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까지 닿을 듯한 나무 이웃을 만나러 깊은 산속으로 갑니다
아직 겨울이라고 해도 크게 어색할 것 없는 삼월. 그래도 삼월인데 하며 어디 꽃 핀데 없나 둘러보게 되는 이른 봄날. 그런 봄날의 여행은 훈풍이 불어오는 남녘이 좋지만, 한편으로는 내륙의 깊은 산속도 무척 매력적이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단호하게 안녕을 고하지 못하는 겨울 숲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곧 봄이 오고, 여름이 오면, 한동안은 보지 못할 겨울 숲과의 조우를 생각하면 그 또한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럴 때 나는 가고 싶은 숲이 있다.
청옥산 자연휴양림은 태백산맥 줄기의 청옥산 해발 800m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수량이 100년도 넘는 잣나무와 소나무, 낙엽송이 즐비해서 그런지 캠핑뿐만 아니라 산림욕으로 휴양림을 찾는 사람들도 꽤 많다. 또한 계곡에는 맑은 물에만 산다는 열목어를 볼 수 있으니 맑고 깨끗한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가는 길이 만만치가 않아 이삼 년에 한 번 정도 찾게 되더군요. 그래서 더 그리운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청옥산 자연휴양림에는 여러 야영장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2 야영장을 가장 좋아한다. 야영장을 둘러싼 키 큰 나무들 사이에 텐트를 치고 앉아 있으면 다정한 이웃이 보내는 눈길을 느낄 수 있다. 그 이웃은 나의 작은 텐트를 보며 덤덤한 인사를 건넨다. 그동안 뭘 하고 지냈는지,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온 건지, 뭐 그런 것은 물어보지는 않는다. 그저 먼길을 왔구나 한다. 그런 적당한 무심함이 이상하게도 나는 참 좋다.
산길을 따라 나란히 이어진 데크들도 참 정겹다. 적당한 거리를 지키는 나무들처럼 데크들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덕분에 쾌적한 캠핑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차를 데크 옆에 주차해 짐을 내리고 싣기가 편리한 점도 아주 마음에 든다. 또한 야영장 건너에 다목적 광장이 있어 꼬마들의 놀이터가 되니 아이들과 함께 가기에도 좋다. (이렇게 적고 나니 참 좋은 점이 많은 곳이군요.)
마지막으로 청옥산에 갔을 때 우리는 복층 데크로 나름 유명한 자리를 예약할 수 있었다. 눈이 얼어붙어 있어서 1층 데크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복층에 있는 것만으로도 꼬마들의 환호를 들을 수 있었다.
겨울 숲에서 응달은 가장 늦게 눈이 녹는 곳이다. 반면에 해가 드는 곳은 포근한 봄볕으로 몸에 묻은 추위를 날리기에 아주 좋다. 계곡도 얼음이 녹으면서 조용히 속닥이며 아래로 아래로 흘러간다. 이런 봄날에는 따뜻한 차가 함께면 무척 행복해지기 마련. 보글보글 찻물을 끓여본다.
겨울과 초봄에는 햇살 한 줌이 그렇게 소중할 수 없다. 기회만 되면 해를 쬐기 위해 볕을 찾아가는 것이다. 전날 밤에는 청옥산 깊은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찬 바람에 몹시 추웠는데 다음날 낮은 어쩜 이리도 포근하기만 한지. 서늘한 추위 사이의 따뜻함은 이런 식으로 마음에 행복하게 각인된다. 그리고는 그해의 마지막인 겨울과 안녕을 고해 본다.
추운 걸 몹시도 싫어하지만 춥다고 꼭 나쁘지만은 않았어. 덕분에 따뜻한 것들을 모으게 되었어.
의자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면 닿지 못하는 가지들 사이로 새들의 집은 부지런히 지어지고 있고 나무들은 수없이 가지를 뻗어내고 있다.
이른 봄날, 겨울 숲을 만나러 휴양림 캠핑장으로 가는 길은 새로 만나는 계절처럼 늘 설렌다. 그곳이 청옥산 자연휴양림이라면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