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에게 직접 키운 블랙벨벳 알로카시아를 나누어준 지 두 달이 지났다. 갑자기 식물 집사가 된 친구들은 며칠에 한 번씩은 꼭 사진을 찍어 아기 식물의 근황을 전해주고 있다. 초반에는 식물들이 시드는 것 같다며 걱정들을 하더니, 얼마 후 저마다 새잎이 자라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새잎을 뿜어내는 식물의 기특함과 귀여움을 모두가 알게 되어 기뻤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우리의 카톡방에는 식물 이야기가 잔잔하게 흐르게 되었다. 친구들은 내가 선물한 식물을 돌보는 것에서 나아가 각자의 취향대로 새로운 식물을 검색해보거나 구입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식물 사랑도 전염이 되는 걸까? 자칭 식물 전도사로서 여간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슬픈 일이지만 우리가 친구였던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에겐 무수한 슬픔과 고통이 있었고 좋은 것, 행복한 것에 대한 이야기가 그것을 뛰어넘은 적이 없었다. 어느 시기에는 우리가 나눌 수 있는 것이라곤 각자의 불행뿐인 적도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있는 힘을 다해 그것이 자신의 일인 것처럼 분노하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실재하는 슬픔보다 더 큰 절망을 느꼈다.
그렇기에 우리가 종종 이렇게 실없고 무해한 것을 공유하며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참 다행스럽다. 험하고 싫은 것 투성이인 세상에서 아름답고 고요한 식물 뒤에 숨어 우리가 조금이라도 행복해질 수 있어서 정말로, 정말로 다행이다.
8/10 수요일, 알로카시아 헤테로필라&필로덴드론 멜라노크리섬
습관적으로 중고 거래 앱을 켜서 위시리스트에 담긴 식물 이름을 검색해 본다. 세상엔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도, 잘 키우는 사람도, 나처럼 자꾸만 돈을 쓰고 사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다. 그 수요와 공급이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식물 거래 시장은 영원히 붐빌 것이다.
남편에게 중고 거래 앱에 올라온 예쁜 식물을 캡처해서 보여줬더니, 흔쾌히 사러 가자고 했다. 알로카시아 헤테로필라와 필로덴드론 멜라노크리섬. 두 식물을 점찍어놓고 구매를 고민하던 사이 가격이 꽤 떨어져 있었다.
거래 장소는 버스를 타면 집에서 20분쯤 걸리는 멀지 않은 곳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던 중 남편이 배가 아프다고 해서 약속 시간에 좀 늦게 됐다. 어차피 늦게 되었으니 판매자에게 늦는다는 연락을 하고 약속 장소로 가는 길을 천천히 걸었다.
- 이 동네 어때?
- 어 괜찮네. 아파트 좋다.
- 우리 다음에 여기 와서 살까?
- 어 좋아. 회사도 멀지 않고.
- 그래 알아보자.
- 그래 좋아.
식물을 사 들고 돌아오는 길, 공기에서는 어렴풋이 가을 냄새가 났다. 한번 집에 들어가면 좀처럼 나오기가 싫기만 한데, 식물 거래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현관문을 박차고 나서는 내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다.
@illust&writing by 주페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