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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아임더 Mar 04. 2021

더듬어 먹은 고깃집

2019년 9월, 타이베이

내 애인에게는 능력 같은 재능이 있다. 바로 대충 맛집을 찾아내는 재능. 맛집을 찾아놓지 않더라도 함께 길을 걷다가 애인이 고른 집은 신기하게 다 맛있었다. 한국에서야 우리가 나고 자란 곳이니 자신만의 빅데이터가 쌓이면 얼마든지 맛집을 찾아낼 수 있지만 해외에서도 그게 통할 줄은 몰랐다.


그런 그가 타이베이에서 고른 맛집은 바로 우리 에어비앤비 옆 건물 1층에 위치한 이자카야-라고 불러야할지 고깃집이라고 불러야할지 애매한 가게. 생긴건 이자카야같이 생겼으나 들어가니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었다.


2019년 대만 여행에서 내가 골랐던 숙소는 중샤오둔화 근처에 있는 에어비앤비였다. 내가 타이베이에서 가장 좋아하게 된 길거리 근처. 나는 숙소를 3일간 그렇게 들락날락하면서도 우리 건물 1층에는 수영복 매장이 있고, 건물 건너편에는 리락쿠마 음식점이 있다는 것 밖에는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애인은 그 외 모든 것을 다 관찰 하고 있었나보다.


한국으로 떠나기 전날 밤, 오늘 저녁은 야시장 음식이 아닌 산책하다 보이는 분위기 좋은데 가서 먹자는 나의 말에 그럼 숙소 입구에 있는 음식점 가고싶어. 라고 단박에 대답하여 거기 음식점이 있었어? 라고 반문하게 했다. 맨날 문닫은 집 아니었나. 하면서 무슨 집이었더라 하는 나에게 담배를 피우기 위해 1층으로 내려오면 항상 그 집에서 맛있는 냄새가 났다며 궁금하다고 나를 유혹했다. 알겠다며 숙소에 짐을 두고 편한 차림으로 내려와 들른 그 가게는



출처 : 구글 지도


이자카야를 표방한 고깃집. 처음 가게 안에 들어갔을 때 가장 앞에 있는 테이블에는 회사에서 친한 사람들끼리 저녁을 먹으러 온 듯 오피스룩의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고기를 굽고 있었고 가장 안쪽 테이블에는 30대 중반의 커플로 보이는 사람 둘이 앉아 도란도란 고기를 굽고 있었다. 오 분위기 나쁘지 않은데 하며  앉은 자리에서 받은 메뉴판은 나를 적잖이 당황시켰다.



번체와 휴먼흘림체 한자였다.

2019년 늦여름, 나는 HSK4급을 독학으로 따서 까막눈은 간신히 면한 상태였다. 하지만 대만은 내가 배운 보통화와는 다르게 번체를 사용하여 가끔씩 글자를 읽음에 있어 버벅거리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냥 번체도 아니고 흘림체라니. 이를 어찌한담. 번체를 휴먼흘림체로 쓴 걸 보자마자 나 이거 못읽어..! 라며 보여주자 그럼 모험을 해 보자며 아무거나 짚어보라고 말했다. 어차피 고기 굽는건 자신 있으니, 일단 시키고 어느 부위인지 유추 해 보자는 흥미로운 제안(!!)

그렇게 우리의 모험은 시작 됐다.






우선 마지막 날이니 소고기를 먹자며 소고기 중 아무거나 이거 맛있게 생긴 글씨야! 라며 글씨가 맛있게 생겼는지 아닌지에 따라 고기를 주문했다. 2인분이라는 말 정도는 가능하기에 2인분을 시키고는 우리의 모험에 두근두근하며 기다렸다.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었다. 그도그럴게 메뉴에 우리가 주문한 음식에 고기가 들어간 정도가 아니라 아예 고기를 구워먹는 곳에서 메뉴판을 제대로 못 읽어서 일단 아무거나 시킨다는게, 보통은 잘 안하는 모험 아닌가. 그 처음 겪어보는 재미에 이상하게 기대가 됐다. 술집이기에 음악을 크게 틀어두어서 음악소리와 함께 설레는 마음인것도, 우리를 제외하곤 모두 현지인이라서 그 이방인으로써 느끼는 달뜸인진 모르겠지만.


