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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숲 Dec 13. 2019

태고의 모습을 간직한 통고산 자연휴양림

- 깊고 오래된 숲에 가면 그리움이 생깁니다.

울진 통고산 자연휴양림은 휴양림 예약 사이트에서 항상 마지막으로 예약이 차곤 했다. 예약이 차는 순서를 보면 보통 수도권에서 가까운 휴양림이 빨리 예약이 끝난다. 우리가 통고산을 찾게 된 계기도 예약 가능 한 곳이 통고산이었기 때문이다. 예약을 하고 난 뒤, 휴양림에 대해 찾아보니 통고산 자연휴양림은 태백산맥 줄기 불영계곡 상류, 해발 500m에 위치한 숲이 울창한 곳이라고 한다. 그러서인지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아 태고의 숲을 간직하고 있다고.


옛 것과 통하는 숲

우리는 이 깊은 숲으로 가면 무엇을 하면 좋을까? 설레기 시작했다. 퇴근 후 밤을 달려와 휴양림에 도착하고 보니 자정이 가까운 시간. 후레시로 우리 자리를 찾는데 기대를 안고 찾아온 통고산 휴양림의 첫인상은 낡은 데크와 오래된 시설들로 실망스러움이었다. 일반 휴양림 데크보다 사이즈가 작은 것은 알고 있었는데 데크가 무척 낡아서 삭은 방부목 틈으로 곤충 친구들이 은신처를 마련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다음날 다시 짐을 싸서 돌아가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미 늦은 시간이고 잠든 아이들도 있으니 조용히 집을 짓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텐트를 열고 밖으로 나왔는데 이른 아침의 산수국이 눈에 훅 들어온다. 휴양림 데크 주변으로 누군가 밤새 심어놓고 간 것 같은 산수국과 인사를 하고 나니 이름 모를 산새들도 눈에 들어온다. 산새가 앉아있던 키 큰 가지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 가지들에 무성하게 달려있는 수많은 나뭇잎에서 상쾌한 녹색 바람이 불었다. 그러자 점차 지난밤의 심란함이 녹기 시작했다.


밤과 아침은 달랐다. 낡은 것쯤이야, 벌레나 곤충들이야 원래 여기가 저희들 집이고 내가 잠시 빌린 것인데, 그게 뭐 대수인가. 분명 같은 곳인데도 내 마음이 달라지니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오래된 휴양림이다 보니 휴양림 곳곳에 쓰지 않고 비워두는 데크가 많았다. 1 야영지에서 다리를 건너면 나오는 물가에 빈 데크 3개를 연결해서 쉼터로 쓰고 있길래 의자와 돗자리 등을 가지고 가서 오전 내내 피크닉을 즐겼다. 누워있기도 하고 물소리를 듣다가 책도 보고 음악도 좀 들었다가 점심도 먹고, 물가로 들어간 남편과 아이들을 바라보기도 하다가 나중에 같이 들어가 놀기도 했다. 놀다가 보니 바닥에 굵고 까만 다슬기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며 다슬기를 잡았다. 얼음같이 차가운 물인데도 다슬기를 줍는 즐거움에 차가운 줄도 모르고 계곡의 상류까지 올라갔다. 그러다 보니 해 그림자가 길어지기 시작했다. 잡았던 다슬기를 다시 계곡에 놓아주고 텐트로 돌아갈 때가 된 것이다.   


텐트로 돌아가는데 임도 아래 계곡의 물이 참방참방거린다. 호기심 많은 꼬마가 내려가 보니 작은 새가 계곡 물에 빠져 허우적 되는 것이 아닌가. 그 물이 얼마나 차가운 걸 알기에 안쓰러운 마음에 새를 물에서 꺼내 손으로 감싸주었다. 작은 새는 한동안 따뜻한 손에서 온기가 모아질 때까지 있었다. 그러다 파르르 몸을 한 번 털더니 녹색의 잎들 사이로 날아갔다.


이날 우리는 저녁 내내 새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음날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도 새와 큰 나무들과 다슬기와 계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내내 통고산을 그리워했다.


그리움을 못 이겨 다음 해도 통고산 자연휴양림을 찾았다. 다시 찾았을 때는 낡았던 데크들이 좀 더 넉넉한 사이즈로 새롭게 교체되어 있었다. 그리고 데크들을 정리하면서 촘촘했던 간격들이 넓어져있었다. 휴양림도 진화하더라. 새로 바뀌어 좋아진 것이 있었다면 아쉬운 점도 있었다. 계곡 옆의 낡은 데크 3개를 연결해두었던 쉼터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도 여전히 거대한 숲은 아름다웠고 편안했다.


워낙 깊은 산속에 있기 때문에 통고산에 들어올 때는 아이스박스에 먹을거리를 단단히 준비해와야 한다. 간단한 부자재라도 떨어졌을 경우 꽤 오랜 시간을 점방이나 마트를 찾아 헤매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 휴양림에 왔을 때는 그런 것을 알턱이 없었다. 그래서 첫 방문 때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두번째는 처음보다는 준비를 해왔지만 좀 더 필요한 것이 있다고 마트를 찾아 나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없으면 없는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꼬마였던 아이들이 태고적의 숲을 다니던 모습이 언제나 눈에 선하다. 완연한 봄이 푸르게 빛나고

숲이 나날이 커지는 계절. 그 계절이 오면 나는 언제나 통고산 휴양림의 문을 두드린다.

그 숲에서는 나도 꼬마들처럼 자라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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