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행선지인 사라고사 Zaragoza.
(스페인식 발음으로 ‘thㅏ라고 thㅏ’로 읽어줘야 한다. 유명한 spa 브랜드 Zara 역시 ‘thㅏ라’인 것!)
스페인에서 프랑스로 떠나기 전 거쳐가는 숙소로써 우린 이곳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국경을 넘게 될 것이다.
사라고사엔 사실 두 번째 방문이지만 공교롭게도 두 번 모두 이곳을 목적지로 온 것이 아닌 거쳐가는 통로였다. 첫 번째는 2년 전 바르셀로나를 가기 위해, 이번엔 이를 통해 프랑스에 가기 위해.
어차피 내일이면 떠날 곳이니까 짐을 모조리 풀 수도 없고, 기본적인 세면도구와 속옷 등만 간단히 챙겨서 애매하게 붕 뜬 마음으로 숙소에 체크인을 했다.
집 냉장고를 마지막으로 정리하며 챙겨 온 소시지와 삶은 계란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광장으로 나갔다.
Plaza de Pilar. 사라고사의 자랑인 필라 성모 대성당(Basílica de nuestra Señora del Pilar)이 있는 큰 광장이다. 고야의 고향인 사라고사는 그가 그린 성당 프레스코로 유명하다. 성당 앞에선 술 좋아하는 고야 아저씨가 2년 후에도 여전히 한 잔 거하게 걸치고 계신다.
화려한 지붕과 그를 둘러싼 첨탑들이 웅장하면서도 아름답다. 전망대에 올라가고 싶었지만, 코코가 있기에 성당 출입은 포기하기로 한다.
대신 광장에 앉아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광장을 메운 의자와 테이블, 계단에 앉은 사람들과 이를 메운 웅성거림이 정겹다. 커피나 와인 한잔 시켜서 2시간 넘게 떠들고, 그들을 눈치 주지 않는 카페 주인이 있는 곳이 스페인이다.
광장을 둘러보다 보니 시원한 인공 폭포가 물보라를 일으킨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거리 이름. Cesar Augusto.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거리라는 뜻인데, 왜?
2년 전엔 미처 보지 못했던 로마 시대 성벽이 보이고 관련된 고고학 박물관도 있다. 로마시대의 극장, 목욕탕과 포럼 등도 아직 발굴되고 있는 듯한데 영업시간이 한참 지난 후였다. 수천 년 전에도 도시와 도시를 잇는 역할로서 활약했을 이 도시의 위상이 보인다.
8월(August) 주인공 황제의 동상이 위엄 있게 쳐다보건 말건, 아이들은 벽을 타며 즐겁게 논다. 얘들아, 너네가 올라가서 밟고 있는 돌이 2천 년도 넘은 로마시대 꺼란다. 나중에라도 아우구스투스의 역사적 의미를 알게 될 때쯤, 돌의 감촉이라도 기억해주길.
저녁을 먹고 나니 광장에 어느덧 어스름이 찾아온다. 로맨틱한 군청색 하늘을 바라보며 숙소로 돌아왔다.
남편과 자잘하게 티키타카 하다 멱살 잡을 뻔한 몇 번의 위기를 제외하곤 첫날은 순조롭게 보냈다고 방심한 순간, 진짜 위기가 덮쳤다.
주차하겠다고 먼저 올라가라던 남편이 한 시간째 돌아오지 않는다... 아, 이것이 유럽의 헬 주차와의 첫 번째 조우였다.
한참 지나서야 핼쑥해진 얼굴로 들어온 남편은 오자마자 화장실부터 직행한다...! 한결 개운한 얼굴로 나온 남편.
“차 댈 자리는 한 시간을 뱅뱅 돌아도 안 보이고, 화장실은 급하고, 그때 기적적으로 공사장 옆에 한 자리가 보였는데, 오늘이 주말이어서 댈 수 있었어. festivo에 주말도 들어가는 거 맞지?”
만약 운이 없다면 내일 딱지가 붙어 있을 것이고, 반대면 내일 딱지가 붙어 있을 거라며 서로 안심시키며 잠에 들었다. 다행히 이제까지 별일 없었는데, 잊고 있을 즈음, 고지서가 올진 몇 달 후 알 일이다. ㅋ
오늘 달려온 거리 315km.
사라고사를 만나기 위해 달린 거리가 아니라는 게 조금 미안했지만, 그렇기에 다시 만날 것 같은 이곳에서의 하루를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