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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같은 숲, 유명산 자연휴양림

- 친구처럼 다정한 숲이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 됩니다.

by 푸른 숲

해마다 봄이면 찾아가는 숲이 있다. 우리에게 있어 봄은 자연휴양림 캠핑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그렇기에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헤어진 것 같은 친근한 숲. 수도권 내 휴양림 중에서 강원도의 깊은 분위기를 가진 숲으로 간다. 가평 설악면에 있는 유명산 자연휴양림이 바로 그 숲이다.


유명산은 왜 유명산이야? 유명해서 유명산이야?

꼬마의 물음에 답해주기 위해 찾아보니 1973년, 한 산악회가 국토 종주 중에 이곳을 찾았다가 지형도에 봉우리의 높이만 표기돼 있을 뿐 이름이 없자 종주대 대원의 이름이었던 '유명'을 따서 불렀는데 이들의 종주기가 한 일간지에 실리면서 유명산이라는 이름이 알려진 것이라고 한다.


사람의 이름이 산의 이름이 된 곳이라 그런지 나는 이 유명산이 친근하다. 다른 휴양림들보다 상대적으로 거리도 가까운 편이라 생각날 때 훌쩍 다녀올 수도 있고, 휴양림 내의 아기자기한 식물원과 데크 로드를 따라 걷다 보면 다정한 친구와 산책하는 기분마저 든다. 무엇보다 봄에는 겨울을 버티고 난 산의 싱그러운 낯을 마주하고 그간의 밀렸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4월 초에 갔을 때는 빈 나무들이 하늘을 이고 처연한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산 아래는 봄이 왔다지? 우리도 지금 부지런히 봄을 준비하고 있어.

나무에 가만히 귀를 대어보니 꼴깍꼴깍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조용하지만 강하게 뿌리에서부터 물을 끌어당기는 나무들이 대단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곧 울창한 녹색의 손을 가지게 될 것이었다.

산책로 옆에는 작은 초록이들이 흙더미를 밀고 나와 숲의 짧은 해를 맞고 있었다. 땅 속 어둠에서도 제 갈 길을 알고 햇살을 만나고 있던 초록이들. 이 작은 생명들도 나무들과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이내 커져 곧 따스한 햇살을 듬뿍 받을 것이었다.

4월 초의 숲은 겉으로 보기엔 봄이 아직 먼 것 같았지만 나무와 풀들의 겨울 극복기와 봄맞이 계획을 듣느라 귀와 눈이 즐거웠다. 그렇게 숲에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며 이 숲이 초록으로 변하게 될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5월에는 운이 좋았다. 주말 추첨제에 당첨이 되어서 2박 3일 일정으로 다시 유명산 휴양림을 찾게 되었기 때문이다. 첫날은 비가 좀 내렸지만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설악 IC를 지나면서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덕분에 텐트를 치기에는 별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휴양림에 도착해보니 온통 싱그러운 비와 흙의 냄새가 났다. 빗물을 하나하나 머금고 있던 풀들을 보고서 봄이 휴양림에 가득 번진 걸 알았다. 그리고는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다음날은 완전히 개어 하늘도 파랗고 숲도 파랬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잎사귀들을 흔들며 숲이 흔들리는 모습이 꼭 녹색의 거대한 생명체가 숨을 쉬는 것 같았다. 산의 들숨과 날숨에 나의 숨쉬기를 맞춰 본다.

오전엔 아이들을 데리고 박쥐소까지 산책을 했다. 박쥐소까지는 500M 정도의,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엔 꽤 괜찮은 산책 코스가 나온다. 등산로 입구에는 작은 매점도 있어 산책 시작 전에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먹고 출발할 수 있다. 가을에 가면 가평의 질 좋은 잣까지 맛볼 수 있는 매점이다. 여기서 키우는 강아지와 놀며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고 나면 본격적으로 등산로를 따라 산책을 시작한다. 곳곳에 맑은 계곡이 있어 산책길이 심심하지 않다. 가다가 계곡에서 물고기도 구경하고 발도 담가보고 하다 보면 박쥐소까지 오가는 길이 무척이나 정겹다.


점심에는 오랜만에 고기를 구워 먹었다.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는 일은 참 보람된다. 실컷 먹은 아이들은 놀이터로 달려갔다. 유명산 자연휴양림은 나무 놀이터가 있어서 아이들이 놀기에 참 좋은 곳이다. 그렇게 꼬마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다 보면 시간이 천천히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참 다정한 시간이다.

5월에 이 곳을 찾게 된 것은 행운이야.

5월의 해는 따뜻하고 부드러워 마음을 노곤 노곤하게 만들어준다. 초봄과는 달리 하루가 다르게 짙어지는 녹색의 잎들을 보기만 해도 상쾌하다.

이렇게 유명산 자연휴양림에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고 나면 좀 더 먼 곳으로의 캠핑도 문제없이 여유를 챙기고 떠날 수 있게 된다. 캠핑 시동이 부드럽게 걸리게 된 것이다. 한 번 가면 또 가고 싶고, 한 번 만나면 또 만나고 싶은 다정한 친구 같은 숲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그 숲에서 보낸 봄날의 시간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내면의 힘을 단단하게 키우는 고마운 숲. 오늘 잠시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 마음속에 훈훈한 봄바람이 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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