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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철 Oct 11. 2024

4) 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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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출국


김해공항을 출발해 도쿄로 가서 거기서 1박을 하고 일본 국내선으로 홋카이도의 ‘하꼬다데(函關)’로 가는 여정이었다. 나의 환송객들은 좀 유별났다. 식구는 물론이고 동네 아주머니들 세 분이 나오신 것이다. 아마도 같은 동네 사진쟁이 최씨 아들이 수산대학 졸업하고 큰돈 벌기위해 먼 곳으로 떠난다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기쁘고 안타까운 마음이 겹쳐 오신 것이리라. 당시로선 큰돈이었던 돈을 290만원이나 받아 집에 갖고 왔다는 소문이 동네에 쫙 퍼졌던 것이다. 학비도 제대로 마련 못해 쩔쩔 매던 집구석에서 말이지.    

 

집에서 하숙하던 상민 삼촌 부부도 아이를 안고 왔었다. 웃긴 것은 기념사진 찍는데 옆에 있던 갑판장 영감쟁이도 얼떨결에 우리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다. 아버지 특유의 열린 자세였다. 오는 사람은 절대로 안 막는다는 게 당신의 평소 지론이었다. 공항을 떠날 무렵 당신은 내게 악수 한 번 하자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난 당신과 악수한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당신도 나도 서로에게 숫기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당신이 워낙 술을 많이 드시기에 대학 4학년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섭섭하고 반항적인 말을 한 번 한 적이 있어 그게 늘 마음에 걸렸었는데, 당신이 내 마음을 아시고 아버지로서 먼저 인간적인 화해의 악수를 청하신 것 같았다. 순간 눈물이 났다.

“건강하게 지내라, 희철아”

“아버지도 술은 적게 드시고 건강 하이소”

당신의 손바닥에서 약간 끈끈한 느낌이 들었다. 5월 말이라 약간 더워서 그런가. 그게 당신과의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이야.     


곽선장은 갑자기 우리 식구들의 엄숙한 이별 분위기는 생각지도 않고 나보고 어디 가서 빈 박스를 하나 구해 오라고 했다. 이리저리 찾다가 없어서 공항 구석에 있는 쓰레기 모으는 곳으로 가니 빈 박스가 많았다. 그곳에서 적당하다싶은 것 하나를 골라 들고 오는데, 대학 1학년 때 우리 반, 수산 1반의 ‘문미숙’이 서 있었다. 내가 쓰레기장에서 빈 박스를 골라서 들고 오는 걸 봤나 보다. 하얀 블라우스에 배시시 웃는 자태가 꽃처럼 밝고 싱싱했는데, 목덜미 근처에 유난히 많은 솜털이 눈에 띄었다. 아, 그것은 섹스와 관련된 이미지였다. 예전에도 그랬지 그래서 가끔 남자 동기들끼리 그의 솜털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던 것 같다. 옆에서 뜨거운 입김을 불어 한 번쯤 넘겨보고 싶은 솜털의 군락들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몸이 배배꼬이는 것 같았다. 문득 ‘경아’가 생각났다.


“어, 미숙씨가 여기 웬일인교?”

“아버지 배웅 나왔어요”

그는 곧 죽어도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엉?”


혹시 우리 선원 중에 그의 아버지가 있는가 싶어 자세히 물었더니 아버지가 상선 타신다고 했다. 배와 관련 없는 사람들이야 잘 모르겠지만 선원 그리고 그와 관련된 사람들끼리는 그런 게 약간 있었다. 어선을 타도 국내선보다는 원양어선 그리고 원양어선도 마구로(참치 독항) 배보다는 트롤어선 그리고 어선보다는 상선 그리고 상선도 연근해나 동남아 뛰는 잡화선 보다는 월드 뛰는 크루드(원유), 컨테이너, 오토선(자동차 운반)이 더 상위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선원들 모두가 그런 게 아니고 대체로 원양어선 타는 사람이 국내선 타는 사람을 약간 무시하고, 트롤 선원이 마구로 선원을 그렇게 보고, 상선 타는 사람이 어선 타는 사람을 그렇게 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 배 3항사들이 마구로 배 1항사 하다가 때려치우고 우리 배 즉 트롤어선으로 온 것도 사실 그런 것과 연관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미숙의 ‘아버지가 상선 타신다’는 말 속에는 그런 뉘앙스가 묻어 있었다. 그래서 배웅 나왔다고 한다. 둘 다 수산대학 아니랄까봐 다들 바다하고 상관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있었다면 커피라도 한 잔 사 줄 텐데 나의 처지가 그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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