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도(愛道)] - 2023년 2월 6일~2월 20일
엄마를 닮아 우리 자매들은 임신과 출산을 비교적 쉽게 치렀다. 나도 2002년생인 큰 아이를 낳고 첫 미역국을 먹으며 이보다 더한 고통도 있을 거 같은 생각이 들었었다. 20년 넘게 잊고 있던 생각이었는데 항암을 시작하자마자 정말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밥맛이 조금 없고 입안이 살짝 해지는 거 같아 급히 입안 연고를 바르고 소금물로 여러 번 헹구기를 반복했더니 며칠 만에 가라앉았다.
체기가 있는 듯하고 대장 운동이 원활하지 않지만 울렁거림이나 구토는 없어 밥을 먹는 데는 지장이 없다.
타이레놀 1알로 해결되던 근육통은 2알, 3알을 먹어도 효과가 없어 마이폴이라는 마약성 진통제를 먹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두피가 미친 듯이 가렵고, 손끝 피부도 가렵고 오돌토돌 두드러기가 올라온다. 피부과약을 쓰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심하다.
하루 이틀 지나니 다리부터 힘이 떨어지고 기운이 없으며 입이 너무 써서 밥맛이 없다.
주사 맞은 지 열흘정도 지나면서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두피가 가려웠던 게 머리카락이 빠지려고 그랬던 모양이다. 무서울 정도로 빠지더니 급기야 지난주 아침, 감은 머리가 엉겨 붙어 덩어리가 되는 바람에 그냥 숭덩 잘라버렸다. 주사 맞고 17일 만이었다.
골룸처럼 엉성해진 머리가 된 내가 거울에 비친다. 마음이. 발바닥까지. 떨어진다.
순간 출근을 망설였지만 시간을 확인함과 동시에 나의 좌절이 막힌다. 28년을 출근했던 관성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머리통을 얼른 말리고 가발을 썼다. 이걸 대비해서 미리 사 두지 않았더냐.
머리를 밀고 가발을 쓰게 되면서는 대인기피증이 생겼다.
이제는 거울을 볼 때마다 내가 누구인지 자꾸 알려준다. 한 번쯤 잊고 지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 외형적 변화가 자꾸만 마음을 술렁이게 한다. 전혀 관계없는 어떤 순간에도 소환된다.
생활의 제약도 따라온다. 해도 되는지 안되는지를 여러 번 생각해야 하고, 소화가 안되어 내과에 가서도, 손 끝 피부가 가려워 피부과에 가서도, 입 안이 해져 바르는 연고와 두피가 가려워 니조랄을 사러 간 약국에서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항상 말해야 한다. 이 병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어떤 일이 일어나도 좀 태연할 수는 있다. 내가 나를 굳이 강하게 만든다. 쉬지 못하고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게 나를 무너뜨리지 않도록 해준다. 좌절이 티 나지 않게 나를 컨트롤하고, 아픈 사람처럼 보이기 싫어 외모를 신경 써본다. 스트레스와 평온함이, 이 공간이 나를 옥죄고 있음과 그래서 정신 팔 다른 곳이 있다는 사실이 공존한다. 찰나의 순간에 나를 끌어내리는 이벤트를 추스를 시간이 너무 필요하지만, 사무실의 내 자리에서는 그럴 여유가 없음이 또 다행이다.
그렇게 3주를 보내면서 하루하루를 곱씹었더니 3년을 지나고 있는 듯이 느리다.
기다리는 건 언제나 천천히 온다. 특히 불행한 결말임을 아는 경우에는 또렷한 형상으로 내게 닿을 때까지 매 순간 좌절하게 한다.
그래도 이제, 이틀 뒤면 2차 항암 주사날이다. 지난주부터 컨디션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다. 3주 간격으로 항암을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첫 번째날처럼 큰 탈없이 잘할 수 있기를...
사실 이날은 비교적 친밀하게 지내던 이 모모에게 너무나 큰 실망을 한 날이다.
내가 감추고 싶은 걸 굳이 드러내는 통에 너무나 불편하고 서운하다. 관계를 정리해야 겠다고 생각했었다.
한참이 흘러 동굴에서 빠져나온 지금은, 그렇게 크게 실망할 일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애초에 서운할 사이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아프게 된 즈음에 내가 나를 속이고 있던 내 감정이 지금은 정확하게 보인다.
이런 모든 울렁거림이 나를 아프게 했다. 나와 삶의 태도가 달라도 이 모모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
와~~~ 나 참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