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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철 Oct 10. 2024

3) 바가지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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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가지 골목     


초사가 항해사들을 집합시켰다. 3일 후 출국인데 술 한 잔 하자는 것이었다. 일종의 항해사 단합대회였다. 초사는 전도금 300만원을 받았다. 아쉽게도 전도금은 2항사까지만 줬다. 당시 변두리 고기 집 삼겹살 1인분이 600~800원 정도 했으니 300만원은 엄청나게 큰돈이었다. 우리는 신천지 백화점 바로 앞에 있는 ‘바가지 골목’으로 갔다. 사실 갈 곳은 거기 밖에 없었다. 초사는 빈속에 과음하면 속 버린다면서 나중에 술을 먹더라도 저녁을 먼저 먹자고 했다. 초사는 술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몇 잔만 마셔도 얼굴이 금방 붉어졌다. 아무튼 1차를 고기 집에서 먹고 2차는 10시 넘어 ‘바가지 골목’으로 갔다. 가게 이름은 ‘초연’이었다. 아가씨들이 우리를 보더니 반갑게 몰려 나왔다. 아가씨 담당은 3항사였다. 먼저 아가씨 4명을 불러 초사에게 붙여주고, 다음은 2항사인 나와 그리고 3항사, 실항사에게 배당되었다. 첫 잔은 모두 원샷해야 한다면서 3항사가 외쳤다.


“술값은 모두 초사님이 계산할 테니 걱정들 말고 드슈!”

고기 집에서는 소주를 마셨는데 ‘초연’에서는 병맥주가 나왔다. 짬뽕하니 더 빨리 술이 취하는 것 같았다. 초사는 한 병씩 시키지 말고 한 박스를 시키라고 했다. 이름난 바가지 골목답게 아가씨들은 그리 나긋나긋하지 않았다. 술과 안주는 물론 담배도 손님들 것을 허락도 받지 않고 마구 피웠다. 하지만 그것은 기본자세였다. 그곳엔 국내선 선원들이 많이 오는데 바가지를 많이 씌우는 것으로 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언니 격으로 보이는 3항사 파트너가 술값과 아가씨 차지(화대)가 얼마라고 못 박듯 말했다. 뱃놈들이 와서 마시고 개판 치면서 서비스와 술값 시비가 많이 붙었던 모양이다. 아가씨가 있는 술집은 처음이라 좋았지만 좀 불친절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술이 약한 초사는 이미 약간 취한 상태라 아가씨들 얼굴 하나하나를 두리번거리면서 무엇이 그리 좋은지 연신 웃고만 있었다. 그리고 호주머니에서 꺼낸 작은 비닐 포장지 하나씩을 테이블 위에 탁 올리면서 성명서를 읽듯 말했다.

“며칠 후 출국할 건데 다들 조심혀”

콘돔이었다. 아가씨들이 그걸 보더니 피식 웃었다. 괜히 마음이 쿵쾅 거렸다.     

“미리 말해 두는디 니들 장난치다가 걸리면 오늘 나가 죽여 불 것이여!” 

이런 곳에 경험이 많다는 강철 3항사가 엄포를 놓았다. 

“오빠야 무신 소리고 이쭈게는 그런 데 아이다.”

아가씨들은 연신 실실 웃으면서 자기 파트너들에게 파고들었다. 나의 파트너는 그 중에서 가장 어린 것 같았다. 이름은 ‘경아’ 나이는 21살이라고 했다. 보통 그곳에서 만나는 아가씨는 성(姓)이 없다 그리고 자기 파트너의 성격과 행동을 따라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3항사처럼 목소리가 크고 성격도 괄괄하면 아가씨도 그렇게 행동하고 나처럼 숫기가 없으면 아가씨도 그렇게 하는 편이다. 

    

난 그래도 술은 좀 마시는 편이라서 대부분의 술은 3항사와 내가 마셨고, 초사는 술이 좀 약한 편이라 그런지 얼굴이 많이 붉어져 있었고, 실항사는 상급 항해사들 눈치 보느라고 술을 조금씩 마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술병이 사라지는 속도가 내가 봐도 빠른 것 같아 보였다. 맥주가 두 박스째 들어오고 얼마나 지났을까 3항사가 자기 파트너의 뺨을 후려쳤다.

“이 씨불년들이 사람을 찌끄러기로 보나!”

