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jour, c'est Sébastien pour votre accueil, cet après-midi à Nice.
안녕하세요, 세바스티안이에요.
오늘 오후 니스에 오시는 걸 환영해요.
미리 웰컴 메시지 보내주는 호스트라니! 어쩐지 느낌이 좋다. 이번 행선지 니스에서는 총 5박을 계획하고 있다. 멋진 해수욕장이 있는 것도 큰 이유였지만, 위치가 다른 소도시에 가보기에 적당한 위치였기 때문이다. 깐느, 모나코, 안티베, 생트로페, 그라스 등이 모두 가까운 도시인데 어딜 가야 할지 선택하는 것도 고민될 정도다. 다 가볼 순 없을 테니...
숙소 앞에서 열쇠를 건네받기 위해 만난 호스트 세바스티안은 자신의 오토바이로 우리가 주차할 자리를 확보해주고 있었다. 이런 친절이! 우리 남편의 얼굴이 니스의 햇볕보다 환하게 빛날 수 있음을 그때 처음 알았다.
볕도 잘 안 들던 이전 숙소에서 무려 투룸 아파트로 오니, 마치 인생 첫 집 마련한 것 같이 기쁘다. 게다가 이번에 새로 부엌을 리모델링했고, 우리가 그걸 처음 쓰는 게스트라고 하니 더욱 마음에 들었다. (물론 깨끗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거겠지?)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까지 낑낑거리며 짐을 옮기는 것이 쉽진 않았지만, 앞으로 5일간은 이곳에 정착(?)해 살 거라는 생각에 힘이 솟는다.
친절한 세바스티안은 준비해 놓은 작은 지도를 펴고, 이곳에서 갈만한 곳이 어디인지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무엇보다 개와 함께 놀 수 있는 해변이 있다는 말에 내가 더 신이 났다.
엄마, 근데 바다가 있었어?
니스의 의문의 1패.
아마도 엑상-프로방스에서 니스까지 내륙길을 통해 왔기에 오는 길에 바다를 제대로 못 보아서인지, 여기 멋진 해변이 있다는 것을 믿기 힘든 눈치다. 당장 해수욕을 하러 가자며 맹렬히 조르기 시작하는 것을, 늦었으니 오늘은 정리하고 자자며 잠깐 유튜브를 허용해주는 것으로 간신히 합의를 봤다.
남편이 짐을 정리하고 각종 전자기기를 세팅하는 동안, 난 그동안 밀렸던 빨래를 돌리고 밥을 안쳤다.
여행하는 동안엔 시트형으로 된 세제가 참 편하다. 샐 염려도 없고, 부피도 적게 차지하기 때문이다. 단지 섬유유연제의 향기로움이 부족하다는 것이 단점인데, 마침 숙소에 비치되어 있던 것을 빌려 썼다. 오랜만에 향기로운 빨래를 탁탁 개어 줄어들던 속옷들을 쟁일 수 있겠단 생각에 기분이 좋다.
여행 준비물 중에 남편과 가장 의견이 대립되던 물건은 바로 ‘밥솥’(정확히는 소형 인스턴트 팟-다용도 조리기구-이다)이었다. 남편은 밖에 나왔으니 대강 사 먹지 괜히 무겁게 짐을 늘린다는 입장이었고, 난 어떻게 매일 사 먹냐, 분명 요긴하게 쓰일 거다, 란 입장이었다. 사실 그뿐 아니라 요리를 위한 각종 양념과 부재료 까지... 한 짐이나 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한 끼 정도는 밖에서 먹어도 한 끼는 따뜻한 밥에 현지에서 사 온 재료 및 가져온 재료로 간편히 때우고 있으니, 경제적으로도 건강상으로도 좋은 선택이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지만, 돌아다니며 해 먹는 게 썩 맘에 드는지 남편의 잔소리는 어느샌가 쏙 들어갔다.
내가 집에서 준비해 온 재료는,
라면(신라면/짜파게티 끓이는 것)
통조림 (스팸과 참치)
고형 카레
1kg 쌀 3 봉지
메밀국수
김가루
조미료류(식용유, 쯔유, 참기름, 소금, 후추, 시판 겉절이 양념, 시판 비빔밥용 고추장, 케첩, 마요네즈, 머스터드-그동안 배달음식을 시킬 때 받은 일회 포장된 것 중 안 쓴 것들을 모아둔 것을 가져왔다.)
이 정도이다. 여기에 현지에서 계란과 간단한 야채 정도만 조달하면 다양한 방법으로 끼니를 준비할 수 있다.
밥솥과 더불어 긴 여행길에 추천하고 싶은 건 ‘브*타 정수기’이다.
물통에 한 달간 사용할 수 있는 필터를 끼우는 방식의 정수기인데 참으로 유용하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유럽의 수돗물엔 석회질이 섞여 있어 건강엔 썩 좋지 않기에 되도록 생수를 사서 먹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사정과 달리 유럽의 마트는, 24시간은 고사하고 8시만 되어도 문을 닫아버리거나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영업을 하지 않는 마트도 허다하다. 이러니 밤늦은 시간에 혹은 휴일에 숙소에 도착한 경우, 상당히 곤란할 수 있다. 배고픈 것은 조금 더 참을 수 있어도 목마른 것은 당장에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수돗물을 받아 바로 식수를 해결할 수 있는 정수기가 무척 유용하다.
정수기를 쓰기 위해 각자 개인 물통을 하나씩 가지고 다니는데, 정수한 물을 각자의 병에 꽉꽉 채워서 냉장고에 넣어 두면 그렇게 든든할 수 없다.
삐ㅡ
어느덧 밥이 다 되었단 신호음이 울린다. 집안엔 지글지글 구워진 스팸의 향이 가득하다. 스팸 옆엔 각자의 수대로 계란을 부쳤다. 이에 볶음김치 레토르트까지 곁들이니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식사가 되었다.
아! 갓 구운 김은 조금 아쉽긴 하다.
차리는 시간이 길든 짧든 먹는 것은 언제나 짧다. 후다닥 끝낸 식사 정리를 하다 보니 어느덧 빨래가 끝났다.
빨래를 꺼내보니 응? 내가 생각했던 향이 나지 않는다.
아... 아차...
섬유 유연제인 줄 알았던 것이 실은 다목적 세제였다. 쓰인 말이 달라도 으레 포장에 곰돌이 같은 것이 그려져 있었어야 하는 건데, 통 모양만 보고 속단했던 내 실수다...
그냥 헹굼 탈수라도 한번 더 돌려야겠다 생각하는 중, 샤워하러 들어간 딸들의 다급한 목소리들이 들린다.
엄마, 아빠! 뜨거운 물이 안 나와~!
아, 또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렇게, 정신없이, 니스에서의 첫날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