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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숲 Oct 08. 2022

노을과 밤의 시간

이천 원적산 백패킹


 선선한 바람이 아침저녁으로 불어와 계절의 바뀜을 알리는 계절에 이천 원적산으로 백패킹을 다녀왔다. 원래는 충청도로 백패킹을 가는 일정이었는데 연휴의 시작, 막히는 도로 위에서 우리는 결단을 내리기로 했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백패킹이 가능한 산으로 가기로 말이다. 마침 이천을 지나가고 있었고 급히 찾아보니 이천 백사면에 있는 원적산이 경기도의 알프스라고 불릴 만큼 산새가 아름답고 백패커들이 등짐을 지고 많이들 찾는 산이라고 한다. 그래서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방향을 바꿔 원적산을 오르기로 했다. 이렇게 계획은 순식간에 바뀌기도 하고 그 변화들이 예상치 못했던 즐거운 일들을 데려오기도 한다.



산은 벌서 가을을 입었다


 등산 코스는 원적산이 품고 있는 천년고찰인 영원사에서부터 원적봉까지 오르기로 하고 여력이 되면 주봉인 천덕봉까지 가기로 했다. 한발 한발 정상을 향해 걷다 보니 나무들의 가을 채비를 만날 수 있었다. 산 아래는 아직 푸르기만 한데 산의 나뭇잎들은 어느새 다채로워지기 시작했구나. 등산길에서 풍겨오는 가을 향기가 참 좋았다.




정상에서는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원적산도 역시 만만한 곳은 아니었다. 원적봉의 탁 트인 전망을 만나기 위해서 깔딱 고개를 넘어야만 했다. 시작부터 오르막길의 연속이었던 것. 마지막에는 계단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것만 같았는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니 갑자기 눈에 이런 모습이 들어온다. 이천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하더니 정말 시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밤이 내리면 저 멀리 보이는 마을에서 얼마나 아름다운 야경을 만날 수 있을지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멀리 보이는 높은 곳이 천덕봉이라고 했다


 원적봉에서 고개를 돌려 오른쪽으로 바라보니 멀리 천덕봉이 보였다. 여기 원적봉에서 천덕봉까지 이어지는 능선길이 아늑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살랑이는 바람을 맞으며 가볍게 저 길을 걸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오늘 우리의 여정은 멈추기로 했다. 초보 백패커에겐 한 발짝도 더 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지칠 때가 좀 빨리 오는 것 같다. 올라오면서 땀을 많이 흘렸으니 바람막이 점퍼를 꺼내 입고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기로 했다.



등산 스틱을 내력 놓고 휴식을 가져본다
달콤한 산 위의 노을을 바라보다

 

 금방 노을의 시간이 되었고 해가 지는 하늘은 달콤한 아이스크림 같기도 하고 부드러운 푸딩 같기도 했다. 예쁜 스푼으로 노을 번진 하늘을 한 숟가락 뜨면 달콤함이 온 입안에 퍼질 것이었다. 동그랗고 따뜻하게 빛나는 해가 멀리 보이는 산 너머로 조금씩 내려갔다.



해가 지고 나서 더 아름다워지는 하늘

 해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도 하늘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까닭은 금방 사라져 버릴 하늘의 빛들을 오롯이 느끼고 싶어서일 것이다. 보라, 연보라, 귤빛 하늘에 깃털같이 가볍게 떠있는 구름을 만나는 이 시간은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든다. 둘러보니 이 노을에 반한 사람은 나뿐만 아니었다. 원적봉엔 백패커들이 여러 명 있었고 모두가 하늘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노을이 지는 것을 보며 하루 묵어갈 집을 만들고 소박하게 가져온 음식을 먹는데 문득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노을이 시간이 지나가면 밤의 시간이 찾아든다. 어찌 보면 산 정상에서의 시간은 하나의 예술이 아닐까. 시간이 흐름에 따라 펼쳐지는 풍경들이 한 편의 교향곡처럼 흐르니까 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어두워지며 산 아래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씩 켜지고 이내 모든 불빛이 켜지며 환해졌다가 서서히 하나둘씩 꺼지며 새벽을 맞이하는 긴 호흡의 교향곡. 산 아래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두가 음악이 되고 별이 되는 것이었다.




해가 떠오르고 산 아래 마을이 바다처럼 보인다

  밤의 시간이 지나가고 아침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모두 동쪽을 향해 서서 해가 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 또는 여럿이 서서 해를 기다리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도 일출을 보았다. 매일 보는 해지만 산에서 만나는 해는 뭔가 특별한 것 같다. 뭔가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 좋은 설렘이 있다. 해가 더 높이 떠오르기 전에 우리는 텐트를 걷고 정리를 했다.




하산길은 언제나 뿌듯하다

 

 산을 올랐으니 내려가야지. 이른 아침의 하산길은 언제나 뿌듯하다. 산에 대한 고마움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마음이 따뜻하게 채워진다. 나뭇잎 사이로 해가 비춰오고 진한 숲의 향기를 맡으며 걷는 길. 우리는 또 한 번의 기분 좋은 마침표를 찍으며 하산하면 뭘 먹을지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국밥을 먹을까. 순두부를 먹을까. 아니면 이천쌀밥? 확실한 건 디저트는 달콤한 푸딩이다. 부드러운 푸딩 같았던 지난 노을의 황홀함이 여전히 마음에 남아있으니. 아무래도 아주 오랫동안 그 노을과 밤의 여운이 가시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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