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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페페 Oct 30. 2022

09. 작년의 토마토, 올해의 토마토

 작년에 지금 집으로 이사를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나보다 더 신이 나서 옥상에서 키울 상추, 케일, 고추, 토마토 모종과 미니 텃밭 상자를 구해다 주었다. 야외에서 햇빛을 듬뿍 받으며 자라는 모종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났다. 직접 재배한 채소를 곁들여 야외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을 생각에 신이 나서 더욱 식물을 열심히 가꿨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모든 일은 시들해지게 마련이고, 도시 농부의 삶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상추는 많이 뜯어먹어도 금방 또 자라났고, 먹는 속도가 자라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어 관리가 어려웠다. 더군다나 식물을 키우면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이런저런 벌레들이 무서워서 점점 피하게 되다 보니 직접 키운 건강한 채소를 열심히 먹겠다는 다짐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다시 돌아온 계절, 한참을 잊고 있던 텃밭 근황이 궁금해 옥상에 나가 보았다. 한겨울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억센 케일 몇 개 옆으로 키가 큰 토마토 나무가 보였다. 조금 시들한 듯했지만 50cm가 훌쩍 넘어 보이는 토마토는 케일의 몸체와 엉겨 붙어 어정쩡한 자세로 자라나고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올해 나는 토마토를 심은 적이 없는데.


 아무래도 작년에 심었던 토마토 나무에서 떨어진 토마토가 흙 속에 파묻혀 있다가 올해의 토마토로 다시 자라난 모양이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케일과 얽혀 있는 토마토를 분리해 다른 화분으로 옮겨 심어주고 지지대를 세워준 뒤 물을 흠뻑 주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토마토는 제법 근사해 보였다.


 거창한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제대로 끝맺음하지 못했던 작년의 농사처럼, 흐지부지 지나왔던 지난 일들에 대해 생각한다. 늘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지만 해야 하는 일들의 우선순위에 밀려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결국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 지금, 그 시간과 노력과 마음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  


 흙 속에 숨어있던 작년의 토마토 열매처럼 내 마음속에 묻혀 있을 설익은 열매들을 생각한다. 꿋꿋이 올해도 자라난 토마토를 응원하며 어딘가에 숨어있을 나의 토마토 열매를 응원하고 싶어졌다. 아직은 싹 틔우지 못했지만, 내년 혹은 그 후년에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토마토 나무를 키워낼지도 모른다고.


 화분 밑으로 물이 콸콸 흘러나올 만큼 물을 흠뻑 먹은 올해의 토마토는 단 두 시간 만에 시든 잎을 빳빳이 세우고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힘을 낸 토마토를 보며 나는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믿기로 했다. 올해의 토마토 재배도 언젠가 다시 시들해질지 모르겠지만 언제든 돌아가 새로이 시작할 힘이 우리에겐 있을 것이다.  






#식물거래일지④

8/27 토요일, 플로리다 뷰티 그린, 네온 싱고니움

(좌) 네온 싱고니움 (우) 플로리다 뷰티 그린

 남편 취재를 따라갔다가 근처의 유명 평양냉면집에 갔다. 다른 지점에서도 먹어본 적 있었지만 본점의 맛은 뭔가 다르지 않을까 싶은 마음을 품고. 여기까지 왔으니 꼭 한번 먹어줘야 할 것 같았다.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무료해진 나는 남편에게 중고 거래 앱에서  멋진 식물 사진을 보여주었다. 플로리다 뷰티 그린, 오랜 위시리스트에 있던 식물이었다. 토분 포함 단돈  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수형도 완벽한 모습이었다. 남편은  판매자에게서  사고 싶은 식물을 골라보라고 했다. 그래서 고른 것은 네온 싱고니움, 형광색  가운데로 핑크색 잎맥이 선명하게 그려진 멋진 식물이다. 재빨리 판매자에게 연락해 소위 말하는 ‘네고 시작한 남편은 너무도 쉽게 할인을 이루어냈다.


 멋진 식물을 한 번에 두 개나 얻어 기쁜 마음으로 냉면집에 입장했다. 밍밍한 육수의 물냉면은 영 자신이 없었기에 비빔냉면에 도전했지만 그마저도 어딘가 3프로 부족한 맛이었고, 나는 결국 완냉하지 못했다. 내가 맛을 알지 못하는 걸까? 모름지기 여름엔 식초와 겨자를 팍팍 넣은 새콤한 냉면이 제격임을 다시 확인했다. 이 냉면을 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은 정말로 이 평양냉면의 맛을 알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SNS에 올릴 유명 맛집 인증샷을 찍기 위해 이곳에 찾아온 걸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줄 서서 평양냉면을 먹는 이유를 나는 영원히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 맛인지 네 맛인지 알 수 없는 평양냉면 한 그릇보다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나만의 행복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illust&writing by 주페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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