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의 혼이 녹아든 종잇장들
빈센트의 생각을 닮고 싶다. 삶과 예술을 사랑했던 그의 순백의 이상, 동공을 통해 관조하는 그 모든 풍경을 캔버스의 화폭에 담아내는 능력, 유화 물감을 통해 새롭게 재창조되는 예술 작품, 그 예술 작품으로부터 드러나는 빈센트의 혼과 정신. 누군가가 보기에 그는 고초를 많이 겪은 이일지라도,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 본 필자의 시각으로는 빈센트 반 고흐는 진정으로 낭만 있는 자였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게 된 계기는 '특별'이라는 명사를 붙일 정도로 비범한 것은 아니다. 고작 책의 서두만 읽고서 후에 300여 페이지가 넘는 활자들을 읽어내기까지로 필자의 마음이 유도된 것은 <반 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이 서적은 진정으로 생전에 빈센트 반 고흐가 그의 동생과 그 외 인물들과 정서적 교감을 주고받았던 편지를 그대로 번역한 번역본이기 때문이었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는 빈센트가 테오에게 쓴 편지의 내용을 주로 이룬다. 빈센트와 테오는 생전에 서로 주고받은 편지의 수가 668통이나 될 정도로 그들의 가치관과 사상, 고민을 자주 공유하고 정서적으로 자주 교감하는 각별한 형제애를 지닌 사이였다.
아마 많은 이들이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하여는 인지하고 있겠으나 테오 반 고흐의 이름은 들어본 적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테오 반 고흐는 빈센트 반 고흐의 동생으로, 빈센트 반 고흐는 현대인들이 흔히 알고 있는 <해바라기> 작품의 화가다. 첨언하자면 둘의 사이가 아주 돈독했다고 하며, 이는 편지의 내용을 읽으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테오 반 고흐는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서적에서 부재해서는 안 될 핵심적인 인물이라 여긴다.
너의 짐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기를, 될 수 있으면 아주 많이 가벼워지기를 바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겐 우리가 써버린 돈을 다시 벌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전혀 없다. 그림이 팔리지 않는걸……. 그러나 언젠가는 내 그림이 물감 값과 생활비보다 더 많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걸 다른 사람도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지금 원하는 건 빚을 지지 않는 것이다. 사랑하는 동생아, 너에게 진 빚이 너무 많아서 그걸 모두 갚으려면(꼭 갚게 되리라고 믿고 있다) 내 전 생애가 그림 그리는 노력으로 일관되어야 하고, 생의 마지막에는 진정으로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 같다. 그러나 그런 건 문제가 아니다. 유일한 문제는 그림 그리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늘 이렇게 많이 그리지 못할 거라는 사실이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中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지만, 예술을 창작하는 데 드는 것보다 적은 경비로 생명을 창조할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하면 우울해지지 않을 수 없다. 예술은 살아 있다는 걸 너에게 다시 느낄 수 있게 해준다면 좋을 텐데……. 어쩌면 나보다 더 예술을 사랑하는지도 모를 네가 말이다. 혼자서 중얼거리곤 한다. 그건 예술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내 잘못이라고. 그리고 마음의 평화와 믿음을 다시 얻을 수 있는 길은 오직 그림을 더 잘 그리는 것뿐이라고.
-반 고흐, 영혼의 편지 中
빈센트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의 내용 중 필자의 기억에 가장 잔상을 많이 남긴 부분은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소외로 인한 테오에게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이다. 그는 테오에게서 생활금을 지원받아 생활해야 했으며, 동생의 짐이 한결 가벼워지기를 원하면서도 자신의 그림이 팔리지 않아 경제적 여건이 좋아지지 않는 상황은 그의 예술을 향한 절박함이라는 감정 또한 탄생시켰을 것이다. 불멸의 작품들을 탄생시킨 위대한 업적으로 현대인들이 기억한 빈센트 반 고흐는 애석하게도 그의 예술 생애에 있어서 금전적인 문제로 항상 본인의 내면과 갈등해야 했을 것이다.
동생을 향한 빈센트 반 고흐의 미안함과 죄스러움이 편지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항상 동생 테오에게서 지원받는 금액으로 삶을 살아가기에 필연적으로 드는 미안함과 죄스러움, 그리고 그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문단을 읽으며 독자로서 취하게 되는 행동은 숙연과 고요다. 자신이 저명해지고 많은 그림이 팔려야 동생에게서 받은 그 모든 은혜를 갚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황이 오지 않는 현실에 대한 참담함이 '그림이 팔리지 않는걸...'이라는 한 마디에 뼈가 녹여진 듯한 미안함으로 드러난다. 사후 백 년 이상이 지나 유산으로써 남는 그의 편지에서도, 독자로서 그의 감정이 파도치듯 확연하게 느껴진다. 그는 얼마나 많은 부채감과 죄책감을 지녔을까.
