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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하는 개발자 May 12. 2023

내가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

르네상스, 벨 에포크

잠시 여행 관련 서적을 읽다가 포스팅의 주제가 될 만한 영감이 스치듯이 떠올라서 

'내가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라는 주제로 글을 써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필자는 감성적인 사진을 수집하는 취미를 들이는 그 과정을 매우 좋아했다. 아마 그런 사진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진 것이 초등학생 때부터 일 것이다. 그런 사진들의 분위기를 살펴보면 대개 정적이며 조용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사진들이 많다. 미술 학원을 다닌 것은 아니었지만 종종 시간이 날 때 모작을 하기 위해 500원 정도의 값이 나가는 샤프로 공들여서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그림을 그렸던 기억도 있다. 세미 클래식, 고전 클래식, 가사 없는 BGM을 좋아하는 취향도 지금과 같이 여전했다. 



이렇게 '예술', '예술', '예술'을 심심할 때마다 언급하는 것치고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본인이 예술이라는 분야에 깊은 조예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클래식, 인상파 미술, 현대 미술, 건축 등에 관해 관심이 아예 없는 이들보다는 조예가 있을지 몰라도 전공자에 비하면 그런 인문학적 소양은 부족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언급해본다. 



필자를 아는 이들이라면 필자가 꽤 '아름다움'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맞다. 나는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는 아름다움이라는 의미에 대해서 사실 거창한 철학이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의외로 예술에 대해 깊이 빠졌다고 자부하는 사람 치고는 제3자가 보기에 해학적이고 추상적이고 난해한 해석을 요구하는 감상 행위를 즐기는 편은 아니며,  그냥 누가 봐도 '아, 이 음악은 아름답다, 이 그림은 아름답다'하는 그런 작품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이러한 연유로 필자는 스스로 좋아하는 예술이라는 취향이 다소 확고하고 스펙트럼도 협소한 편이라고 여긴다. 



세간으로 드러나는 예술은 생명이 없다. 그것들은 유형의 물건으로 세상에 드러날 때도 있지만, 무형의 형태로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기도 한다. 예술 작품들은 실체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무생명체기 때문에 사람을 속이는 일이 없다. 인간 사회의 다양한 군상들을 내보이는 것이 예술이라면 밝고, 환상적이고, 환희에 차 있으며, 신비한 인간 군상의 이면만을 보여주는 집합을 허락하는 것이 예술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가능하다. 대표적으로 벨 에포크 시대의 미술/음악/건축 등이 찬미 받는 이유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그렇기에 내가 수집했던 사진이나 그림들의  분위기를 살펴보면 어두운 작품들은 별로 없다.  다소 강하게 표현하자면 내가 사랑하는 예술의 이면은 마치 환각, 마약과도 같다. 괜히 심리 치료의 방안 중 미술심리치료라는 분야가 있겠는가?



필자를 아는 이들은 잘 알겠지만 사실 내면이 그렇게 밝은 사람은 아니다. 필자도 이 사실을 근 2년 정도에 깨달았다. 아니, 밝지 않게 된 건지 아니면 본성이 밝지 않은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워낙 진지하게 생각하는 성향이 강하고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들뜨게 얘기하는 편이 아닌지라 전체적으로 필자의 하루에 '재미'라는 요소는 거의 없다시피한 상황이 많다.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될만한 자극적인 콘텐츠도 웬만해서 지양하는 편이고, 유튜브 알고리즘도 관리하려고 하는 편이다.



인간 사회에 대하여, 철학적인 관점에 대하여, 인간의 내면을 장악하는 선과 악이라는 관점에 대하여 계속되는 부정적인 고찰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쇼펜하우어의 허무주의에 빠지게 된 그런 필자의 어두운 내면을 조금이나마 밝게 비춰주는 것이 바로 예술이라는 분야인 것 같다. 쉽게 말하자면, 심리적으로 심연을 내딛듯이 꺼져가는 것 같을 때 밝은 분위기의 작품을 감상하거나 밝은 음악을 듣게 되면 단기적으로라도 안정이 되는 메커니즘이다. 꼭 심리적으로 어두운 상황이 아니더라도 다소 기쁨이라는 감정에 차 있을 때 더욱더 환희에 차 있는 내면 상태로 만들어주는 것도 예술의 긍정적인 요소다.




이것이 내가 예술이라는 분야에 극히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이유다. 가끔 포스팅을 보는 이웃분들이나 본인의 지인들이라면 알겠지만, 필자는 언젠가 예술 관련 사업을 하고 싶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또, 본인 명의의 집이 생긴다면 인테리어를 예술관처럼 벽에 그림을 걸어놓고 싶다고도 종종 지인들에게 말하고 다닌다. 



좋은 글을 읽으면 좋은 글을 쓰게 되고

좋은 작품을 보면 좋은 작품을 만들게 된다.

밝은 작품을 감상하게 되면 밝은 작품을 창조하게 된다.

그 사람이 응시하는 것을 통해 함의하는 모든 것이

그 사람이 창조하는 작품에서 드러난다.






필자가 이전에 썼던 여러 글의 저장고에서 꺼내와 그 중 일부분을 발췌해본다.


오늘 하루도 예술을 그리며 살아간다. 사진 혹은 그림을 보고, 독서를 하거나 글을 쓰고, 음악을 듣노라면 다분히 세상은 아름답다는 것을 느낀다. 아무 의미 없는 이 우주에서 의미와 가치를 샘솟게 하는 그 무언가는 인간의 창조적 행위로 말미암아 발현되는 것 같다. 오늘 내가 경험한 모든 것이 적잖은 시간이 지나도 나이가 들어 회상했을 때 아름다운 것이 된다면, 그것이 나의 원동력이다. 삶을 지탱하게 하는 힘이다. 혹자는 말한다. 노인이 되어서는 추억으로 산다고. 한 사람의 생에서 경험한 그 무언가를 예술로써 기억하는 저장창고에 얼마만큼의 작품들이 들어있는지에 따라 그것이 삶을 살게 하는 원동력인 것 같다. 


나의 원동력은 예술이다. 예술은 나를 살게 하는 중요한 근간이 되는 힘이다. 내가 코로 숨 쉬며, 하루의 일정량을 공부하며, 살아가고 싶게 하는 이유를 제공해 주는 근간이 되는 힘이다. 예술이란 삶의 궁극적 발현이며, 예술을 통해 생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고, 예술을 통해 현실과 떨어진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기도 한다. 예술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졌던 내 주위의 환경들을 타자의 동공으로 세상을 보기도 하며, 나의 동공을 통해 내가 느끼는 세상을 타자가 보게 만들어 준다. 내가 경험했던 기억이 하나의 세계가 되어 새롭게 재창조되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이 글이 내가 창조한 수많은 예술 작품 중 하나가 되어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나의 동공을 통해 세상을 관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면 좋겠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삶이라는 거대하고도 추상적인 과제를 예술 행위로 만들어가고, 나아가 훗날 청운의 예술 작품이 되어 찬연하게 아름답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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