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아이돌이 나오는 연말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의식은 얘기를 꺼낼 타이밍을 잡는 것에 묶여있다. 입을뗄 생각에 마음이 답답해 집안을 서성이기도 하고, 혼자 빨래도개고, 괜한 옷방 청소를 하고, 세수도 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혼잣말로 조용히 이렇게 저렇게 연습해 본다.
'얘들아, 엄마가 할 말이 있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두근거리고 속이 울렁거린다. 오늘 먹은 모든 음식이 내려가지 않은 채 가슴이 콱 막혔다.시간이 늦었는데 내일 얘기할까? 아니지, 내일이라고 입이 가벼워질 리 없지. 꽤 오래 고민하고 골라놓은 날인데 오늘을 놓치면 언제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소화제를 먹고 숨도 한번 크게내쉬었다.
방에 있는 작은 아이를, 거실 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있는 큰 아이를 불렀다.
"엄마가... 음~~~ 좀 아파... 많이. 유방암. 1월 12일에 수술"
놀란 아이들의 눈이 울컥 붉어지는 것이 선명하게 내 눈에 들어온다. 근데내 새끼들은 참 대단하다.
금세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상황을 묻고는 초기에 발견한 게 얼마나 다행이냐며 괜찮을 거라고 말한다.
같이 좌절하는 건 위로가 되지 못한다는 걸 이제 겨우 대학 1학년과 아직 미성년자인 내 아이들은 어떻게 알았을까? 아직 스스로에 대한 애도를 마치지 못한 내게 아이들의 의연함이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
무너지지 않겠다고 결심한 나보다 훨씬 강한 내면을 갖고 있는 거 같아서 명치에 걸렸던 끈적한 덩어리가 훅 내려가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