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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속에 리얼리즘

<서울아트시네마-'영화 시네마 테크 강의,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

by 김채미 Feb 02. 2025

눈이 자꾸 감겨오는 것을 참으며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다. 퇴근길이 너무 피곤했던 나머지 마음속으로 그냥 취소할 걸, 무엇을 얻겠다고 나는 강연을 신청한 걸까 하고 되뇌며 강연장 안으로 들어섰다. 독립영화와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은 예술 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서울아트시네마 안에 상영관은 오직 두 개였다. 작년에 처음 알게 되어 퇴근 후 종종 들려 영화를 한 편씩 보고 갔었는데, 항상 몇몇의 사람과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보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웬 걸, 강연실로 바뀐 상영관 안에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강연자인 교수님의 제자들인지 앳된 얼굴의 학생들도 좌석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노트와 펜을 들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는 얼굴에 나도 가방 안에서 슬며시 아이패드를 꺼냈다. 긴장감이 감도는 강연장 분위기에 잠이 달아나자 눈이 말똥말똥해졌다.


강연은 '현재, 우리가 보내고 있는 현실에서 리얼리즘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그리하여 영화는, 영상은 어떻게 재현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과 함께 포스트 시네마부터 현재의 여러 실험적인 시도를 한 영화들까지 설명을 해주었다. 내용 하나하나가 너무 흥미로워서 나도 모르게 몸을 기울이고 스크린에 뜨는 피피티 자료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사진의 발명을 통해 인상파와 입체파라는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게 된 회화처럼, CG, 즉 컴퓨터 그래픽의 발전을 통해 영화는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게 되었다. 영화가 재현해 내는 현실은 무엇인가, 무엇을 재현해야 하는 가에 대한 의문이 떠오르게 된 것이다.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아바타나 매트릭스같이 더 진짜 같은 가짜 세상이 구축될 수 있게 되면서 영화계에서 이제 영상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의문점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에 대한 운동으로 포스트-시네마 운동이 생겨났고, 영화를 모두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촬영을 한다던지, 단지 두 남녀가 걸어가는 모습을 3시간이 넘게 길게 늘어트려 촬영을 하는 등, 전시회에서 볼법한 실험적인 영화들이 대거 등장한다. 재현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다. 우리의 오감, 감각적 경험을 극대화하여 내러티브의 비중을 대폭 축소된 새로운 영화 형태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실험에도 불구하고, 서사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강연은 마무리되었다. 서사는, 현실 즉 지금 여기를 유일하게 가리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에 깊은 공감을 했다. 영화란 무엇인가, 영상이란 무엇인가. 결국 그 안에 서사, 내러티브가 있어야 한다. 그 어떤 실험적이고 짧은 영상일지라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서사가 영상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고, 지켜보는 관객이 영상에 몰입하고 인물에 이입하면서 내가 지금 여기 살아있다고, 숨 쉬고 있다고, 세계와 사회가 이렇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강연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밤하늘을 하라보나 화성과 쌍둥이자리 항성인 플룩스와 카르토스가 보였다. 하나의 서사를 완성해서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걸 전달하는 것. 그게 앞으로 내가 만들어나가고 싶은 길이라는 걸 새기며 별이 반짝이는 밤길을 걸었다.




(강연 속 자료 발췌)


"제임슨은 매체를 통한 재현이 리얼리즘을 떠맡게 될 때, 이러한 기술적 재현은 진실의 재현을 훼손한다고 말한다. 반면 예술적 매개를 통한 재현은 기술적인 매체를 통한 재현으로 인해 언제나 자신의 리얼리즘이 불완전한 것일 수밖에 없다는 압박을 늘 시달리게 된다. (리얼리즘의 딜레마) 그렇다면 이 딜레마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제임슨은 양자택일이라는 손쉬운 해결책을 찾을 것이 아니라 이 둘의 대립이 리얼리즘의 본원적인 모순임을 명심하며 둘 사이의 긴장을 유지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다. 포스트시네마의 조건에서 리얼리즘을 위한 비평의 전략은 무엇인가, 함께 묻고 투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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