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38주 0일차
출산이 정말 얼마 안남았음을 알고 나는 조금씩 출산 준비를 했다.
몸이 제법 무거워져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집정리를 했는데
그 날따라 냉장고 외벽 틈에 너저분하게 껴져있는 종이 봉투들이 눈에 거슬렸다.
정리를 좀 해놓자 싶어서 뒤적되며 정리를 하는데 별안간 배 위로 도끼가 내리쳐듯이 뭔가가 떨어졌다.
'쿵!'
티비 스탠드였다. 내가 종이 봉투를 정리한답시고 빼내자 세워져 있던 스탠드가 내 배 위로 망치 내리쳐지듯 세게 떨어진 것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시어머니가 여기에 넣어둔것이라 하더라..ㅂㄷㅂㄷ)
나는 너무 놀라서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내 배로 엄청난 충격이 가해졌다는 것만 인지한채로 겁에 질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렇게 직접적인 충격은 처음이었던지라 뱃속 애기가 잘못됐을까봐 덜덜 떨렸다.
바로 회사에서 달려온 남편의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그곳에서 상황을 설명하고 급하게 진찰을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초음파를 보시더니 말씀하셨다.
"애기는 괜찮은데..지금 낳으셔야겠는데요?"
"예!?"
괜찮다는 말에 안도를 했다가 1초만에 놀랐다. 진통은 커녕 아무런 출산 징후가 없는데 낳아야 한다니?
"이렇게 갑자기요? 왜요?! 다음주에 마지막으로 진찰보고 낳기로 했는데요!"
"양수가 너무 부족해요. 다음주까지 가기에는 애기가 뱃속에서 스트레스를 받겠어요."
세상에..곧 낳을꺼라는걸 알고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출산하게 될줄은 몰랐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잠시 집에라도 다녀오겠다고 했지만 병원에서는 갑자기 출산징후가 올수도 있으니 안된다고 했다.
결국 남편이 집으로 가서 대충 싸놓은 출산 가방을 가지고 오기로 했다.
마음의 준비가 안돼있던 나는 많이 심란했다. 그래서인지 그날 오후 시도한 유도가 잘 듣지 않았다.
결국 다음날 다시 유도를 시도하기로 했다.
그 날 저녁 친정엄마와 통화를 했는데, 친정엄마도 내 갑작스런 출산 준비 소식에 놀라면서도 강조하신게 있었다.
"무조건 자연분만해야한다! 그래야 회복도 빨라! 제왕절개는 안돼! 너 몸 상해!"
친정엄마는 이 부분을 지나치게 강조하셨다. 심란한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던 나는 일단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다시 촉진제를 넣고 유도분만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전날과 다르게 조금씩 진통이 왔다.
진통이 심하지 않을때 잠깐 시어머니가 병원에 찾아오셨다. 시어머니는 서서히 진통을 느끼는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너무 힘들것 같으면...그냥 제왕절개 해도된다. 요새는 기술도 많이 좋아졌다더라."
이 말을 들은지 얼마 안있다가 거짓말처럼 진통이 시작됐다.
와, 세상에...임신하면 10개월동안 생리를 안하는건 알았지만 그 10개월의 생리통이 한번에 몰아서 올줄은 몰랐다. 허리가 끊어질듯 아팠고, 다리 밑은 이단분리가 되려는 것 처럼 얼얼했다.
한참 아파하는 사이 친정엄마가 남편에게 전화를 하셨다.
친정엄마는 내 진통이 시작됐음을 알고 전화를 하신것이었다. 그래서 남편이 전화를 받자마자
"진통 시작됐지? 꼭 자연분만해야하네! 알겠지?!"
라고 하셨다. 나는 그만 끊으라고 했다.
그날 오후, 나는 유도분만으로 출산을 했다.
아기를 안고나서야 오늘 있었던 친정엄마와 시어머니의 말이 생각났다.
자연분만이냐 제왕절개냐.....어떤게 더 낫고 그른지는 알수 없었지만
어쨌든 두 분 다 나를 위해 한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위치가 서로 바뀐것 같았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