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그녀가 나에게 했던 말이다. 나와 그녀는 풋풋했던 20살, 대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늘집에만 틀어 박혀 있거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꺼리는 사회부적응자인 나와는 달리 내가 기억하는 그녀는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그녀는 처음 만난 이후 10년이넘도록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물론 학교 내에서 그녀를 자주 보지는 못했다. 일단 내가 학교를 거의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고, 또 밥먹듯이 휴학을 반복하다가 결국 동기들이 모두 졸업을 할 즈음에서야 가까스로 복학을 했기 때문이다.
인생의 많은 사람들이 벌이는 흔하디 흔한 실수 중에 하나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제때에 잘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삶 속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은 무척 보편적이고 반복적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물론 당시에 그녀가 나의 삶 속에서 얼마나 한 가치의 사람인지, 내 인생 전반을 걸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잘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그녀와 있는 것이 무척 편했다. 대부분의 사람을 만날 때 늘 딱딱하게 긴장되어 있어 혼자가 편한 평소의 내가 '편하다'라고 느낄 수 있는 상대로 그녀가 유일했다는 점에서 그것은 나에게 이미 꽤나 특별한 일이었다.
우선 우리는 취향이 비슷했다. 좋아하는 상대가 생기면 그 사람의 취향에 최대한 맞춘다고 하지만, 우리는 어느 한쪽이 상대를 좋아하여 맞추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 정말로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비슷한 취향은 서로가 우연히 타고나는 것일 수도 있고 같은 결핍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꽤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당시에 나에게는 완벽해 보이던 그녀가 가졌었던 결핍은 생각보다 무척 깊고 날카로운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가진 결핍은 (적어도 제삼자의 눈에서 지켜볼 수 있는 범위에서는)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녀 스스로가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쉽게 나눌 수 있을 만큼 어쩌면 나를 의지했거나 또는 강인해 보이는 측면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그녀는 나와 같은 것을 나눌 수 있고, 또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던 셈이다.
그녀와는 같은 학교, 같은 과였지만 우연히 ' 죽음과 철학 '이라는 교양수업을 들으면서 가까워지게 되었다. 복학을 하고 얼마 뒤, 나는 졸업을 위해 지금까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던 교양과목을 반드시 이수해야 했다.그런데 문득 ' 죽음과 철학 '이라는 기묘한 강좌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내심 제목부터 지루해보이는 강좌는 어차피 비인기 강좌일테니 내가 아는 사람들이 없을 거란 기대도 들었다.
그런데 늘 사람들속에 파묻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그녀가 혼자 창가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내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녀는 적어도 이 강좌에 누가 들어오는지 전혀 흥미가 없다는 듯이 턱을 괴고 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그녀 바로 뒤에 앉았다. 성성한 백발을 한 6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교수님이 아프리카에서 살고 있는 거대한 말벌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살고 있는 그 벌은 사람이 자고 있을때만 다가온다. 말벌에 쏘이면 사람은 그 즉시 죽는다는 것이다. 백발의 교수는 아들과 함께 몇 번이나 아프리카를 간 적이 있다. 아프리카에는 이런 말벌의 위험 뿐만 아니라, 말라리아 등 풍토병들이 많아 죽음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물만 먹어도 죽을 수 있는 곳, 그런 환경을 자네들은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뭐 그런 류의 이야기였다.
생각보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는 군. 나는 그녀의 뒷 자리에 앉아 생각했다. 그녀의 길고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가끔 바라보면서.
그녀는 백발의 교수의 이야기에는 전혀 흥미가 없는지 2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노트에다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적고 있었다. 보통은 교수를 몇 번 쳐다보는 척이라도 할텐데 그런 것이 전혀 없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만큼 그녀는 몰입적이었다. 백발의 교수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어떤 학생이 듣는지는 크게 관심이 없는 듯 했다. 그들은 같은 공간의 공기로 숨을 쉬고 있을 뿐 전혀 다른 차원의 곳으로 들어가 있는 듯 했다.
