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02. '머루'에게 다시 중력의 관점에 대해 설명해 주기.
나는 한 달에 한 번
서점이나
중고서점을 가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책 냄새도 너무 좋고.
이상하게 서점에 오면
서점 밖에서의 나의 삶이
가끔은 엉망이고
진저리가 날 때도 있고,
행복해서 미치겠을 때도 있지만
그 모든 감정의 도가니 속에서
잠깐 휴식을 찾고
방향성을 찾게 해주는
일종에 나에게
'마법사들이 쉬어가는 오아시스'와 같은 느낌이랄까.
오랜만에 서점에 가서
책을 안 사려고 했지만...
2024. 08. 08
신이시여 또, 책을 사버리고 말았습니다....
사고 싶은 책 몇 권이
내 눈에 자꾸 들어와서
결국 카드를 꺼냈다.
이번 글에선 그렇게 내 눈에 꼭 들어온 책 중 하나인
'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라는 책을 통해
나를 생각에 잠기게 한 몇 가지 구절들을 나열해 보겠다.
'배리 배리시'라는 물리학자를 인터뷰하는 내용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부연 설명)
배리 클라크 배리시는 미국의 물리학자이다. 2017년에 LIGO를 통한 중력파가 존재한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입증한 공로로 라이너 바이스, 킵 손과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LIGO =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영어: 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Wave Observatory, LIGO)는 우주 중력파를 검출하고 중력파 관측을 천문학적 도구로 개발하기 위해 설계된 대규모 물리학 실험 및 관측소이다.
(출처: '배리 배리시' 위키백과, '라이고' 위키백과/ 참고문헌: '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
그의 대답 중 이 구절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난 늘 라이고가 하늘을 보는 새로운 방식을 의미한다고 생각했어요.
광자, 그러니까 빛 대신에 중력을 써서 하늘을 보는 거예요.
그 말은 새로운 종류의 천문학으로 하늘을 살펴볼 수 있다는 뜻이었죠.
중력파는 흡수되지 않으니까
초기 우주에서 오는 중력파를 직접 관찰할 수 있다면
우주가 생긴 지 수십만 년 후가 아니라
우주의 첫 순간을 돌아볼 수 있단 뜻이거든요.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이었어요.
그런 가능성에 무척 끌렸고 낭만을 느꼈어요.
최근에 '중력'과 '시간'에 대해 유독 곱씹어보고 있다.
(관련해서 생각해, 창작한 짧은 이야기가 고양이를 위한 이야기 1부 '머루 아로와 한 여름밤의 꿈'에 포함되어 있다.)
제목: 고양이에게 중력을 덜어준 어느 집사의 이야기.
https://brunch.co.kr/@dbwldn0312/76
이 글을 보면서 관점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새로운 발견과 깨달음을 이렇게 얻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광자는 부딪혀서 튕겨나가
우리의 눈에 어떤 이미지가 보이게 해 준다.
반면에 중력은
우리와 지구 그리고 하늘 그리고 서로에게
끌림의 힘에 대해 알려주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어떤 이미지를 보고 어떤 답을 찾아야 하고
때로는 어떤 문제를 봤을 때,
그 부분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고
볼 수 있게 도와주는 빛에서도 답을 찾을 수 없다면
지금 내가 보는 방식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다른 성질, 혹은 반대의 관점으로
그 문제, 대상, 상대를 바라보면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다는 얘기로
나에게는 깊게 와닿았다.
나는 물리 중에 '중력'을 진짜 좋아한다.
빛도 좋아하긴 하지만
'중력'이 주는 매력이
뭔가 정말 과학의 근본이 되는
알아도 알 수 없는 존재이자 힘이지만
그 힘을 배움으로써
인생과 인간관계
이를 이끄는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를 항상 주게 되는 거 같다.
근데, 여기서 배리 배리시 선생님께서
위대한 발견을 하게 된 데에는
그 생각에서만 그친 게 아니라
말도 안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뭐, 어때?
실험인데 한 번 땡기는 대로 해보는 거지 뭐.'
라는 마음으로 실행을 하셨다는 게 중요한 부분인 거 같다.
관점을 다르게 보니
'중력파'가
배리 배리시 선생님의 시선을
또 다른 중력으로 끌어당긴 것일까...
'중력'은 언제든 생각해 봐도 너무 재미있다.
카페에서 돌아오고
마스크팩을 하며 다시 책을 마저 읽어보고 있었다.
