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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아임더 Apr 01. 2021

아는 맛이 무섭다는데

2016, 2019 | 대만의 사원에 대해서


나는 무교에 가까운 불교이다. 집은 분명 독실한 불교가 맞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나를 믿기 때문에 무교에 가깝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힘든 일이 생겨 어딘가에 기대고 싶으면 절을 찾게 되니 무교에 가까운 불교가 딱 나에게 어울리는 표현 아닐까.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신앙심이여.


그런 나라서 종교 시설에 들어가는데 거부감도 없다. 뭐, 해외에서 가는 종교시설은 관광지의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예를 들면 유럽 여행 가면 실제 종교와는 상관없이 관광지로서 성당은 많이 들어가 보지 않는가. 그래서인지, 해외에서 방문하는 종교시설은 종교의 목적보다는 관광지로 느껴진다. 물론 우리나라의 종교시설들이 다른 곳엔 없는 분위기를 풍겨서 그런 점도 한몫하지만.


이렇게 다른 나라의 성당은 방문 해보고 싶어지게 생겼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불교 시설은 산속에 있고, 정갈하고 고즈넉한 모습이 연상된 데 비해 태국의 사원은 화려하기 그지없는 것처럼. 인도의 불교 사원은 뭔가 신과 더 가까운 느낌이 드는 것처럼. 대만 역시 대만의 색을 가지고 있다.



우선 시작은 타이베이의 용산사이다. 타이베이의 용산사는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관광지일 것이다. 네이버에 "타이베이 가볼 만한 곳"을 치면 4위에 빛나고 있는 것이 그 증거.



용산사가 오래된 역사를 가졌고, 타이베이에서 가장 오래된 본존불인 관음보살상과 여러 도교 신이 모셔져 있다- 는 설명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까? 누군가에게 설명을 들었다면 모를까, 내 추측에 아마 용산사는 지하철역도 있고, 시면 역에서 마음먹으면 걸어갈 수 있을 만큼 접근성이 나쁘지 않아서인 것과 아무래도 무료로 점괘를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흥미로운 점 아닐까. (는 내 이야기)



소원을 빌고 반달 나뭇조각을 떨어뜨려 소원이 이루어질지 점쳐보고, 나무 막대기를 뽑아 점괘를 맞춰보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해볼 수 있는 경험은 아니기에 흥미가 생겨 '나도 해 봐야지! 왜냐면 조만간 인턴 생활이 시작되니까-' 라는 마음으로 들어갔지만 내가 본 것은 내 예상보다 훨씬 넓은 대만의 모습이었다.



처음 들어가자마자 시선을 빼앗는 것은 부처님상이 아닌 수많은 사람. 매캐한 연기와 함께 기도 올리는 사람들, 그리고 기도 올리는 사람들이 바치는 많은 간식. 기도를 올리고는 자신의 점괘를 점쳐보는 사람들, 그리고 그사이에 심심찮게 보이는 관광객이었다. 관광객도 당연히 많았지만, 현지인도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걸 보면 꽤 영험한 편인가? 싶기도 하고. 현지인들이 정신없이 자신의 염원을 내려놓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나도 그들의 정신없음에 함께 하고 싶어지는 것 이었다.




투명에 가까운 신앙심을 가진 내 눈에서 관광객을 걷어내니 눈에 들어오는 열정적으로 기도 올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네들의 소원이 무엇인지, 이렇게까지 열성을 보이는 기도의 주체는 무엇이며 간절함의 끝은 어디일까를 문득 생각해 본다. 나는 이 용산사에 이 소원을 두고 가고 싶어 왔는데, 당신은 어떤 사연인가요. 걱정인가요 소원인가요.


나는 당연히 그들이 두고 가는 얘기를 들을 순 없을 테지만, 어떤 것을 빌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들의 모든 소원이 이뤄지길. 이렇게 열정을 보이니 좋은 답이 있을 겁니다.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이상하게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개인적으로 전 종교시설 공통으로 들어갈 때마다 느껴지는 한 가지는 이상하게 성스러운 기분이 들어 마음이 풍족해진다. 그래서인지 남의 종교시설에 들어가 있으면 그렇게 잠이 잘 오는 것 같다.





아무래도 절이라서 그런가. 개방되어있는 용산사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의 공기 지분 대부분을 차지하는 향의 연기는 매우 강하다. 여러 사람이 저마다의 염원을 꽂아두고 가서 그렇기도 하고, 한국에서 쓰는 향보다 훨씬 긴 길이라서 오래 타는 것도 한몫하는 것 같다. 매캐한 연기와 향 때문에 연신 손으로 휘젓게 됨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건, 모두의 마음이 닿은 행동에 악의가 없어서겠지.


그러니 용산사에 들어오면 점괘만 점쳐보고 돌아가는 것보다는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아무래도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가장 큰 공간 앞에 있는 곳이 모두가 경험하고 싶어 들어온 점괘를 점치는 곳이니, 목적을 달성했다 싶다면 지체 없이 떠날 수 있지만 정말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사원의 뒤쪽도 구경해 본다면 대만 사람들의 다른 삶의 모습을 한켠 구경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던 한국의 사원과는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두 번째는 가오슝의 용호탑.


용호탑은 연지 담이라는 호수 인근에 심심찮게 들어서 있는 도교 사원 중 한 명소로써 용의 머리로 들어가 호랑이의 입으로 나오면 액운을 복으로 바꾼다는 곳으로, 많은 한국인이 방문했는지 한국어로 안내 문구까지 적혀있다.


