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오 리 가자 하거든 까짓거 십 리 가줘!
'시편 12편' 부패한 시대에 도움을 구하는 기도
서로 속이고 거짓말로 아첨하는 이들이 판을 치고 있다. 경건한 자가 없어지고 정직한 자가 사라졌다. 그 사이에 경건하고 정직한 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한때 경건하고 정직했던 사람들이 거짓말로 아첨하는 사람들로 변질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1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없어지고 정직한 자가 사라졌습니다. 2 모두 서로 속이고 거짓말로 아첨합니다. 8 더럽고 추한 일이 판을 치는 때에 악인들이 곳곳에 우글거리고 있습니다.'
정직하고 공정을 추구했던 사람들이 어쩌다가 거짓말하고 아첨하는 이들로 변했을까? 하루아침에 갑자기 변해버린 것은 아니겠지. 그 배경에는 시편 11편에서 묵상했던 법과 질서가 무너졌던 사회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법과 질서가 무너졌다는 건 법과 질서를 세우는 입법부, 사회 리더층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고 봐야 한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지위와 권한을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주로 사용하면서 빚어진 결과로 보인다.
불의한 지배층이 그들의 입맛에 따라 법과 질서를 불공정하게 집행한다면, 법과 질서에 따르던 사람들 중에서 일탈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나올 것이다. 남들에 비해 손해보지 않으려고, 자신이 더 차지하려고, 더 빠른 길을 가려고 불의한 지배층에 빌붙는 사람들이 나오게 된다.
법과 질서가 무너진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까? 영화에서처럼 무너지는 세상에서 어떻게 해야 주인공 역할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나 혼자라면 그렇다 쳐도, 가족들을 그 자리에 둘 수 있을까?
문득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가 생각난다. "누가 네게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가주어라." 하셨던 말씀. 당시 로마 군법에는 길 가던 사람을 붙잡아 짐을 지워서 데리고 갈 수 있었는데, 다만 오 리까지만 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십 리를 가주라고 말씀하셨던 건 단순히 양보와 희생이 아니다. 불의에 대해 의연하게 대처하는 저항의 자세를 가르쳐주신 것이다. 나에게 피해를 입히려고 달려드는 사람이 있거든, 요즘 말로 하자면 쿨하게 받고 더 받아주라는 기가 막힌 말씀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