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가 애매한 뚤루즈에 굳이 온 이유는 ㅁㅁ 언니를 만나기 위해서이다.
ㅁㅁ 언니.
나의 대학 1년 선배님으로 랩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크롭탑도 잘 어울리고, 스페인어 공부를 위해 돈키호테도 읽고 있었고, 엉터리 방터리 같은 상황(혹은 사람에겐) 욕도 시원하게 할 줄 알고, 고 마광수 교수의 교양 수업에서 기말 과제로 제출한 단 한 편의 단편소설(39금)로 A+를 받았다는 전설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어느 날 홀연히 세계여행을 떠났고 여차저차 해서 프랑스에 정착했다.
나의 대학 시절은 이러저러한 가정 상황으로 인해, 빨리 졸업해서 돈 벌고 싶다, 독립하고 싶다 는 생각으로 점철된 기간이었다. 휴학 한 번 없이, 들을 수 있는 학점을 꽉꽉 채워 들으며 참치마요 삼각김밥에 두번째우려낸녹차를 들고 다니던 그때의 나에게, 언니와 반방에서의 가끔씩 나누던 가벼운 대화는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던 시간이자 잠시 동안의 휴가였다.
그녀가 음식을 잘한다는 건 건너 건너 알고 있었다. 가끔 삼겹살 파티를 한댔는데 파절임이 그렇게 맛있대던가? 불행히도 난 그 파티에 한 번도 참석해보지 못했다. 뭐가 그렇게 바빴고 뭐가 그렇게 정신없었을까. 해봐야 소용없는 생각이지만, 만약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공부를 더 많이 하고 놀기는 더욱더 많이 할 것이다.
언니는 음식 솜씨를 살려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에서 한식당을 열었다. 꽤나 장사가 잘 되었던 만큼 사장으로서 바삐 지냈고 공교롭게 그 15년은 내가 대학 졸업 후 일하고 결혼과 출산 육아로 정신없던 바로 그 기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계속 인연이 닿아 종종 한국에 올 때마다 만났다.
내가 스페인에 오게 되었을 때 제일 기대하고 기다려준 사람이기도 하다. 사실상 서울 부산보다 훨씬 먼 거리인데도, 언제든 맘만 먹으면 달려갈 수 있다는 게 심리적 거리로는 가깝게 느껴졌다. 하지만 한 해는 언니의 출산-육아로, 한 해는 코로나로 그대로 날리고 나니, 유럽에 사는 동안 언니를 혹시나 못 만나고 갈까 봐 마음이 몹시 급해졌다... 이번엔 정말 반드시 꼭 갈게요! 그렇게 단번에 이곳에 달려온 것이다.
언니는 얘기도 안 했는데도 다음 날 가이드까지 해주겠다고 하며 기다려 주었다. 하지만 호사다마인지 예상치 못한 문제가 우리의 조우를 늦췄다.
“첫째가 그제부터 돌발진이 있었는데 오늘 저녁에 갑자기 열이 40도 넘게 오르네ㅡ 일단 자기는 하는데.. 내일 아침에 보고 애가 안 아프면 어린이집 맡기고 너 보러 오후에 가고.. 만약 ㅇㅇ이가 아직도 열이 심하면 내가 데리고 있어야 할 거 같아. 저녁 식사는 변함없이 내일 꼭 해야지!!”
“언니, 우린 걱정 말고 ㅇㅇ이 케어에 신경 쓰세요~상황 봐서 알려줘요ㅡ 우린 잘 놀고 있을 테니까요ㅡ일단 ㅇㅇ이만 걱정하자고요!”
뚤르즈는 이곳저곳 찾아다니기에 크게 어렵지 않은 도시였다. 보잉 본사가 있는 도시이기도 해서, 과학 박물관도 무척 훌륭하다고 한다. 하지만 우린 숙소 근처의 조용한 산책로와 아이들이 뛰 놀 수 있는 공원, 구 도심의 광장을 선택했다.
#운하
뚤르즈의 유명한 세 운하는 이곳에서 지중해까지 이어지는 미디 운하와(canal du midi) 가론 강으로 흘러가는 브리엔느 운하(canal du brienne)와 마지막으로 서쪽의 보르도까지 240km 이상 이어지는 까날 라떼할 아 라 가혼느 (canal lateral a la garonne)이다. 한 때는 미디 운하를 타고 지중해로 나가려는 요트들로 교통체증이 생기기도 했다고 하는데, 고속도로가 생기고, 철도가 발달하여 수송의 기능은 거의 사라졌다고. 하지만 운하의 아름다움만은 여전히 남아 있다.