형 편지를 보니 건강도 별로 좋지 않은데다 아주 많이 고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번 기회에 형에게 확실하게 말해 두고 싶은 게 있어. 난 돈 문제와 그림을 파는 문제, 그리고 경제적인 것과 결부된 모든 일을 존재한 적이 없는 일처럼 생각해. 설령 존재한다 해도 질병 같은 거라고 말이야. 돈 문제는 거대한 혁명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기 전에는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게 분명해. 그러니 돈 문제에 부딪힌다면 그걸 천연두 같은 걸로 치부할 필요가 있어. 물론 있을 수 있는 사고에 대비해 필요한 만큼 조심할 필요는 있겠지. 하지만 그 문제로 너무 머리 아파하지는 마.
-반 고흐, 영혼의 편지 中
동생에게 한없는 감사와 부채감을 지닌 빈센트의 심령을 위로하듯 테오의 편지에서는 빈센트의 그림을 향한 무한한 응원과 신뢰가 돋보인다. 테오는 빈센트에게 경제적인 문제가 질병 같은 것으로, 항상 누구에게나 있어왔으니 그렇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준다. 예술에 삶을 온전히 맡기면서도 경제적인 갈등을 빚고 있는 자신의 형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테오가 그의 형의 그림을 완연하게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빈센트와 테오가 나눈 600통이 넘는 편지 속에서 드러나는 가족애, 형제애가 단연 이 <반 고흐, 영혼의 편지>의 핵심이 되는 가치 중 하나가 아닐까? 혈육이라는 끈 아래서 육체가 나뉘었지만 동일한 예술가의 혼을 지닌 그들이 펜을 통해 써 내려간 활자는 읽는 이로 하여금 형언할 수 없는 예술의 숭고를 함께 느끼게 만든다. 읽는 독자들의 뇌리에 깊은 여운을 남기는 두 형제의 그림을 향한 이상은 그들이 예술의 숭고함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동일한 예술가의 혼을 지녔기 때문에 발현된 것이 아니었을까-라고 조심스레 사유해본다.
캔버스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무한하게 비어 있는 여백, 우리를 낙심케 하며 가슴을 찢어놓을 듯 텅 빈 여백을 우리 앞으로 돌려놓는다. 그것도 영원히! 텅 빈 캔버스 위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삶이 우리 앞에 제시하는 여백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삶이 아무리 공허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아무리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서 쉽게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난관에 맞서고, 일을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간단히 말해, 그는 저항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中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 되고, 자신이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낄 때인 것 같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中
빈센트 반 고흐는 개인의 삶을 무한하게 비어 있는 여백과 같은 캔버스에 비유한다. 인간의 삶은 어떤 순간은 공허한 여백의 캔버스와 같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공허한 캔버스에서 두 눈으로 담을 수 있는 다채롭고 아름다운 장면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그것이 어떠한 크기의 캔버스든 그것으로 의미 있지 않을까.
빈센트의 생각을 닮고 싶다.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 되고 자신이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존재가 아니라 도움이 될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낄 때인 것 같다고 적힌 그의 편지를 통해 느껴지는 울림에서 가치를 느낀다. 삶과 예술을 사랑했던 그의 순백의 이상, 동공을 통해 관조하는 그 모든 풍경을 캔버스의 화폭에 담아내는 능력, 유화 물감을 통해 새롭게 재창조되는 예술 작품, 그 예술 작품으로부터 드러나는 빈센트의 혼과 정신. 누군가가 보기에 그는 고초를 많이 겪은 이일지라도,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 본 필자의 시각으로는 빈센트 반 고흐는 진정으로 낭만 있는 자였다.
반 고흐에게 예술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가 경제적인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일평생을 그림 그리는 일에 바치고 싶어 했던 그에게 예술이란 삶의 전부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 한 장 한 장마다 쓰여 있는 예술에 대한 예찬은 그의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게 하는 힘, 그를 에워싸는 척박했던 세상 속에서도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예술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반 고흐. 그림을 그리는 일에 일생을 전심으로 살았으며, 그럼에도 당대 사람들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알아주지 않았지만 그의 혼은 그의 그림에 녹아들어 남아 있다.
누군가는 그를 이렇게 부른다. 비운의 예술가라고.
그러나 필자는 이제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그를 향한 연민과 위로의 감정을 품으며 적어본다.
그의 그림들은 인류의 기억에 아주 오래도록 빛나는 성운이 될 것이라고.
그가 혼의 진액을 내어 창조한 예술작품들은 우주 속에 불멸하는 성운처럼 찬란할 것이다.
화가의 의무는 자연에 몰두하고 온 힘을 다해서 자신의 감정을 작품 속에 쏟아붓는 것이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中
겨울이 지독하게 추우면 여름이 오든 말든 상관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부정적인 것이 긍정적인 것을 압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냉혹한 날씨는 결국 끝나게 되어 있고, 화창한 아침이 찾아오면 바람이 바뀌면서 해빙기가 올 것이다. 그래서 늘 변하게 마련인 우리 마음과 날씨를 생각해 볼 때, 상황이 좋아질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