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별 May 09. 2024

나의 그늘이 너에게 드리워지지 않기를......

불행의 저주를 끊어낼 시간, 행복해지기로 결심하다.

사랑하는 나의 아이에게서 그늘이 보일 때만큼 가슴이 무너지는 순간도 없다. 바람에 굴러가는 낙엽만 보아도 나뭇잎들이 춤추듯 뛰어간다며 까르르 웃던 아이건만 자라날수록 어딘지 모를 우울함이 느껴졌다. 심리 상담도 받아보고 요즘 애들은 사춘기가 일찍 온다며 스스로 위안도 삼아보려 했지만 종국에는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는 자책으로 이어지곤 했다.


아이의 우울은 어쩌면 위로 거슬러 올라가 외할머니 때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남편의 외도와 부모님의 외면 속에 외할머니는 처절하도록 고달프고 외로운 삶을 사셨다. 그런 그녀를 보며 엄마는 아버지를 증오했지만 결국 비슷한 성향의 남편을 만나 아픔으로 가득한 길을 걸어왔다. 나의 삶도 다른 듯 닮아있다. 엄마의 슬픔이 언제나 나를 억눌렀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나 또한 삶에서 비슷한 내상을 얻고 말았다. 십수 년의 결혼 생활은 신혼 초가 지난 뒤부터 여러 사건들로 몸과 마음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런 나의 그늘아래 자란 아이에게 우울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몇 년 전 기독교인 친구가 말했다. 성경에 말하기를 가문의 저주는 삼사 대를 간다고. 죄를 지으면 그 죄의 대가가 대를 이어 지워지고 비슷한 불행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녀의 말이 뇌리에 새겨져 잊히지 않았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만 했다. 저주가 삼사 대를 간다면 축복은 천대를 간다 하지 않았던가.  나의 아이는 축복의 수레바퀴를 타게 하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먼저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꿈꾸던 삶의 행로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만큼 힘들고 오랜 싸움이었다. 어릴 적 뜨개질이나 십자수 배우기를 일찌감치 포기했던 건 내가 예상하던 모양대로 되지 않으면 모두 다시 풀어내어 처음부터 시작해야 직성이 풀렸기 때문이다. 우울함의 그늘에 빠져 정체된 삶을 살았던 이유도 다르지 않다.  테피스트리처럼 수많은 관계가 얽혀 영향을 주고받는 세상에서 정답이 없는 삶을 살아가면서도 의도하던 모양만을 고집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심연의 바다에 빠져 바닥을 디딘 후에야 깨달았다. 하지만 다시 발돋움을 해 수면 위로 올라갈 수만 있다면 지나온 오랜 시간이 헛된 것은 아닐 것이다. 


이제 나는 아이를 보며 밝게 웃는다.  아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일이 사랑을 가득 담아 미소를 짓고 그 충만한 사랑의 에너지를 햇살처럼 뿜어내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생 후 몇 달만 지나도 기가 막히게 엄마 아빠의 기분과 에너지를 알아채고 흡수한다고 한다. 아이 앞에서 밝은 척, 아무 일 없는 척 지어내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행복한 마음, 따뜻한 사랑의 감정만이 유효하다. 살아가면서 아이는 많은 어려움과 부딪히게 된다. 부모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어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삶의 난관들이 겸허하고 강건한 마음만 있다면 헤쳐나갈 수 있으며 어떠한 환경에서도 내면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음을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자책과 미안한 마음을 모두 떨쳐 버리고 진정으로 나의 내면과 화해하기로 했다. 나를 용서하고 사랑할 때 외부를 향한 마음속 화와 응어리들도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그늘이 걷히고 거울을 보며 미소 지을 수 있게 되자  아이의 머리 위에 드리워진 먹구름도 서서히 걷히는 것이 보였다. 내 아이가 스스로를 사랑하고 자신의 삶을 감사와 기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기만을 기도한다.  이를 위해 나는 세상에서 누구보다 행복한 엄마가 될 것이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오직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갈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신은 사랑으로 가득 찬 빛과 같은 존재이다. 부모란 그 사랑의 전달자. 세상에 태어난 나약한 인간이 거대한 신의 사랑을 느끼고 담대하게 인생을 살아가도록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선물 같은 장치이다. 반면 부모에게 아이는 영혼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 신이 내려 준 깨달음의 빛이자 천사가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안녕, 피츠버그 그리고 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