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 책의 제목부터 직관적으로 도스토예프스키는 어떤 그림들을 사랑했을지 연상할 수 있게 만든다. 제목부터 도스토예프스키는 예술작품을 사랑한, 그중에서도 그림을 사랑한, 아름다움의 격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그가 사랑한 그림에 대한 글을 읽는다면 도스토예프스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까?
도스토옙스키는 <작가 일기> 저서를 통해 화가들의 그림을 보고 떠오른 생각을 마음에 긁어 새겨두었다가 글로 풀어냈다. 예술작품을 창의성의 교재로 삼은 그의 문학은 그 자체로 거대한 미술관과도 같다. 미술이 상상력과 창의력의 보고임을 알았던 도스토옙스키는 묘사하기 까다로운 작중인물들의 형상이나 감정을 그림을 통해 표현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평소 미술 평론과 시사평론을 꾸준히 해왔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그의 미술평론에는 그의 독자적인 미술관이 잘 나타나있다.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미술평론을 포함한 명저들의 글로 본 작품을 감상하는 그의 가치관과 사상을 엿보고 제삼자의 시각으로써 풀어낸 또 하나의 저서다. 예술적 감각을 가미한 다소 독특한 형식의 작품으로, 그가 사랑한 그림을 엮어낸 에세이라고 볼 수 있다.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은 다음과 같은 목차로
1부. 성聖과 속俗
2부. 미美와 추醜
3부. 생生과 사死
를 나눈다.
성聖과 속俗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신앙관에 빗대어 어린아이의 성스러움에 관한 관점, 고통과 고난을 다루는 예술에 관한 관점, 참회와 회개에 관한 관점, 그 외 말과 돈의 힘에 관한 관점을 풀어낸다. 미美와 추醜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추구하는 미적 가치관을 풀어내는 대목이며, 생生과 사死 또한 유토피아의 환상과 허무, 고통과 죽음, 인간으로서의 내면을 성찰하는 내용에 관한 관점을 드러낸다.
필자는 그중에서도 미美와 추醜를 담고 있는 2부가 가장 눈에 밟혔다.
삶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라.
별을 자세히 바라보고, 별들과 함께 달려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도스토예프스키는 예술을 모르면 인생이 외로워진다고 생각했기에 여행 때마다 유명한 미술관을 찾아다녔고, 예술작품에 심취해 있는 순간에 행복과 즐거움을 느꼈다. 그는 미술관을 인간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진정한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공간으로 여겼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필자가 예술에 관하여 높은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어릴 적부터 모종의 사진 작품 혹은 그림 작품을 보고 있자면 내면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정화 작용을 느껴서일지도 모른다. 복잡하고 난해하고 고통이 함께하는 외부의 환경 속에서, 예술 작품을 통해 아름다움의 일면을 볼 수 있는 동공이 인간의 신체에 주어진다는 것은 큰 축복일지도 모른다. 도스토예프스키도 어쩌면 그러한 내면의 숭고와 정화 작용을 느끼고 싶어서 미술관을 찾아다닌 것이 아닐까?
르네상스 시대의 전형적인 이상을 제시한 화가인 라파엘로의 그림은 르네상스라는 단어의 어원에 맞는 고전적인 아름다움의 이상을 매우 훌륭하게 표현했다.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의 고전 예술을 완성한 라파엘로는 현대의 많은 이들이 천재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손꼽는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라파엘로를 최고의 예술가로 꼽았으며, <시스티나의 마돈나>를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림이라고 예찬했다. 그는 '라파엘로의 그림의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라파엘로의 종교화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으며, 마치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닌, 눈으로 '보는' 성경처럼, 그의 마음속에서 라파엘로의 성화는 눈으로 보는 성경과도 같았다.
이와 같이 그림을 보는 것 외에도 우리는 그림을 '읽을 수'있다. 그림을 읽음으로써 그 작품에 있는 의미를 음미하면서 감상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작품 <백치>, <작가 일기>,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악령>에 마치 평론과도 같은 그의 감상을 문학적으로 표현하며 자신의 미술관을 드러내었다. 그는 라파엘로뿐 아니라 다른 거장들의 여러 종교화, 성화들을 보며 인간 내면을 고찰하고, 인간 군상을 응시하고, 그를 통해 자신만의 세상을 보는 눈을 터득했을 터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아름다움의 비밀을 탐구한 작가로서, 그의 소설에서는 아름다움(美)은 진(眞)과 선(善)을 그 안에서 포함하고 있다. 그에게 아름다움이란 윤리학을 넘어선 종교적 미학과 결합한 그 무엇이었을 것이다. 진과 선이라는 추상의 영역으로부터 강림한 최고의 아름다움인 '성스러움'이 바로 그가 추구한 최고의 아름다움이 아니었을까? 육시적으로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을 초월한 인간의 영적인 본상을 드러내는 성스러움이야말로 도스토예프스키가 추구하는 최고의 아름다움이었을 것이라는 깨달음은 필자의 예술의 지평을 넓히게 하는데 기여한다.
성聖과 속俗,
그리고 미美와 추醜.
어쩌면 필자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속俗에 지나지 않는, 시각적으로 응시했을 때만 깨달을 수 있는 미적 감각에 지나지 않았을까 하는 자기반성을 들게 하는 대목. 도스토예프스키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신앙을 깊이 고찰했으며, 예술에 대한 깊은 주관을 갖고 있었으며, 영적인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