 더 내려, 그냥 서문시장 야시장으로 바로 넘어가기로 결심했다. 랍스터, 대구 막창, 꼬막 불고기 비빔밥, 분짜 등 야시장에서 최소 3 끼 하겠다는 야심 찬 포부와 오만 원권 현금을 뽑아오는 굳은 각오로 메뉴도 이미 정해놓고 점심부터 살살 달린 이번 여행의 회심의 코스이다. 겨우 주차해서 비를 뚫고 둘러보니 인터넷에서 보던 노란 푸드트럭을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길목 상인께 여쭤보니 안쪽에서 비와도 할 거라 하셔서 계속해서 시장 안쪽까지 들어가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던 시장관리 직원을 붙잡고 물어보니 어제는 열었지만 비 때문에 오늘은 열지 않는다고..ㅠㅠ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앞산 맛집에서 저녁을 먹는 건데.


나는 먹는 것에는 신중한 편이다.


  먹는 것에 있어서는 나는 정말 궁서체다. 이번 여행 일정은 나의 몸의 목소리를 듣고 나의 몸 상태에 맞춰 모두 느리게 움직였지만, 맛집 일정만은 예전 습성을 양보하지 못하고 배의 목소리가 아닌 달콤한 혀와 냉철한 머리의 목소리를 듣기로 한다. 나의 혀는 지금 대구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만한 맛난 음식이 아니면 무조건 파업이라 외치고 있다. 혀라 그런지 역시 입김이 세다.

 

나의 차디찬 머리도 이에 뒤질세라 동참해서 냉철하게 조언한다.

대구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나 다름없는데 검증 안된 식당에서 대구에서 몇 끼 안 되는 식사 기회를, 그것도 한 번뿐인 저녁식사를 이렇게 헛되이 날려버릴 순 없지 않냐고.


   그렇게 의 목소리와 합리적 이성의 두뇌의 악마와도 같은 속상임에, 한바탕 폭풍 검색 후 심각한 고민 끝에 나름 동선과 맛 평점을 고려해 내린 결론은 내일 예정된 백종원에 나온 대구의 명물 납작 만두를 오늘 포장해 숙소에 가서 먹는 것이었다. 낼 점심은 경산으로 돌리든 여행 전 봐 둔 앞산 맛집으로 돌리면 되리라. 하지만, 내가 고민하던 사이 떡볶이 집은 문을 닫아 버린 건지 비 내리는 차 안에서 차마 내리지는 못하고 가게를 보니 불이 꺼져있다. 오늘은 안 풀리는 일정인가 보다. 거침없고 원초적인 배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지며, 욕이라도 내뱉고 싶은 그때의 내 심정과도 같은 쉑쉑 버거가 갑자기 눈에 들어온다. 쉑쉑 버거나 포장해갈까? 이내 고개를 젓는다. 부산에도 있잖아. 대구에만 있는 걸 먹을래...


 그래, 동성로에 있는 숙소에 주차하고 근처 맛집에 가자. 숙소가 명색이 동성로 핫플인데... 유튜브에서 봤던 맛집으로 향하는데, 길치인 데다가 쌓은 피로와 허기짐으로 머리로 갈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은 나는 그만 반대방향으로 들어서며 다시 헤매기 시작했다. 배가 고파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생각에 눈앞에 보이는 낯익은 이름의 정갈해 보이는 외관인 '경양 카츠'에 들어갔다. 이름이 낯익은 걸로 봐선 내가 검색한 맛집 중에 있었던 거겠거니...


치즈 카츠를 염두에 두고 가게를 들어갔으나, 메뉴에 히트로 표시된 족발 카츠가 신기해 2만 원에 가까운 가격에도 선뜻 시켜보았다. 야시장에서 3끼 식사비도 굳었는데 이 정도야 가뿐하지...

 

'저탄'에 딱 적합할, 평소 먹던 공깃밥의 1/4 수준의 아담한 사이즈의 밥과 '앙증맞은 메추리알 프라이...

그리고 '고지'에 걸맞을, 먹다 보니 생각보다 꽤 많은 양의 족발 카츠.


의도치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 저녁 역시 나름 저탄 고지의 키토 제닉 식단이다. 유자 샐러드의 상큼한 맛과 족발 카츠의 부드러우면서도 바삭한 맛도 좋았다.

저녁은 족발 카츠


돌아오는 길 검색해보니, 체인이라 부산에도 있었다. OTL 그래서 이름이 낯이 익은 것이었어...

그래도 맛있게 배가 차니, 그걸로 족하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왜 그리도 신중하게나 고민했나 싶다.


어쩌다 보니 오늘 식단은 세 끼 모두 키토 제닉 식단이다. 노림수가 있었던 것은 아닌데, 소 뒷걸음질 친 격으로 우연히 키토 제닉 식단에 가깝게 채워진 것은 아마도 내 몸이 나도 모르게 내게 가장 필요한 건강 위주의 식단을 간절히도 끌어당긴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 후 습관처럼 아로마 오일을 바르며 하루 종일 고단했을 내 몸에 향기를 선물한다. 다시 뵈어 반가운 얼굴인 원장님이 센스 돋게 챙겨주신 한방 파스도 팔이 안 닿는 부분까지 스트레칭이라도 하듯 허우적거리며 짧은 팔로 대강 덕지덕지 바르고 누우니,


침대로 가만히 스며들 것만 같다.

이런 속도의 스며듬이라면 내일 아침 눈 뜨면 침대와 하나가 되어 있을 것 같다.


내일은 제대로 비가 올지도 모르는데ㅠ


대구는 다음에 다시 오는 걸로...

여행은 아쉬움이 남아야 다음에 또 올 수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잠을 청한다.



[대구여행기 2편] 먹는 것에 신중한 편

[대구여행기 3편] 한의학이 체질이라

[대구여행기 4편] 나와 떠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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