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콤팩트하게 싼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개 한 마리 짐에 여행 중에 재택근무를 해야 하는 남편에게 필요한 전자기기들에 어떻게든 밥솥은 챙겨야 한다는 나의 의지, 거기에 두 여자아이의 옷 욕심까지 얹어져 우리의 작디작은 오래된 골프엔 뒷바퀴가 눌릴 때까지 짐이 실렸다.
짐을 싼 건지 정신을 싼 건지
남편은 짐 싣느라 고생하며 입이 댓 발 나왔고
애들은 언제 출발하냐고 아우성이다.
아뿔싸
식기세척기 세제가 없는 숙소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알약 세제를 챙긴다는 게, 집에 있던 몇 개를 모조리 짐에 넣어버린 것이다. 어렵사리 테트리스 해 놓은 짐들을 풀어 헤치는 것은 도저히 할 일이 아닌 것 같고 고민하던 중, 남편이 그냥 액체세제를 넣어보라고 한다. 에라 모르겠다, 하며 주욱 짜서 넣고 세척기를 작동시켰다.
뭔가 소리가 이상하다고 느낄 때 즈음, 등골이 싸하다... 작동을 멈추고 문을 열었더니... 엄청난 거품이 기계 안에 가득.... 아이디어를 낸 남편은 조금만 짜서 넣지 왜 그랬냐며 타박 시작이다. 결국 그릇들을 꺼내 손으로 설거지를 했다. 이럴 거 처음부터 그냥 할걸... 그릇을 어떻게든 정리하고 나서도 거품은 여전하다.
“... 지저분한 것도 아닌데 그냥 열어두고 가자.”
도저히 출발시간을 미룰 수 없었던 남편의 제안을 난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 진짜 출발.
이번 여행엔 몇 가지 해결해야 할 선행 조건이 있다.
1. 코로나 상황
2. 남편의 재택근무
3. 그리고 한 마리의 개
1. 우리 부부는 5월과 6월에 걸쳐 백신을 접종하였다. 백신을 신청하긴 했는데, 언제 연락이 올 지 몰라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치 이번 여행을 도와주기로 작정하기라고 한 것처럼 아이들 방학일의 정확히 2주 전, 2차 접종이 예약되었다. 또한 COVID-19의 무시무시한 경제여파를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발 벗고 뛴 EU연합의 노력에 말미암아 EU COVID Digital Certificate, 백신 여권으로 불리는 이 서류가 2021년 7월 1일 자로 실효화 되었다.
하지만 이에 의외의 복병이 있었으니, 접종하고 며칠 몸져누웠던 것보다 저 증명서를 받기 위해 씨따(관공서의 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예약 과정) 잡고 처리하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자세한 설명은 여기서 생략한다.... 결과적으로, 무려 4번의 주민센터 방문을 한 결과 어쨌든 무사히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우린 육로로 이동하기에 증명서가 얼마나 유용하게 쓰일지는 모르는 상황이지만, 없는 것과 있는 것은 큰 차이니까!
2. 남편은 COVID사태가 터진 직후 재택근무를 시작해 현재까지 만 15개월간 100% 집에서 근무하고 있다. 재택근무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선 할많하않. 여하튼 남편이 노트북과 모니터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 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 100프로 활용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므로 Airbnb의 숙소의 조건은 무조건 무선인터넷. 그리고 이로 인해 이고 지고 다녀야 하는 전자기기의 양은 덤.
3. 우리 집 강아지 코코. 7개월 된 에스빠뇰 시고르싸브종으로서 (스페인 시골 잡종) 몸무게 3킬로 미만, 얼굴 좀 귀여움, 그런데 친구들 만나는 예의는 아직 없는 녀석이다. 몇 달 동안 열심히 산책하고 돌아다닌 결과, 기본적으로 대소변을 밖에서 하는 습관이 들었다. 하지만 이 아이로 인해 숙소의 기본 조건은 pet allowed. 그러다 보니 선택지는 좁아지고 가격은 올라간다. 과연 이 녀석이 강행군 여행을 잘 버텨줄지도 아직은 미지수.
어찌 되었건, 출발이다. 신나게. 신나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