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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철 Oct 12. 2024

5)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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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도쿄-1     


한큐호텔은 도쿄 도심에 있는 호텔이었다. 몇 층인가는 모르겠는데 꼭대기 층에 커다란 공동목욕탕이 있었다. 많은 투숙객들이 유카타(잠옷)만 입은 채 복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유카타는 옷이라기보다 알몸의 껍데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쉽게 말해 입으나 마나 한 옷처럼 여겨졌다는 말이다. 그건 인간이라는 종이 그만큼 옷에 구속되어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알몸보다 옷을 입은 상태가 더 자연스럽다고 보는 것 말이다.     


작은 캡슐 룸이었다. 특히 작은 화장실! 그때까지 화장실 딸린 집에서 살아 보지 못했기에 신기했다. ‘부산시 남구 우암동 189번지’ 24통 마을 전체가 공동화장실을 사용하였다. 우리 집은 사진관이라 소방도로가에 있었기에 공동화장실이 그래도 가까운 편이었지만, 골목 안에서 살 때는 너무 멀어 똥 아니고는 공동화장실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냥 골목 벽에다가 오줌을 쌌다. 그래서 당시 오줌은 더러운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서움은 어떤가? 화장실은 대체로 어두운 편인데 그건 공간끼리의 차별이기도 하다. 게다가 공동화장실은 더 어둡고, 멀고, 크고, 칸이 여러 개였으며 재래식이었으니 어린 아이들에겐 외딴 곳에 있는 무덤처럼 여겨진 것이다.     

 

더러움이나 무서움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삶의 양태가 만들어 낸 ‘상상물’이다. 그리고 그게 내부화 된 것일 뿐이다. 그런 생각에 이르자 룸 내부의 작은 것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움직이는 상품처럼 연결된다. 화장실을 비롯해 작은 창문, 침대, 전등, 수건과 비누 그리고 칫솔과 치약들은 모두 공장 내부의 정리된 부품처럼 제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또 하나 놀라운 모습은 호텔 창밖 풍경이었는데, 담배를 입에 물고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 여성들이 많다는 것이다. 문득 실습 때 갔었던 ‘오사카 성’이 생각났다. 가벼운 바람이 불었는데 어떤 여성이 담배를 피우며 성(城)의 난간에 기대어 먼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담배연기도 그의 옷이나 머리카락도 모두 바람의 방향을 거스르지 못한 채 날리고 있었다. 초록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던 것 같은데, 하얀 다리와 약간 마른 몸매 그리고 옅은 색 선글라스 그런 것들이 오래된 오사카 성과 오버랩 되었다. 그게 마치 큰 풍경에서 잘려져 나온 또 다른 풍경의 자유처럼 느껴졌다.     


당시만 해도 담배와 여성은 대개 음지라 여겨지는 곳에서 연결되었다. 예전에 남성들은 아무데서나 담배를 피웠다. 가령 할아버지는 초등학교 혹은 더 어린 아이들 옆에서도 담배를 피웠다. ‘도넛 연기’ 같은 걸 보는 게 우리의 재밌는 놀이기도 한 때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담배는 여성의 당당한 기호품은 아니었다. 그러던 게 ‘의료권력’이 커지면서 담배는 ‘독극물’에 가까워졌다. 지금 담배는 실내 뿐 아니라 실외에서도 피우기 힘들다. 하여 공간들의 경계에서만 흡연은 이루어지는데 그렇게 흡연하는 모습들은 변방 어디론 가로 내몰린 야생집단의 습속 같다는 느낌이 든다. 권력과 편견들의 틈 속에 끼여 버린 종들이 마치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애타게 빨아대는 어떤 안간힘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자본주의 체제는 끝없이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면서 부풀어 오른다. 그때 투 트랙이 사용된다. 하나는 외부화이고 또 하나는 내부화다. 필요에 따라 그동안 비정상이라며 외부로 몰아내었던 것들을 아주 조금씩 내부화 시켜 주는 것 말이다. 지금의 여성 흡연이 그렇게 보인다. 더불어 담배는 외부와 내부의 경계에 있는 기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성과 여성, 어른과 아이들, 실내와 실외, 건강과 병 그리고 느긋함과 잠시 그리고 넓음과 좁음의 경계 같은 것들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당시 오사카 성의 풍경도 어떤 경계 속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여성과 담배의 경계에서 시작해서 낡음과 견고함의 경계, 선글라스와 햇빛의 경계, 바람들 간의 경계, 원피스와 알몸 그리고 빛바랜 기억과 지금이라는 시간의 경계 같은 것 말이다. 

     

그런 저런 풍경은 모두 당시 일본 경제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배웠던 잘살고 못사는 것에 대한 이분법이랄까. 그건 누가 심어 준 것일까. 지금의 나도 아니 우리도 겨우 돈을 벌기 위해 이 순간을 지나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 말이다. 우리는 아니 나는 당시 어떤 것들을 ‘따라잡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 그게 생각이든 물질이든. 그렇게 따라가라 가는 길의 끝은 결국 수렁인데도 말이다. 자신 앞에 펼쳐진 사건의 이미지들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따라잡기’에만 급급했던 시절이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끝없는 ‘따라잡기’에만 급급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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