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식집사로서, 식물을 필요 이상으로 못살게 군 적이 많다. 한 번은 날씨가 더워지면서 거실 화분 주위에 날파리가 꼬였다. 지금이라면 파리가 보일 때마다 무심히 손으로 눌러 잡고 환기를 잘 시켜주면서 벌레가 사라지길 기다렸을 텐데, 그때는 그저 벌레가 생겼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박멸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결국 나는 파리가 발견된 아젤리아 화분을 갈아엎고 혹시 남아 있을지도 모를 벌레 알을 제거하겠다며 뿌리를 탈탈 터는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하나 둘 새잎을 만들며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던 아젤리아는 갑작스러운 봉변을 당한 뒤 회복하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물꽂이 한 베고니아 삽수를 얻어왔을 때도 그랬다. 베고니아를 흙에 옮겨 심어 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푹 숙인 고개를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고서는 식물의 적응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시간 뒤, 화분에 심어진 베고니아의 수형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고쳐 심어준 것이 화근이었다. 가지가 부드럽고 뿌리가 섬세한 베고니아의 특성상 갑자기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게 당연했다. 하루 사이 분갈이를 두 번이나 당한 베고니아는 결국 급격히 줄기가 무르며 회생 불가의 상태가 되어버렸다.
식물을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자꾸만 들여다보고 만져보던 나의 행동은 되려 화를 불러오는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관심을 주지 않고 얼마간 내버려 둔 식물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적응을 끝내거나, 훌쩍 자라 있기도 했다. 식물들에게도 각자 회복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가만히 기다리면 시간이 해결해줄 일인데도 식물에 문제의 조짐이 보일 때마다 자꾸 조바심을 내며 상황을 고치려 했다.
그들을 향한 사랑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식물을 죽이는 길에 가까웠던 나의 애정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좀 더 느긋한 형태로 변할 수 있었다. 벌레나 과습 등 문제가 생긴 식물에는 꼭 필요한 조치를 해주되 무리가 가지 않도록 오랜 기간 지켜보기로 했다. 문제를 빨리 해결하겠다며 매일 같이 독한 약을 뿌리거나 갑작스러운 변화를 주면 식물은 상황을 견뎌내지 못하고 죽어 버린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된 것이다. 잠시 숨 고르기를 하며 다음 달리기를 준비하는 휴식기의 식물에게는 섣불리 변화를 주지 않고 매일 아침 진득한 응원만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도.
그들의 속도에 맞춰 느긋한 애정을 보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내 마음이 가닿는 날이 온다. 과도한 관심과 사랑도 좋지만, 한 발자국 떨어져 가만히 식물을 바라보는 시간도 필요하다. 사람 사이에 관계도 그렇듯, 과도한 애정과 관심은 관계를 완전히 망쳐놓기도 한다. 매일 조금씩 느슨한 애정을 쏟다 보면 어느 날 아침, 거실 화분 속에 작은 초록 점이 올라와 있다.
- 알로카시아 잭클린
인터넷 사이트에서 틸란드시아를 구입하면서, 알로카시아 잭클린을 함께 구입했다. 특이한 잎사귀에 끌려 예전부터 관심이 가던 식물이었는데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길래 덜컥 구입했다.
배송받은 잭클린은 왠지 모르게 숨이 죽어 있었다. 택배 배송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짐작하며 정성스럽게 분갈이를 해주고 기다려 보았지만 며칠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시간이 지나자 잭클린의 잎은 노랗게 뜨며 시들기 시작했다. 식물을 들어 올려 자세히 살펴보니 까맣고 길쭉한 먼지 같은 것들이 잎사귀 위를 우글우글 기어 다니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말로만 듣던 총채벌레였다.
깜짝 놀라 주위를 살펴보니, 벌레는 글로리오섬과 무늬 토란까지도 옮겨 붙어 있었다. 사태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얼른 식물들을 물 샤워시키고 격리했다. 그 뒤로도 며칠에 한번 물 샤워를 하고 과산화수소 섞인 물을 뿌려주며 관리했지만, 설상가상으로 골드 셀렘에는 응애가 생겨 있었다. 그 모든 것은 새로 들인 식물 하나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벌레가 완전히 없어지기 전까지는 몇 주가 걸렸고, 예쁘게 반짝거리던 식물들의 잎은 이미 상할 대로 상해 있었다. 더 빨리 살펴보지 못해서 일을 키운 것 같아 너무나도 속이 상했다. 혹시 몰라 원흉이 된 잭클린은 계속 혼자 격리시켰다. 이 난리통을 만든 잭클린이 미워서, 그냥 버려버릴까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홀로 우두커니 놓인 잭클린이 눈에 밟혔다. 위태로운 듯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는 잭클린이 안쓰러웠다.
@illust&writing by 주페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