#꽁뻥-꺄파헬리 가든(Jardin Compans-Caffarelli)
이 공원 안의 일본식 정원엔 모래를 긁어 문양을 만들어 놓은 곳도 있고, 빨간 다리가 인상적인 작은 호수도 있고, 아기자기하다.
공원 안 놀이터가 재미있는데, 정글짐(프랑스어로는 뭐라고 할까?)의 난이도가 상당히 높다!
그리고 강아지 전용 공간이 있는 공원이었다. 아주 넓진 않지만 목줄 안 한 채 뛰어놀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생 세흐낭(Saint Sernin) 성당
시청사와 쟈코뱅 성당이 공사 중이라 광장이 매우 혼란스러웠다. 반대쪽에 있는 생 세흐낭 성당 앞 광장에서 휴식을 취하며 성당 안을 들어가 보았다. (물론 동물은 안된다.) 들어가는 곳과 나오는 곳이 달라서 아이들이 의외로 재미있어했다. 아이들에겐 성당의 엄숙한 분위기가 조금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나보다.
뚤르즈에서의 마지막 밤, 드디어 우리는 만났다.
두 아이들 돌보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뒤늦은 내 생일 미역국까지 챙겨준 언니에게 이 마음을 뭐라 더 표현하지 못하고 준비해준 음식을 묵묵히 싹싹 비웠다.
아페리티프로는 프랑스 남부에선 꼭 푸아그라를 먹어야 한다며, 바삭히 구운 바게트에 푸아그라를 두껍게 썰어 올리고 굵은소금을 조금 뿌려 주었다. 내 인생 첫 푸아그라. 마치 고소한 버터를 듬뿍 바른 것처럼 부드럽고 진한 맛에 독특한 풍미가 살아있다. 그리고 방울방울 터지는 샴페인의 깔끔함과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푸아그라를 생산해준 오리는 메인 요리의 스테이크도 되어 주었다. 간만에 먹는 오이와 호박 밑반찬이 입에 감긴다.
디저트로 먹은 에끌레어는 토종 프랑스인 형부의 엄지 척을 받았다고.
내가 랜선 이모만 했던 두 아기들도 만났다. **이와 과 둘째 ㅇㅇ이는 처음 본 언니-누나들임에도 잘 따른다. 코로나가 시작하던 2020.03에 태어난 ㅇㅇ이는 집에 찾아온 손님을 본 게 처음이라고 시대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이렇게 헤어지기 너무 아쉽다. 내일 여기 떠나기 전에 라면이라도 먹고 떠나. 알았지?”
다시 한번 시간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혹여 두 아기 돌보는 언니가 무리할까 싶어 머뭇거렸다. 하지만 눈치도 없는 두 딸들이 라면이란 소리에 환호성을 지른다. 그렇게 그다음 날 체크아웃 후 다시 모여 언니 집 옆의 호숫가를 함께 산책하였다.
여기도 호수, 저기도 호수, 호수로 둘러싸인 특이한 지형이다. 과거 이 지역에서 품질 좋은 자갈을 채취하곤 했는데, 돌을 파낸 자리에 물이 고여 호수가 되었다고 한다. 그 뒤 희귀 철새 도래지가 되어 더 이상 개발은 되지 않고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는 이야기.
산책로에는 야생 자두, 산딸기, 오디가 자주 보인다. 따서 입에 쏙 넣어보니 시고 달고 소박하게 맛있다. 시골살이 초반엔 뭣도 모르고 옻도 손으로 뽑다 고생했는데, 이 생활을 오래 했더니 여러 풀에 대해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는 언니. 지금은 잘 나가는 레스토랑 사장님도 아니고 훨씬 그 전 내가 기억하던 모습의 래퍼도 아니지만 두 아이의 엄마로서의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아름답다.
하늘을 담은 호수도 보고, 집 뒷마당에서 동물의 섬 실사판 체험도 해보고(잡초뽑기 ㅋㅋ), 직접 따온 민트로 차도 끓여 마시고. 그렇게 우리의 아쉬운 시간이 흘러간다.
일정이 무사히 진행되기만 한다면 8월 초, 프랑스 서부의 해변 Vannes에서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건강하고 안전하게 이 여행을 할 또 한 가지 이유가 생겼다.
Au revoir et à bientôt. (안녕, 그리고 곧 다시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