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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철 Oct 07. 2024

1) 큰 고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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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큰 고래를 만나다   

  

얼굴이 차가웠다. 비가 오는 건가, 이곳에 비가 올 리가 없는데? 바람이 불어왔다. 현창(舷窓)이 열려 있었나? 침실까지 그 후덥지근함이 들어 올 리가 없는데. 더위로 인해 침실의 현창들은 모두 닫혀있고, 실내는 에어컨이 가동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의 침실이 안쪽이라 현창이 없다. 하지만 수분이 조금씩이긴 하지만 계속해서 뿌려졌다. 나중엔 얼굴이 젖을 정도로. 결국 눈을 뜨게 되었다. 현창은 열려 있다. 내가 열어 놓은 적이 없는데? 현창 바깥에서 푸우푸우 하는 소리가 났다. 혹시나 싶어 밖을 내다보았다. 고래였다. 무슨 고래인지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큰 놈이었다. K808호만큼이나 길었다. 그 엄청난 크기에 또 한 번 놀랐다. 고래가 있을 리 없는데? 이곳에 온지 1년이 넘었지만 이렇게 큰 고래를 본 적이 없다. 돌고래들을 본 적은 있지만, 고래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그는 숨만 쉬고 있을 뿐 떠나질 않는다. 한참동안 넋을 잃고 고래 등의 숨구멍을 보고 있었다. 그때 침실 위 데끼(갑판)에서 선원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보망칼의 등으로 현의 둥근 가드레일을 두드리며 소리 지르는 놈도 있다. 갑판원 억준이다. 그는 약간 말더듬이었지만 늘 말이 많았다. 위에서 내 머리가 보이는지 소리쳤다.

“2항사님 고..고..고래 보이소, 고래!”

그 소리에 놀랐는지 고래가 몸을 뱃전에 부딪쳤다.


누군가 방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잠에서 깨었다. 함께 당직을 서는 3항사 고창준이었다. 

“식사해유! 당직 올라가야줘” 

어제 새벽 그물이 대파(크게 파손)되어 데끼에서 오버 타임을 3시간이나 하고 늦잠 잤더니 당직 시간이 되었음에도 눈이 떠지지 않았던 것이다. 

‘시팔 벌써 당직이야?’ 

혼자 소리를 하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고래는? 그리고 현창은? 이게 뭐지 하면서 슬리퍼에 발을 끼우자말자 사이드 데끼로 나갔다. 교대 선원들이 정수기 앞 긴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고래 어딨냐?” 

나의 물음에 선원들은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트롤윈치 옆 데끼로 나가 봤지만 고래는 보이질 않았다. 햇빛에 구워질 대로 구워진 바다가 보였을 뿐이다.

‘꿈이었구나’

하지만 아직도 꿈을 덜 깬 것인지 멀리 수평선에 시선이 닿자 그곳에 고래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고래는 아니었다. K808호는 예망(그물을 끌고 다니는 것)하느라고 끙끙거리고 있었고 메인와프는 작은 진폭 속에서 떨리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이렇게 얕은 수심에 고래가 있을 리 있나, 더구나 그렇게 큰 고래가’

다시 한 번 수평선을 쳐다보았으나 고래는 보이질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선미를 쳐다보는데 톱 롤러가 조금씩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오만어장의 일상으로 돌아 온 것이다. 수평선은 시선이 빛의 속도로 달려도 좁혀지지 않을 것 같았다. 결코 인간이 닿을 수 없는 초월적 공간인가? 이곳에 온지 겨우 1년 되었지만 수십 년은 족히 지난 것 같았다. 문득 집 생각이 났다. 꿈속의 큰 고래, 트롤어선의 온갖 잡음이 뒤섞이며 접혀진 본래의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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