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점점 좁아지고, 울창해지는 나무로 인해 길의 경계가 불분명해질 때쯤 새로운 숙소에 도착하였다. 앗, 이곳은... 시골이로구나!
호스트 크리스티앙이 계속 아침식사를 권유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주변엔 가볍게 다녀올 빵집도 카페도 마트도 아무것도 없다.
녹음이 우거진 전형적인 프로방스식 시골 주택. 거기서 당장 빨강머리 앤이 고개를 내밀 것만 같은 나무 덧문이 달린 작은 방이 우리가 이틀간 묵을 곳이다. 복층구조로 되어 있는 방의 2층엔 매트리스가 깔려 있고 아래층엔 작은 부엌과 냉장고, 화장실과 침대가 있다.
좋게 말하면 매우 아늑하고, 현실적으로는 네 가족+한 마리가 지내기엔 비좁은 방이지만 다행히 이층을 통해 지붕이 보이는 테라스로 나갈 수 있어 숨통이 트였다. 코코는 주변의 나무속을 뛰어다니며 그저 신났다. 주인은 웰시코기 한 마리와 코카 스파니엘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방방 뛰는 어린 코코가 그다지 미덥지 않은지 두 개를 데리고 집안에 탕 가둬 버렸다.
남편은 님에서 워낙 주차로 고생했던 터라, 차를 그냥 댈 수 있다는 거에 만족한다고 하니 다행이다. 짐을 옮기고 풀고 있는데 남편의 비명(?) 소리가 들려 황급히 나가 보았다.
“왜 그래?”
“이거 봐 봐...”
헐.
트렁크의 덮개를 들어 올린 곳에 물이 고여있다. 덮개를 만져 보니 축축하다.
“이거 왜 그러지?”
“모르겠어. 비가 샌 것 같은데...”
그동안 온 비로 물이 안으로 들어왔나 본데, 가방들의 위쪽은 뽀송하다. 바닥 쪽을 만지니 다행히도 바깥쪽만 물기가 느껴지고 안으로 스미진 않았다. 어딘가 물방울이 차체를 타고 들어와 아래에 고였다는 이야기인데, 우리가 진단하기는 어려웠다.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일단 비가 그쳐서 다행이다...”
“근데 이걸 어떻게 치우지?”
JQ(잔머리 지수) 170 이상인 남편은 코코의 배변패드를 뒤집어 깔았다. 여행 이전에도 어느 정도 훈련이 되었었지만 여행하며 야외 배변이 완벽히 몸에 밴 코코가 더 쓸 일 없어서 애물단지였던 물건이 이렇게 유용히 쓰일 줄이야. 물을 흡수한 시트가 마치 아이들 어릴 적 쓰던 수영복 기저귀처럼 터질 듯이 빵빵해졌다.
급하게 진행된 숙소 변경과 예상치 못한 일들로 온 몸이 녹초가 된 와중에 호스트가 다시 한번 아침식사를 어찌할 거냐며 확인하러 왔다.
한 사람당 8€니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었지만, 몸도 마음도 지쳤기에 누가 해주는 아침을 먹고 그냥 자고 싶었다. 아침 9시 반에 밥상(?)을 받기로 정하고선 휴식한 하루.
서늘하고 조용한 시골 밤공기 속, 웰컴 드링크로 마련된 프로방스식 로제 와인과 함께 선물용으로 가져온 하몽 한 팩을 오픈했다. 지붕 너머로 긴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오늘 하루가 길었는지 유독 오늘따라 땅거미가 길다.
다음 날 아침, 약속한 시간에 아침식사가 배달되었다. 테라스 식탁에 식탁보가 깔리고 바구니에 한가득 담겨 올라온 음식들이 푸짐히 차려졌다.
햄에 치즈, 과일과 야채가 예쁘게 담기고,
어른들에겐 뜨끈한 커피가, 아이들에겐 쵸코렛을 담을 잔들이 놓였다. 이를 위한 차갑고 뜨거운 우유 두 가지가 함께 올려져 있다.
시리얼과 요거트 및 몇 가지 종류의 식사빵과 그에 발라먹을 수 있는 잼과 스프레드가 식탁을 메웠다.
화려하진 않지만 일단 색색가지 소박한 접시가 눈을 즐겁게 하고, 맛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맛이라도 시골 공기 속에서 먹는 밥상이라 그런지 느껴지는 특별한 풍미가 있다.
어릴 적 즐겨 읽던 동화 <소공녀>에서 주인공 세라의 다락방에 비밀의 친구가 멋진 식탁을 차려준 장면처럼, 우리가 묵는 작은 다락방도 새삼 달리 보인다. (물론 난 내돈내산)
급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차에 물이 샜지만, 다행히 날씨가 좋다.
잠을 푹 잤고 배가 부르니 마음이 느긋하다.
밥도 먹었고 게으름 피워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 없다. 관광? 적당히 하지 뭐!
쿰쿰하게만 느껴졌던 시골 환경이 어느덧 낭만과 여유로 다가오는 거 보니 배부르고 등 따수우니 마음 바뀐다는 말이 맞나 보다.
방안엔 (당연히?) TV가 없었지만 차를 말리는 겸 짐을 다 뺀 통에, 남편의 모니터를 꺼내 아이들 게임기도 연결해주고, 운전과 주차에 지친 남편은 원하는 잠을 실컷 잤다. 코코는 스페인 시고르 짜브종 답게 그야말로 제대로 시골 개처럼 놀고 있다.
이런게 여행이지 뭐.
창을 활짝 열고 살랑이는 바람을 한껏 방에 들여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