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018년, 그리고 2019년
타이베이에가는 사람들이 많이들 갈 것이라고 생각되는 단수이에는 볼 거리가 많다. 단수이 자체도 대만 사람들이 데이트나 여가시간을 보내기 위해 자주 오는 장소이다. 거기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촬영지인 담강중학교 역시 단수이에 위치 해 있다. 담강중학교 옆에는 홍마오청과 진리대학도 있어 사진찍기도 좋다지만 내가 단수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워런마터우 때문이다.
나는 보통 단수이에서 워런마터우까지 버스를 타고 가 본적이 없지만 사람들이 많이 선택하는 방법으로는 단수이역에서 紅26번을 타면 워런마터우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 워런마터우 정류장에 내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몰을 감상하는 스타벅스가 아닌 워런마터우 항구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등대 근처를 나는 추천한다. 스타벅스는 워런마터우에 딸려있는 리조트 (?)의 가장 초입에 위치해 있고, 워런마터우의 항구는 거기서부터 시작하여 저 멀리 끝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강조하는 이유는 그 워런마터우에서 보는 일몰이 정말 눈을 뗄 수 없게 예쁘다.
일몰이라는게 매일매일 지는거라는건 알지만 왠지 오늘은 괜히 나만을 위한 일몰 같이 느껴지는 그런 매력이 있다고나 할까. 아무래도 워런마터우는 항구라 그런지 주변에 큰 건물도 없고, 위치한 곳이 나름 대만의 가장 끝자락 중 하나다. 그래서인지 거리낄 것 없는 큰 폭의 하늘에 노을이 거침없이 펼쳐지는 것은 너무 예뻐서 대만에 갈 때마다 보러 가게 만든다.
아마 내가 세번이나 갔음에도 한번 밖에 못 봐서 그런 것 같긴 하지만.
나는 날씨 운이 상당히 따르는 편이다. 그런 내가 세번 중 한번 밖에 보지 못했다는 것은 꽤나 공을 들였음에도 원하는 것을 못 이뤄낸 것에 가깝다. 이렇게 말하니 뭐 엄청난 여행지로 느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게 단수이에 일몰을 보러 갈 때는 2016년 딱 한번을 빼면 구름이 너무 많아 해가 지는게 보이지 않거나 (2018년) 비가 오거나 (2019년)하여 일몰을 감상하는 것을 막았다. 한번에 뇌리에 박힐 만큼 예쁜 일몰을 보여줘놓고. 책임은 지지 않는 것이다. 마치 사기를 당한 것 마냥 워런마터우의 하늘을 멱살 잡고싶어지는 그런 기분이었다.
2016년, 그 워런마터우의 일몰을 구경 했을 때 나는 워런마터우까지 자전거를 타고 왔었다. 단수이역 1번 출구에서 내려 주차장 쪽으로 쭉 올라가면 자전거 대여소가 두어개 정도 있었었다. 이 곳에서 자전거를 빌려서 워런마터우까지 다녀왔다. 남의 나라에서 처음으로 대중교통이 아닌 것을 타고 멀리까지 가게 된 것이었다. 물론 약 5km정도의 거리라서 멀다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멀지 않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거리였지만.
남의 나라인 탓에 구글맵을 켜고 가고 있었지만 나름 운전 중인지라 구글맵을 연신 들여다 볼 순 없었고, 단수이 역시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 그런지 곳곳에 갈림길이 나타나니 그때마다 멈춰서 보기가 얼마나 불편했는지. 그 때 내가 선택한 것은 紅26번 버스를 타고 따라가는 것 이었다. 버스를 따라가다 보니 오히려 더 돌아간 느낌이지만, 그 덕분에 단수이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잘 구경 한 것 같다. 아 여기는 슈퍼가 있네, 여기는 자동차 수리소가 있네, 여기는 미용실이 있네. 이 근방이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 상가인가보다. 혹은 여긴 아직 공사중인데 뭐가 들어올까, 다음에 오면 공사가 끝나 있겠지? 와 같은 것을 구경하며 지나갔다.
