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1 개와 고양이의 시간 in Aix

by 제이와이

이번 여행을 통해 내 눈앞에 수많은 화가들의 그려낸 ‘그’ 풍경이 펼쳐져 있음에 감탄한다. ‘그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는 그 순간이다.


프로방스의 공기와 빛의 향기는 캔버스 위 점선면으로 표현된 향수로 담겨 이곳에 직접 오지 않더라도 이곳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인상파 화가들은 프로방스라는 향기를 각자의 방식으로 담아내던 최고의 조향사들이다. 아를의 고흐와 고갱이 그랬듯, 액상-프로방스(Aix-en-Provence)엔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 이 있다.


안타깝게도 이곳의 명소 중 하나인 그의 스튜디오(Atelier de Cezanne)가 휴관이었다. 숙소 문제로 하루를 거의 날리다시피 했고, 오늘도 아침부터 양껏 쉰 탓이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시내로 나갔다. 광장 중앙엔 그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이곳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주요 작품 활동을 하다 생을 마감한 대 예술가 세잔은, 사물의 본질을 단순화된 형태로 표현해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의 고집스러운 시도는 그의 고향의 산, 생트 빅투아르(Mont Sainte-Victoire)를 그린 연작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ko.m.wikipedia.org/wiki/생트_빅투아르산)


그는 생전에도 화가로서도 어느 정도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상속받은 재산으로 여유 있는 생활을 했지만 그와 별개로 개인적 삶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나 꽂힌 대상의 본질이 드러날 때까지(사과가 썩을 때까지) 끊임없이 그려냈던 편집증적인 성격은... 가정생활을 하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을 거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결국 폭우가 쏟아지는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다 저체온증과 폐렴으로 쓰러져 생을 마감했다. 보통 사람이면 빗방울 몇 개만 맞아도 화구를 챙겨 돌아갔을 것이다.



꼿꼿한 자세로 정면을 뚫어져라 응시한 모습을 통해 마치 황순원 작가의 소설 <독 짓는 늙은이>의 주인공처럼, 자신의 예술세계를 본인의 삶을 통해 집요하게 추구했던 그의 성품을 느낄 수 있다.


우린 꼬마기차를 타고 이곳을 한번 돌아보기로 했다. 까르까손에서 타보고 워낙 실망했었던 기억이 있지만, 날이 너무 뜨거워서 두 아이들과 코코가 지쳐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자 아래에서 더위를 식혀요

지명인 Aix는 로마어로 ‘물’을 의미한다. 명칭에 걸맞게 이 작은 도시 곳곳에 크고 작은 분수가 1000개가량 된다고 하니, 골목 하나하나 지날 때마다 눈에 들어온다.


정말 다양한 형태의 분수들

분수와 함께 눈에 들어온 것은 도시의 색감이다. 밀밭을 떠올리게 하는 빛바랜 금빛의 건물들에 졸졸거리는 물소리가 얹어져 그립고 아련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오늘의 꼬마기차는 유명한 미라보 거리로부터 잘 모르고 지나칠만한 작은 골목들도 고루 보여주는 루트여서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세잔의 카페로서 유명한 Les Deux Garçons는 보수공사로 닫은 상태) 길이 좁아 도보로 이동하는 관광객과 하이파이브를 할 수 있을 정도여서 조금 민망(무슨 옛날 가마도 아니고 사람들이 기차 지나갈 때마다 갈라져서 미안하기도 하고) 한 것만 빼곤 말이다.


순회를 마친 뒤, 각자 맘에 들었던 포인트들을 찾아가는 시간.

아이들은, 꽃 모양으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주는 가게를 골랐고 남편은, 코너에 있던 줄 서서 먹던 피자가게를 골랐다. 난 골목길의 분수를 보며 산책하길 선택했다.


아이스크림을 받아 근처에 보이는 분수대에 자리를 잡았을 때다. 어디선가 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와 코코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멀리서 지켜만 보고 있더니 슬금슬금 다가오길래 코코도 그를 의식하고 다가가려고 하니 훌쩍 뛰어 자기 집으로 쏙 들어갔다. 까망이(편의상)의 집은 창문이 열려있던 일층의 아파트였다.

잠시 후 다시 나온 그가 아까보다 훨씬 가까이 다가온다. 더욱 가까워진 고양이와 개. 개는 꼬리를 흔들며 반갑다며 다가가고, 고양이도 그게 영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짧은 놀이 뒤 고양이가 개의 머리를 쓰다듬(이라고 하기엔 좀 짧으니 툭 친 건가?) 하고는 지 집으로 훌쩍 들어가 버렸다.


주변에서 쳐다보던 사람들의 웃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코코를 데리고 여행하며 느끼는 것은, 정말 프랑스 사람들은 동물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저 앞에서 누군가 날 보며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것 같아, 엇 누구지, 하다 보면 곧 그가 우리의 강아지를 보고 즐겁게 다가왔음을 알게 된다. 지나치는 중에도 예쁘다, 작은 강아지네~ 하며 한마디를 꼭 해주고, 작은 아이들도 스스럼없이 관심을 표현한다.


오히려 가족을 낯선 사람으로부터 지킨다며(우리 생각엔) 왕왕 거리며 까칠하게 구는 건 코코다.


음식점을 가도 카페를 가도 강아지로 인해 제지를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옷가게 Primark에서만 안고 다니라는 주의를 받아봤다) 오히려 매어 놓은 개를 위한 물그릇이 항상 준비되어 있는 나라이다.


이런 따뜻한 환대 속에 무사히 네 명과 한 마리 여행이 진행되고 있다. 문득, 우리 강아지에겐 이 시간들이 어떻게 남을지 궁금해진다. 밀빛 거리에서 분수 소리를 들으며 까만 고양이와 잠깐 놀았던 이 순간을 코코도 기억해줄까.


개의 수명은 평균 15년으로 대략 인간의 1/6 수준임을 감안할 때, 인간의 하루는 개에겐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라 할 수 있다. 고작 8개월 살아온 코코가 벌써 2주가량 여행을 함께 했으니 사람이라면 석 달 이상 집을 떠난 느낌일 것이다.


우리에게도, 코코에게도, 이 시간이 잊지 못할 시간이 되길 바라본다. 다음 여정에선 우리 코코에게 처음으로 바다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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