시간은 새벽 00:12 분 정도였다.
역시나 늘 그랬듯이
머루가 내 옆에 자리해
오늘도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머루는 중력을 알아요??"
눈을 껌뻑껌빡 거리면서
나를 바라볼 뿐이다.
"머루는 츄르를 보면 빨리 다가가고 싶지.
그게 머루가 다가가는 게 아니라
츄르가 머루를 당긴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쉽게 말하면 그런 게 중력이야 ㅎㅎ"
'츄르' 얘기가 나오니까
눈이 잠시 커지는 머루이다.
"엄마가 과학을 좋아하는데, 그중에서 '물리'를 제일 좋아해.
그중에서 '중력'이 엄마는 참 매력적이더라고.
'중력'에 대해서 '물리'를 빠삭하게 잘 아시는 분들만큼
설명할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중력'은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나름대로
설명을 해도
이해가 되는 신기한 힘이라서
이 세상에 '중력'처럼 가장 강력한 힘이 있을까 싶어.
'중력'을 생각하면 할수록
세상에 많은 것은 '중력'으로 불릴 수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느끼냐에 따라
그 중력들을
다른 언어로
다른 학문으로 불리는 게 아닐까 싶어.
사랑도 서로 끌림으로 시작하기에
'중력'이고
미움도 서로의 혐오가 자꾸만 끌어당겨
감정이 올라오기 때문에
'중력'인 것이고
호기심은 인간에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등대와 같은 어둠 속의 빛
그런 알 수 없는 미지의 끌림을 주기 때문에
'중력'인 것이고
용서도 아무리 미우고 상대를 밀어내고
도저히 화합은 불가능하다고 느낄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이라도 달려가서 누군가를 안고
미안하다고
그리고 나를
너는 나를 용서한다고
말할 수 있는 힘도
'중력'인 것이고
'매력'은 있을 수도 있고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특정 사람들에게
강력한 끌림을 주지.
그 끌림을 시작으로 많은 것들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이 또한 '중력'이야.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찾아오지.
나는 한편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죽음'이 우리를 끌어당기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해.
에스컬레이터 같은 인생길 위에 우리가 있는데,
저 앞에는 '죽음'이 열심히 우리를 당기고 있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죽음' 또한 '중력'이야.
그리고 '이별'도 중력이야.
왜냐고?
이별은 끝이지만
'끝'이기 때문에
때로는 서로 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서로에게
강한 빈자리의 끌림을
또 다른 경우는
이별의 그 길로 뒤도 안 돌아보고 걷다가
또 다른 '시작'을 향한 끌림을 주는 거도
'이별'인 거지.
그래서 '이별'도 중력이야.
근데, 아이러니하게
'시작'도 중력이야.
'시작'이라는 그 순간은 반짝하고 지나가니까
어떻게 보면 수많은 빛의 광자 중 하나일 수도 있겠지만
'시작'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대상,
그 사건,
그 순간에 더더욱이 생각할수록 '설레임'을 느끼게 되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야."
머루에게 한 참 동안 '중력'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더니
'머루'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머루'가 자는 게 아닌
내 이야기를 듣는 게 행복해서 짓는 미소라고
나는 집사의 직감으로 알고 있다.(?)
세상을 '중력'으로 보니까
오히려 속이 시원해지고
뭔가
'답'은 없는 것을 알면서도
'답'을 찾으려 하는 느낌이다.
나는 '중력'에게 바라는 거 없지만
딱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그 수많은 '중력'을 헤쳐나가고
받아들이면서
제발...
나에게 행복한 '중력'과 함께하는 삶을
깨닫게 해 주고
그 '중력'이 강력하게 끌려올 때
더 강하게
끌리도록
해달라고 빌고 싶지만.
중력 또한 요술 램프의 지니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내 안에 있는
'중력'이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계속 캐물을 것이고
'사랑'은 어떻게 헤쳐나가고
'결혼'은 어떤 '중력'으로 이겨내고 끌어당겨야 하는지
'시작'은 어떤 '중력'이어야 나를 더 끌리게 하는지
'끝'은 어떻게 해야 삶에 끌리는 내가 더 능동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는지
세상의 모든 '중력'이 happy ending은 절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안에 있는 '중력'을 이용해
빛이 안 보이는 순간이 올 때
빛이 안 보인다고 주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중력'으로 세상을 바라보자고
함께 무릎 꿇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