날 당황시켰던 안내문


가오슝의 관광지 중에선 대중교통으로 가기엔 조금 어렵지만, C-bike와 구글맵이 있다면 그 어디든 갈 수 있다. 연지담 인근에 C-bike 보관소가 있으니 확실히 자전거를 타고 가면 편하다. 당시 내가 가오슝에 있을 때 얼마 전의 한국 처럼 미세먼지가 상당해서 눈이 아팠었는데, 연지담은 넓은 연못이라 그런지 주변 풍광이 탁 트여서 미세먼지 때문에 눈이 아프다는 것도 잊고 모든 사물이 다 잘 보인다. 라는 생각이 들기 충분했다. 그리고 그 연지담 주변을 둘러싸고 탑, 사원, 무언가의 상이 감싸고 있어서 놀이동산 같기도, 혹은 사람들의 소원이 모여 만들어진 연못 같아 보이기도 했다.




용호탑 안은 의외로 볼 건 없다. 높이 올라갈 수 있어서 연지담 인근의 경치를 보기엔 안성맞춤이라는 것? 타이베이는 수도라 그런지 서울처럼 높은 건물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지만, 가오슝은 그에 비해 덜한 높이를 가진 건물이 많아 이렇게 높이 올라올 수 있는 곳이 많이 없기에 괜히 새롭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의외로 내부엔 볼 것 없던 용호탑을 나오니 정면에 이름 모를 사원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계단 위에 있어서 더운 날씨에 계단을 오르기 싫다는 마음과 드나드는 사람들이 전부 현지인이라는 점 때문에 방문하지 않았다. 타이베이의 용산사는 워낙 많은 관광객이 드나드는 곳이다 보니 들어가는데 거리낌이 없었지만, 그곳은 누가 봐도 현지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만이 드나들고 있어 괜히 들어가지 못하고 쭈뼛거리게 되었다. 뭔가 외국인이라 그런지 더더욱 이 종교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모르면 들어가기 꺼려진달까. 그것 역시 신기한 느낌이었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믿음을 가진 내가, 어떻게 보면 얕게나마 가지고 있는 믿음으로 들어가기 망설여진다니. 그 많은 성당과 교회를 들어갔음에도 이상하게 내키지 않는 것 역시 신선했다.


존재감이 위압적인 사원


아마도, 내가 아는 것은 맞지만 내게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라 그런 생각이 든 게 가장 크겠지.


이 용호탑과 용호탑 건너편 외에 대만에서 또 새로움을 느낀 것은 연지담 가장 안쪽에 위치한 관우상. 중화권 국가에서 관운장을 사랑하는 마음은 익히 알고 있지만 이렇게 제일 안쪽에 있는데도 가장 눈에 띄게 해놓을 정도라니. 괜히 그 마음의 크기가 궁금해져서 관우상이 있는 연못 안쪽까지 걸어 들어갔다.

 중화권 국가에서 관운장을 사랑하는 마음은 익히 알고 있지만 이렇게 제일 안쪽에 있는데도 가장 눈에 띄게 해놓을 정도라니. 괜히 그 마음의 크기가 궁금해져서 관우상이 있는 연못 안쪽까지 걸어 들어갔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용호탑과 그 앞의 사원까지는 구경하지만, 관우 상까지는 구경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용호탑을 나와 관우 상 방향으로 걸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는 모두 사라지고 주택가가 나타났기 때문. 아예 주택가냐- 라고 하면 인근 주민을 위한 가게들이 뜨문뜨문 보였기에 아예 주택가는 아니지만 불과 5분 전만 하더라도 관광객을 끌어당기기 위해 큰 음악 소리와 휘황찬란한 색을 가진 장난감 등으로 무장된 가게들이 전부 사라졌기 때문.


그래서 남은건 조용한 음료 가게의 동과차


아마 내가 처음 대만에 왔었을 때 이런 주택가를 거닐었다면 필시 주변을 한껏 경계하며 경치나 그 길의 느낌보다는 나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새 대만에 몇 번 와 봤다고 느긋하게 엇, 여기는 초등학교가 있네. 저 가게는 뭘 파는 걸까 따위를 궁금해할 수 있게 성장 (?) 한 것이다.


이렇게 앉아서 노닥 거릴 기운도 있고


대만의 매력을 알기 전에는 가급적 안 가본 나라를 가며 그 나라가 줄 수 있는 순도 100%의 이질감을 즐겼었던 것 같다. 내가 여기까지 항공권이며 숙박비 등을 바리바리 내면서 왔으니 많은 걸 봐야지! 라는 생각이 바닥에 깔려있고, 여행 계획을 꼼꼼하게 짜야지. 내가 또 언제 여길 오겠어. 라는 마음이 생각의 뚜껑을 닫아버리는 그런 순도 100%의 생경함이 여행의 재미였다면 여러 번 대만을 방문하면서 드는 마음은 아는 맛이 매번 신선하다는 것이다.



모 연예인이 음식 프로그램에 나와 내가 아는 맛이 가장 맛있다고 하는데 그게 딱 내가 대만에 가진 감상이다.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점이 많지만 그 점이 나를 다시 대만에 끌어당기는 원동력으로 다시금 내가 비행기 티켓을 끊게 만드는 것이다.


관우 상 앞에 서서 분명 입구에서부터 연지담 연못에 떠 있는 저 관우 상까지 거리가 상당한 게 한 눈에도 보이는데, 입구에서부터 관우 상의 거대함에 안에 들어갈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하다 해가 머리를 찢어놓을 듯 강하게 내리쬐기에 발을 돌렸다. 발을 돌리면서도 매번 대만에서 새로운 점을 발견한다는 게 흥미로웠다. 아는 맛은 아는 맛인데, 가끔 새로운 맛을 볼 수 있는 나라라고나 할까. 오늘도 소소한 부분에서 대만에 대한 한 가지 이미지가 더 추가됐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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