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 속이 더부룩해. 체한 거 같아

급체한 아이의 손을 따다

by 라미루이








외할미가 유모차에 바리바리 싣고 온 봉지 과자를 허겁지겁 먹더니 사달이 날 줄 알았다.

첫째 솔의 속이 단단히 꼬였는지 허예진 얼굴로 맥없이 주저앉아서는 영 힘을 못 쓴다.


냉장고에 쟁여 둔 활명수를 마셔도 속이 풀리지를 않아서, 아빠는 어쩔 줄을 몰라하는 아이의 굽어진 등을 둥글게 어루만져 준다.


"아빠, 속이 꽉 막힌 게.. 트림도 안 나오네."


꾸덕한 찹쌀떡이 아이의 목구녕을 턱 하니 틀어막은 것처럼 제대로 체한 듯하다.

오늘따라 파리해 보이는 아이의 손목을 잡아보니 얼음장처럼 차갑다.


식탁에 앉아 가만히 이 상황을 지켜보던 엄마가 수납장을 열더니 뭔가를 꺼낸다.

예로부터 급체했을 때 속을 뻥 뚫어주는 필살기는 바로,

손톱의 아래 무른 살을 바늘로 콕 따서는 고인 피를 빼내 막힌 기를 돌게 해주는 것이 직빵이다.


"딸깍, 딸깍!"


볼펜처럼 꼭지를 누르면 바늘이 튀어나오는 사혈침을 든 엄마를 보자 솔은 울상이 되어 안절부절 못 하는데,


"엄마, 안 아프게 찔러야 돼."

"알았어."


"저번처럼 한번 찌른다 해놓고.. 두 번 연거푸 찌르면 반칙이야!"

"자꾸 울고 피하고 그러면 오늘은 세 번 딸 거야."


냉정한 엄마의 일침에 아이는 속이 타들어 간다.


"엄마아, 정말 이러기야. 약속해. 살짝, 피 안 나오게 하기로.."

"저번에 맞은 주사보다 안 아프거든. 피 한 방울도 안 터지면 아무 효과도 없어."


아이는 속이 부대껴서 괴로운지 아예 마다하지는 않는다.

대신 엄마에게 한 손을 잡힌 채 울면서 빌면서 사정하고, 손을 치웠다가 슬며시 내밀었다가 20여분이 지나도록 옥신각신 밀고 당기며 버티는 중이다.


"솔아, 잠깐 따끔하면 끝이야. 동생도 저번에 체했을 때 손 따고서 괜찮아지는 거 봤잖아?"


"언니야, 그거 하나도 안 아프거들랑. 따끔하면 바로 트림 나와."


"됐거든."


언니에게 다가간 연은 품에 안은 다람쥐 인형 '라미'를 솔에게 넘겨준다.

폭신한 인형을 쪼그려 앉은 무릎 사이에 끼고, 가만히 얼굴을 돌려 체념하는 아이가 실눈을 뜨고는 손에서 힘을 뺀다.


"괜히 손목 빼고, 움직이면 다친다. 딴 데 보고 있어."


엄마는 조심스럽게 사혈침을 아이의 엄지손톱 아래로 가져가더니 잽싸게 콕 누른다.


"아악, 아파. 아프다고!"


기겁하고는 잡힌 손목을 잡아 빼며 발버둥 치는 아이의 양쪽 귓불이 붉게 달아오르더니, 집이 떠나가도록 악을 지르고 성을 낸다.


"엄마, 미워! 밉다고.."


눈꼬리를 길게 흘기며 원망스럽게 엄마를 바라보자, 아내는 어이없다는 듯 혀를 끌끌 찬다.


"자꾸 그러면 한방 더 놔줄 거야."

"엄마는 거짓말 쟁이야. 독감 주사보다 더 아프잖아."


보다 못한 아빠가 폰을 내려놓고는 다가가 솔의 동그란 머리를 쓰다듬는다.


"손 땄으니 괜찮을 거야. 네 방 가서 누워서 한숨 자면 멀쩡히 나을 거다."


아이는 동생이 빌려준 애착 인형을 가슴팍에 감싸 안고는 작은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버린다.

맥없이 축 처진 어깨가 안쓰럽지만 지금은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혼자 두는 게, 제 발로 엄마를 찾을 때까지 가만 놔두는 게 상책이다.


아빠는 아이가 쉬는 데 방해될까 봐 조용조용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나서, 고개를 내밀어 작은 방을 들여다본다.

그의 아내는 솔의 이마 위로 내려온 젖은 머리칼을 위로 쓸어 올리며 잠든 아이를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다.


"한번 따끔하면 이리 괜찮아지는데, 그리 악을 쓰고 그래. 엄마 맘 아프게시리.."


눈치 빠른 둘째 연은 어느새 엄마 옆에 누워 잠자리에 들 채비를 마쳤다.


평소에 그는 부부간에 어떤 트러블이 있더라도 가능한 각방을 쓰지 말자는 주의지만,

오늘은 엄마와 아이들이 한 방에서 잠드는 걸 허락한다는 듯 방문을 천천히 닫았다.


잠시 후 뒤척이는 소리와 함께 작은방을 밝힌 불빛이 꺼진다.

소곤거리는 말소리가 어두운 방에서 새어 나오는데..


"엄마, 언니 괜찮은 거야?"

"그럼, 괜찮고 말고.."

"근데 아빠가.. 언니 그렇게 울고 불고 하는 거 사진으로 다 찍어 놨다. 내가 다 뒤에서 봤거들랑."

"그러게 말이다. 언니 달래줄 생각은 안 하고, 히죽거리며 폰만 들이대고 있으니.."


한편, 뒷짐 지고 강 건너 불구경만 실컷 한 아빠는 엄마와 아이의 실랑이가 고스란히 담긴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넘겨 본다.


"이거 이거.. 연말에 보여주면 다들 배꼽 쥐고 쓰러지겠는데.. 해피한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겠어."


한편으론 좀 더 프로 기질을 발휘했어야 했나 싶다.


"아예 영상으로 찍어서 대강 편집하고 유튜브에 올렸으면 조회수 꽤 나왔을 텐데.. 아쉽군."


대책 없이 철없는 아빠는 홀로 방에 누워서는 뭐가 그리 웃기는지 키득대다가 손에 땀이 찼는지 그만..


하드 케이스까지 250g에 육박하는 폰을 놓쳐 버렸다.


"으악!"


하필이면 폰의 모서리에 눈탱이가 찍힌 것일까.


난데없이 집안에 단말마의 비명이 울리고,


한동안 끙끙 앓는 소리가 이어지더니 이내 잠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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