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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소댕 Dec 28. 2023

할머니가 외로워서 그래

죄책감때문에 또 타향살이가 시작됐다.

가끔 가족이라는 타이틀이 바위처럼 무겁게 다가오는 날들이 있다. 매말라가는 할머니의 피부와 점점 굽어가는 허리와 늘어가는 부모님의 주름살처럼 눈으로 보이는 건 더더욱. 어디선가 [더이상 제멋대로 살 수는 없어]라며 내 마음을 채찍질하는 것만 같다. 첫째딸이라 내가 다 짊어지고 가야해라고 생각하면서도 비겁하게 외국으로 도망치면서 산 세월이 십 년을 넘어가니 한 살 터울인 동생도 이제는 으레 포기한듯 자기가 맡이 노릇을 떠맡게 되는게 당연한 듯 행동을 하니 죄책감이 한 겹 더 추가된다.




'넌 왜 이렇게 호주에 집착해'라는 전 남자친구 말에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내가 할 수 있는게 이것밖에 없어서 그래'였다.


정말 난 외국에서 잘 사는 것 밖에 못해. 호주에서 잘 살고 영주권을 따면 부모님 노후도 책임질수도 있고, 높은 임금 덕에 그렇게 말로만 편지로만 남발했던 진짜 '효도'를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앉은뱅이 탁자 가득 전날 재운 양념갈비를 내오며 맛있는 살코기는 손녀 발라주고 뼈만 드시던 할머니의 한숨 푹푹섞인 잔소리에 곧 자리 잡을테니 걱정하지말라고 큰 소리 떵떵쳤다.


'할머니, 난 가족들 행복하게 해주려고 가는거야.'


거짓말. 나는 나 밖에 모르는 사람인 것 같은데. 그래도 할머니 안심시켜드리자.


'너 그래도 할머니한테 자주 연락해'


예전에는 안 그러셨는데 요 근래 전화 한 번 안한다고 자주 서운해하신다. 한 달에 한 번은 대림역에서 15분 할머니집 자주 들리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혼자 사시고 나서 부쩍 그러신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그렇게 크진 않지만 내가 가장 많이 닮은 눈매에 가득 눈물맺힌 할머니 한마디에 와르르 무너진다.


'할머니가 외로워서 그래'


왜 나는 할머니도 또한 외롭지 않을꺼라 생각했을까? 가족이랑 같이 살면서 고양이 두 마리 그리고 당시에 있던 남자친구와 항상 만나는 친구들까지 모두를 듬뿍 가진 나도 가끔 외로운데. 진짜 오래 보지도 않은 남의 생일은 그렇게 챙겨대면서 어린 손녀 맛있는 거 몰래 챙겨준다고 멀리 있는 시장까지 나가는 할머니의 굽은 등은 생각도 안하는 진짜 못되먹은 애다.




어린 날에 이모 할머니따라 호주에 다녀왔다며 동생 하나 나 하나 주머니에 아기 캥거루가 달린 캥거루 인형을 선물받았다. 그때는 사촌동생은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대구에 살던 때라 할머니 세상에는 우리 둘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캥거루 인형의 보드라운 감촉이 아직도 이렇게 생생한데 나는 나이를 이렇게 부쩍 먹었고, 내가 호주에 왔다. 우리 할머니 비행기 태워서 같이 캥거루 보러가야 하는데, 철부지 손녀는 나이만 먹었지 아직도 철딱서니가 없다. 할머니가 너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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