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기운이 1차 때보다 이틀 일찍 시작되었고 근육통이 심하다. 밥 맛이 없고 배변이 힘들어 배도 아프다.
갑자기 더웠다가 땀이 식으면서 추워지는 증상은 더 자주 더 심하게 반복되고, 입안이 너무 쓰다.
몸은 천근만근 무거워 다리를 들기 어려울 지경이고, 자리에 계속 앉아 있기 힘들어 점심시간에는 차에 가서 한숨 자고 와야 오후를 버틸 수 있다.
두피는 미칠 듯이 가렵고, 2차 항암 후 며칠 뒤 뒤통수에 올라오기 시작했던 뾰루지는 꽤 크게 곪아 결국은 응급실에 가야 했고, 일주일 넘게 병원에 다니며 어마어마한 고름을 짜냈다.
머리와 목의 경계부터 어깨까지의 통증은 글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심하고 몸이 버티질 못 해 하루 병가를 내야 했다.
'언니처럼, 대학생활을 할 수는 없을 거 같아. 그냥 아무것도 안 하면 안 되는 건가?'
고등학교 1학년말에 학교를 자퇴한 작은 아이가 얼마 전 제 나이보다 1년 일찍 대학생이 되어 세상 행복해했는데 며칠 전부터 우울해 보이더니 고민을 툭 던진다.
동아리 활동 등 수업 이외의 활동이 의무처럼 느껴져 무언가에 갇히는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작은 아이는 초중고 모두를 꽉 채워 다닌 적이 없다. 초등 5학년 2학기에 미국에 가 1년을 보낸 후 초등 6학년 2학기로 복학했고, 중3 때는 코로나로 거의 학교를 가지 않았으며, 고등학교는 1년을 채 다니지 못하고 자퇴를 했다. 몸도 정신도 자유로운 아이였다. 그렇게 바라던 대학 합격이지만 소속을 갖게 된다는 게 속박당하는 부담으로 온 모양이다.
그래, 인생이 그렇지. 어떤 것이든 부작용이 있는 법이지. 이렇게 좋은 일에도 이렇게나 어이없는 부작용이 따라올 수도 있는 거였다.
아픈 엄마에게도 전과 다르지 않게 내게 그런 어려운 얘기를 해주며 나를 필요로 해 주는 내 아이가 참 고맙다. 2차 항암으로 내가 내 몸과 사투를 벌이는 와중에 아이의 고민에 잠시 정신을 팔아 세상 불행한 내 상황을 잊어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동안 안 했던 공부만 하라고, 그것도 싫으면 그냥 책가방 들고 왔다 갔다만 해도 괜찮다고, 안심시켜 본다. 나하고의 대화가 아이의 마음을 고요하게 해 주고 평온하지만 무기력하지는 않은 말캉말캉한 상태로 만들어 주길 바란다.
작은 아이는 결국 제가 하고 싶을 걸 금방 찾아낼 것이다. 대학생이라는 소속감도 즐기고 될 것이고 기상천외한 상상력으로 좋은 글을 실컷 쓰게 될 것이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2차 항암은 1차보다 부작용이 심했다. 그나마 시계가 빨리 돌아 3주가 아니라 2주 반 정도 겪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