뺨을 맞은 아가씨는 얼굴을 감싸 안은 채 테이블 위에 뻗어 버린 것 같았다. 3항사는 고개를 숙이더니 테이블 밑에 있던 맥주 박스를 꺼내 테이블 위에 탕하고 놓았다. 그리고 그곳에 꽂혀 있던 맥주 빈 병을 몇 개 꺼냈다. 그리고는 병을 테이블을 향해 거꾸로 들었다. 그때 그곳에서 맥주가 확 쏟아졌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병에서 맥주가 쏟아졌고 심지어 몇 병은 거의 반 정도의 술이 병에 남아 있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술안주로 들어온 과일이나 오징어 접시도 반 이상 남은채로 테이블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매상을 올리기 위한 저열한 수법이었다.

“나가 죽여 분다고 혔제!”

“와이 카는교 우리가 머 했다고 이라는교?”

초사 파트너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술 취한 3항사는 흥분해서 맥주병 하나를 집어 들더니 맞아서 엎드려 있는 자기 파트너의 머리통을 내려치려고 했다. 그 아수라 상황에서도 3항사가 감히 초사 파트너를 때릴 순 없었던 모양이다. 그때 마담이 뛰어왔다. 그리고 뺨 맞은 아가씨 얼굴을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으며 경찰을 부르겠다고 난리를 쳤다. 초사는 3항사의 손에서 병을 빼앗으며 싸움을 말리고 있었다. 해결지점을 찾아야했다. ‘바가지 골목’의 저질스런 작태를 많은 선원들에게 들어서 익히 알고 있지만, 3일 후면 고향을 떠나 먼 바다로 나갈 우리에게까지 그렇게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마담은 술값을 정상적으로 계산하고 아가씨 차지도 내고 가라고 했다. 3항사는 다시 길길이 뛰었다. 하지만 마담은 당신들이 아가씨를 때렸으니 빈 병에서 나온 남은 맥주문제는 그걸로 퉁 치자는 것이다. 결국 초사가 합의를 보고 계산을 마친 후 우리는 ‘초연’을 나오게 되었다. 며칠 후면 출국할 뱃놈들을 불쌍하게 여기지는 못할망정 바가지를 씌운 것에 대한 자괴감이 심하게 들었다. 그런 걸 생각하니 술이 좀 깨는 것 같았다. 분하기도 하고 슬펐다. ‘초연’에서 나와 남포동쪽을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3항사가 자기는 나중에 완월동에 가서 잘 거라면서 근처에서 한 잔 더 하고, 같이 갈 사람은 가자고 했다. 초사가 자기는 가야 할 곳이 있다면서 술은 그만 마시자고 했다. 사실 3항사는 많이 취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3항사와 실항사에게 돈 5만원씩 주면서 술은 더 마시지 말고 바로 완월동으로 가라고 했다. 2항사인 나에게는 너는 전도금 받았으니 그걸로 쓰라고 했다.      


우리는 헤어졌고 술도 깰 겸 혼자 신천지 백화점 옆으로 해서 자갈치 쪽으로 가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오빠야!”

잘 아는 목소리가 아니라서 설마 내가 아니겠지 했는데 다시 불러 뒤돌아보니 ‘초연’의 파트너 ‘경아’였다. 놀라웠다. 바가지 골목 입구에서부터 우리 일행이 어디로 가는지 보았다고 한다. 아마도 우리가 집단으로 경찰서에 가서 고발할까봐 감시한 것 같았다. 

“니는 왜 나왔노?”

“오빠야 한테 미안해서 나왔어예”


진실이 뭔지 알 수 없었다. 이왕 나왔으니 다른데 가서 한 잔 더 하자고 하니 안 된다고 했다. 이유는 가게 비우는 차지를 줘야 한다고 했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2만원이란다. 돈을 주니 가게를 향해 잽싸게 뛰어 간다. 빈 병에 남은 맥주 사건이 떠올라 혹시 안 나오면 어쩌나 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 다른 옷으로 갈아입은 ‘경아’가 뛰어 왔다. 반가웠다. 우리는 남포동 거리를 밤새 걷다가 사무실 앞 여관에 들어갔다. ‘경아’는 다음 날 오전에도 시간이 있으니 같이 놀자고 했다. 차지를 더 줘야하느냐고 물었더니 낮에는 그런 게 없단다. 우린 ‘국도극장’에 함께 영화도 보았다. 하여 난 경아와 함께 부산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헤어지는 날 스무 한 살 경아에게 부두의 이별에 관한 시 한 편을 적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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