그리고 나온 고기를 구워보니 너무 맛있었다. 아마 특수부위로 생각 되는, 잘 못먹어본 부위의 질감이었다. 맛있는 고기엔 술이 있어야지. 하며 읽지도 못하는 술 메뉴를 뒤적거리며 뭘 시킬지 골똘히 고민 하는 나에게 저거 어때? 라며 내 뒤의 전단지를 가리켰다.




메뉴판에서 아무거나 가리키며 주문한 것을 시작으로 술 역시 전단지를 보고 저거 두잔 주세요 라며 대책없이 주문하기 시작했다.


여행하는 모든 순간에 있어 내가 계획한대로 되지 않으면 신경 쓰이고 스트레스 받아하던 나도 그런 막무가내 주문이 즐겁게 느껴졌다면, 같이 있는 사람과의 시간이 즐거워서일까 아니면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시키는 모험이 정말 말그대로 모험이라 즐거웠던걸까. 아마 둘 다였겠지.

어느 쪽인지 고민하지 말고 현재를 즐기자 생각하며 잔을 부딪히며 깔깔 거리고 있는데 이번엔 그 맛있는걸 알아보는 상대의 눈길이 옆 테이블에서 구워먹고 있는 베이비콘에 가서 닿았나보다. 저거 뭐야? 우리도 먹을 수 있을까? 라는 간단 명료한 요청사항에 적당히 알콜이 들어가 유쾌해진 나는 한껏 미소를 띄우고 옆 테이블에게 저거 뭐에요? 뭐라고 부르면 돼요? 라고 물었고 우리가 가게에 들어온 순간부터 우리를 관찰하고 있던 직장인들은 신나서 대신 주문 해주더니 뭐라고 읽는다고 세심히 알려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우리의 다른쪽에 앉은 커플 테이블이 먹는 관자를 보더니 관자도 먹고 싶다는 말에 그 커플에게 저거....라고 하자마자 그 커플 역시 웃으며 관자를 주문 해 주었다.



그 전부터 느꼈지만 대만 사람들은 상당히 친절하다. 그렇게 많이 대만을 갔음에도 한번도 이 사람들에게서 기분나쁘다는 감정을 받은 적이 없을정도로. 친절이 몸에 배어있는 것은 물론이고 누군가를 도와줘야한다는 생각을 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도와주려고 하는 것이 대만인들의 특징이구나 하는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모르는 외국인 둘이 들어와 자신들의 테이블을 구경하며 저건 뭐에요? 하고 물어보는것에도 이렇게 열렬히 답 해줄 일인가. 나였다면 상당히 당황 했을텐데. 그런 기색도 없이 우리를 가게 안의 모든 테이블이 관심 갖고 보고 있다는 건 부담스러우면서도 알콜과 함께라 그런지 상당히 재밌는 경험이었다. 화려한 관심이 우리를 싸악 비춘다는게 이런건가요?



이게 바로 그 관자와 고기



그날 가게에서 먹은 음식이 당연히 맛있어서 기억에 남기도 했지만, 대만인들의 친절로 가득찬 유쾌함 덕분에 중샤오둔화의 이 고깃집은 아마 다음에도  가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흘림체로 써있는 메뉴판을 읽을 수 있게 된 다음에.



**혹시 필요할까 남기는 가게 정보 : 구글 맵으로 이동(클릭)

가격은 전부 다 해서 10만원 정도 했던걸로 기억합니다. 술도 엄청 시켜먹고, 고기나 다른 것들도 잡다하게 많이 먹었는데 10만원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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