타이베이가 아닌 신베이라서 그런지 서울 처럼 새것 느낌이 나는 건물이나 가게들이 아닌 사람들이 오랫동안 이 지역에 머물다 보니 생기는 사람 흔적과 사람 사는 동네라는 느낌이 물씬 나는 것이 좋았다.
사실 지금에서야 이렇게 느긋하게 적고 있지만 2016년 자전거를 타고 워런마터우를 가는 길은 무서웠었다. 당시엔 내가 처음 하는 자유 해외여행이었고, 남들처럼 그냥 버스를 타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자전거를 탔지 등등의 후회를 하며 페달을 밟았었다. 그렇게 버스를 열심히 따라가다가 버스가 속도를 내다가 갈림길 에선 갑자기 사라지면 어디로 간거지, 여기서 어떻게 가야하는거지 하며 황망하게 잠시 멍때리기도 한참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반쯤 울며 도착한 워런마터우는 너무 예뻐서 일단 그 힘듦이 용서가 됐다. 이렇게 예쁘다면 이정도는 노력해서 올 만 하지
처음엔 나도 많은 한국인들이 가서 앉아있던 스타벅스에 들어가 음료를 시키고는 좋은 자리 없을까를 열심히 눈을 굴리며 자리를 살폈다. 창가자리는 이미 다 자리가 차 있어서 대충 창가 근처 다른 자리에 앉아 음료를 마시며 창 밖을 내다 보고 있는데 갑자기 의심이 들었다. 여기가 워런마터우의 끝이 아닌데 왜 다들 여기 앉아있는거지. 더 가도 되는거 아닌가. 그래서 음료를 집어들고 마저 자전거를 밟아서 항구의 끝자락에 갔더니 현지인 몇 명이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여기까지 온 한국인이 잘 없었겠지. 그들이 일몰을 구경하며 낚시를 할 때 옆에 앉아 해가 지는 것을 같이 바라봤다.
아쉽지만 일몰을 볼 때까지는 별 감상이 없었다. 해가 지는 것은 많이 봤었었기 때문. 하지만 내가 진짜 감탄한 것은 워런마터우를 나오며 뒤돌아본 풍경이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왔고, 내가 워런마터우까지 왔던 이 길은 내가 처음 오는 길이고 우리나라도 아니기에 길을 잃거나 했을 때 도움을 구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 해가 마저 다 지기 전에 어느정도는 출발해야할 것 같았다. 오면서 본 도로에 가로등이 썩 밝게 도로를 비출 것 같진 않았기 때문에. 자리를 정리하고 자전거를 몰며 워런마터우 주차장을 빠져나오던 도중, 누군가가 부른듯 갑자기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도 워런마터우에 꼭 가서 이 풍경을 보고싶다 라고 생각한 그 일몰을 만났다.
일몰이 너무 크고 내 눈 바로 앞에서 이글이글 거리고 있는 풍경이 무섭도록 예뻤다. 해 지는게 이렇게 가까워 보이고 예쁘게 보일 일인가. 워런마터우에서 이어지는 바다가 넓어 일몰이 바닷물에 비치며 워런마터우의 모든 것이 진한 주황빛으로 온통 물들었다. 그 주홍빛이 온 세상을 감싸자 당장 내 눈 앞에서 해가 지는 것 같다는 착각도 들고 너무 제 눈앞에 계신거 아니에요 이렇게 지는 해가 이글이글 거리며 타오르듯이 질 일인가요. 와, 진짜 예쁘다 따위의 감상이 마구 머릿속에 튀어올랐다.
그리고 나는 이 풍경에 반해서 다음에도 대만에 오게 되면 꼭 이 워런마터우에서 일몰을 봐야겠다. 라고 다짐 하게 됐다. 너무하게도 아직 워런마터우에 갈 때마다 일몰을 깔끔하게 본 적이 없지만.
다음번엔 볼 수 있겠지. 코로나가 끝나고 난 다음에 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