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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둥글한 사람들

2025.02.19

by 김채미 Feb 19. 2025

 평일임에도 부산역은 복작거렸다. 캐리어를 든 사람, 커다란 노란색 보따리를 지고 가는 사람, 검은색 나이키 크로스백을 메고 가는 사람 사이를 뚫고 나는 에스컬레이터를 서둘러 올랐다. 역 안을 채우는 수백 명의 목소리가 몽롱한 정신을 서서히 깨우고 있었다. 눈을 반 감은 채 올리브영에 도착하니 일찌감치 M팀장님이 핸드폰을 확인하며 서 있었다. 여기야 여기. 내게 손짓하는 M팀장님 곁으로 가 메고 있었던 백팩을 앞으로 가져온 다음 주머니 안에서 사탕을 하나 꺼냈다. 껍질을 벗겨 입 안에 넣으니 싸한 자몽맛이 번졌다. 눈을 비비고 고개를 돌리는 사이 나머지 일행들이 도착했다. 안경을 쓴 S이사님을 나를 보시곤 "어우 챔 팀장 멋쟁이야~"하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스카프에 모자에, 아주 멋쟁이네!"하고 털털하게 건네는 인사를 받으며 나는 크게 웃었다.


 내 앞에 놓인 두툼한 고기 조각을 보며 이번 출장 업무도 쏜살같이 지나갔다고 느꼈다. 회의를 하고, 오고 가는 대화를 기록하고, 사진을 남기고, 정해진 역할을 이행하니 하루가 끝났다. 앞에 앉은 M팀장님에게 집에 도착하면 새벽이겠네요,라는 말을 건네며 KTX표를 확인했다. 그때 "보니까 더 일찍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앞에 기차표 있으면 티켓 바꾸자!"라며 위원장님께서 소리쳤다. 나와 M팀장님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다,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며 어플을 확인하는데 다행히 한 시간 이른 시간에 KTX표가 남아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부위원장님이 다급하게 "SRT표도 있냐?"라며 물어왔다. 앞에 앉아 계시던 S이사님이 "그거 힘들 텐데. SRT는 기차도 별로 없고, 좌석 수도 적어서 항상 금방 매진이잖아."라며 껄껄 웃었다. 재빨리 확인을 하니 역시나, SRT는 모두 매진이었다. 내가 매진 소식을 알리자 주변 이사님들과 위원장님은 낄낄거리며 "우리는 일찍 가는데 한 시간 늦게 오시겠네!"라며 웃었다. 나와 M팀장님은 당황하여 계속 어플을 확인했지만 끝내 빈 좌석은 찾지 못했다. 부위원장님은 "됐다. 역에 가서 남은 표 있으면 일찍 가는 거고, 없으면 원래 시간대로 가야지."라며 시무룩해하셨다. 식사를 다 마칠 때까지, 부산역에 가서도 아이처럼 계속 "표가 없다!"라며 놀리는 어른들을 보고 하루종일 웃고 말았다.


 집에 돌아와 거실에서 데굴거리며 티비를 보고 있는 엄마와 아빠에게 우리 회사 사람들은 참 둥글둥글하다고 말을 꺼냈다. 친한 M팀장님은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결국 막내 조카에게 조언을 하듯 매일 이런저런 소식을 알려주고, 오늘 오랜만에 만난 S이사님은 멋쟁이라면 내내 칭찬을 해주셨다. 항상 고생이 많다며 다독여주는 J이사님도, 개구쟁이 같은 위원장님도, 한 번도 내게 집게를 내어주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많이 먹으라며 고기를 구워주셨던 부위원장님도, 언제나 밝게 인사해 주는 부산 동료들도. 사람들이 뒤집어쓰고 있는 표피가 모두 둥근 것 같다고 그랬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계속 모이나 봐. 엄마 내 주변 사람들은 다 둥글둥글한 것 같아."

 얼마 전 초대받은 파티에서도 그랬다. 분명 여러 사람들이 섞여있고, 그중 나와 맞지 않은 사람도 많았을 텐데 참 희한한 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둥글한 사람들이었다. 아빠는 "원래 그래. 다 나랑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는 거야. 비슷한 사람들끼리 끌어당기는 자석이 있는지도 모르지."라며 시선을 티비에서 떼지 않았다. 티비 속에선 코미디언들이 나와 게임을 하며 서로를 놀리고 있었다. 나는 엄마와 아빠가 터트리는 웃음 소리를 들으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부자리를 정리하는데 열띤 마음이 일었다. 무언가 따스한 충만감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생각보다 길었고, 생각보다 짧았던 하루를 생각하며 나는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그대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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