아프리카 말벌과 침에 쏘이면 일어날 수 있는 아나팔락시스와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고 수업 종료벨이 울리자,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에 노트와 필기구를 넣고 있었다. 그런데 앞 자리에 앉아 있던 그녀가 어느 순간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 안녕? '
' 아, 안녕. '
나는 무척 당황했다. 그녀가 나를 기억할 가능성은 내 머릿속에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며 내 눈을 빤히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 너 - 하준이지? 너가 이런 강의를 듣다니. 나 말고도 이 강의를 선택하는 우리과 사람은 없을 줄 알았는데. '
그리고 그녀는 미소 지으며 나에게 학관에서 같이 점심을 먹자고 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햇살처럼 눈부신 미소였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당연히 승낙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천천히 앞서 나갔다. 그녀는 늘 느릿느릿하게 걸었다. 훗날 생각해 보면 그녀의 그 느릿한 걸음은 어떤 음악을 연상되게 한다. 아마 그녀와 자주 들었던 바흐의 오케스트라나 슈만의 여유로운 피아노 음률같이 서정적이다.
학관에는 사람들이 꽤 많아 우리는 학교 앞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그곳은 낮에는 볶음밥과 돈가스와 같이 간단한 점심 메뉴를 팔고 저녁에는 맥주나 칵테일을 파는 주점으로 꽤 많은 학생들이 단골처럼 드나들던 가게였다. 그녀는 김치볶음밥을 시켰다. 나는 김치볶음밥을 제일 좋아해.라고 말하며.
점심을 먹는 내내 나는 주위를 의식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전혀 주위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나를 바라보면서 자신이 왜 ' 죽음으로의 철학 ' 강의를 수강했는지 설명했다.
' 말하자면, 그 강의는 제목부터가 너무 음울한 느낌이 들어서 아무도 안들을 것 같이 느껴졌단 말이야. '
그녀는 말했다.
' 하지만 교수의 말대로 사실 죽음이란 그야말로 도처에 있긴 하지.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이 언제, 어느 때 갑자기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마치 삶이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군단 말이야. '
나는 그녀에게 수업 시간 내내 무엇을 그렇게 쓰고 있느냐고 물었다.
' 아 ㅡ , 시를 좀 쓰고 있었어. '
' 시? '
' 응, 그런데 쓰고 있다 보니 그 시가 끝이 없이 날아올라서 멈출 수가 없었어.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시였지. '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는 또다시 근사하게 미소 지었다.
우리는 그 후 수업이 끝나면 함께 종로의 '카페 뎀셀브즈'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함께 저예산 독립영화를 보러 다녔다. 가끔 학교 앞의 펍에서 맥주를 마셨으며 늦은 시간까지 산책을 다녔다.
그녀는 수업에는 큰 흥미가 없었고 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해서, 주로 나는 들어주는 사람의 역할을 담당했다. 그녀의 이야기들은 어딘가 다른 세계에 있는 것처럼 일반적이지 않고 재미가 있었다. 나는 그녀와 가까워지는 것이 좋았고 서로에게 스며드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그녀와의 관계를 규정짓기 어려웠다. 우리의 만남은 주로 그녀가 나를 '만나고 싶다'라고 연락을 하면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 시점부터 그녀를 사랑한다거나 하는 연애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지만(오히려 당시의 나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측면에서의 그녀를 존경하는 쪽에 가까웠다.), 종종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나는 걷잡을 수 없이 외로워졌다.
아마, 그녀의 이야기 속에 내가 등장하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르겠고 ㅡ
어쩌면 나는 그 손을 맞잡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큰 용기가 필요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낮게 드리워진 회색의 하늘처럼 그런 나 스스로도 내가 무엇을 선택해야 나의 삶이 좀 더 명확해질지 그때는 잘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